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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단독] 체육회장 입맛대로 뽑는 ‘올림픽 참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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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대회 경기와 무관한 인사들

“체육회장 3연임용 선심” 지적도

조선일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파리 올림픽을 마치고 지난 1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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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非)체육계 인사들을 대거 포함해 논란을 빚은 파리 올림픽 참관단 중 과반이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도 똑같이 참관단으로 다녀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실에 따르면 파리 올림픽 참관단 98명 중 지방체육회 회장, 사무처장 등 68명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도 참관단으로 다녀왔다. 조계종 전국신도회 사무총장 등 비체육계 인사들도 2개 대회에 다 참석했다.

스포츠안전재단은 파리 올림픽 때 사무총장 등 3명, 항저우 아시안게임에는 기획부장 등 8명을 보냈다. 스포츠안전재단은 올림픽과는 관련이 없는 단체로 이기흥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다. 이 회장은 과거 조계종 신도회장을 지낸 바 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참관단도 파리 참관단과 마찬가지로 항공비를 제외한 체류비 일체를 지원받았다. 대한체육회는 파리 참관단에 6억6000만원, 항저우는 3억6000만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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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지방체육회 임원들이 다수인 ‘파리 올림픽 참관단’은 이달 초 구설에 올랐다. 지난달 남자 양궁 단체전이 열렸던 프랑스 파리 양궁경기장에서 상대 선수에게 소리를 지르고 경기장 매너를 지키지 않은 탓이다.

참관단들은 현지서 한국 경기를 관람하며 응원하긴 했지만 파리 시내와 인근 지역 관광, 박물관과 전시회 등을 둘러보는 일정이 많아 ‘외유성 출장’이란 지적을 받았다. 대한체육회는 “국제 대회 개최 노하우를 배우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생활 체육을 주로 취급하는 지방체육회가 국제대회 운영을 왜 알아야 하느냐’는 반박이 뒤따랐다.

참관단 중 체육회 임원도 아닌 수산물협동조합장, 민간 병원 행정원장, 세계한인연합회 총연합회 이사 등이 대거 들어 있어 논란은 가중됐다.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도 참관단 자격으로 파리에 갔다.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이 내년 초 회장 선거에서 3연임을 노리고 각계 각층에 선심성 여행을 보낸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대한체육회 1년 예산은 4100억원 정도로 정부(문체부)에서 받는다.

이런 국제대회 참관단 자체도 이기흥 회장이 체육회 수석 부회장으로 있던 2016년 8월 리우 올림픽 때 처음 만들어졌다. 같은 해 10월 이기흥 부회장은 대한체육회장에 당선됐다. 리우 때는 25명이던 참관단 규모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63명으로 늘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는 200명. 이들 역시 경기 관람 말고도 관광지 탐방, 시내 구경 등 일정이 있었다.

대한체육회는 참관단 운영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예산 집행 관련 규정을 바꾸기도 했다. 원래 체육회 자체 예산을 집행하려면 문체부 승인을 받아야 했다. 체육회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참관단에 1억5000만원을 집행하겠다고 문체부에 요청했지만 승인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산하 단체에 5300만원 가량 찬조금을 받아 참관단 구성을 강행했다. 이후 2023년 2월 이사회 의결만으로 자체 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당해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참관단 예산과 인원이 대폭 늘었다.

참관단 선정 과정은 불투명하다. 체육회 내 관련 규정도 없고 선발 조직도 없다. 이사회 의결도 받지 않는다. 체육회 각 부서에서 명단을 올려 이기흥 회장이 최종 결재하는 식이다. 체육회는 “지방체육회, 선수촌 등에 공문을 보내서 참여 희망자를 모집한다”면서 “국제대회 개최나 운영에 도움이 될 만한 인사들을 면밀히 따진다”고 설명했다.

김승수 의원은 “국제대회 참관단 관련 예산은 늘어가고 있는데 어떤 기준으로 누가 선정되는지 공개되지 않는다”며 “(사실상) 공적 자금이 쓰이는 만큼 국민 눈높이에 맞게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올림픽에 수차례 다녀온 체육계 인사는 “국제 대회 운영은 경험 많은 전문가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같은 국제 기구와 손발을 맞추면서 하는 것”이라며 “일주일 다녀온다고 어떻게 알겠냐”고 일축했다.

[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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