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치아 서민규, 첫 경기 5-2 승리
칠삭둥이로 태어나 뇌병변 장애… 흔들리지 않으려 휠체어 꽉 잡아
공 던지는 손 아닌 왼손에 굳은살… “첫 경기 부담됐지만 파이팅 외쳐”
왼손에 박인 굳은살만 보면 베테랑 선수가 따로 없다. 실제로는 파리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 선수 83명 중 유일한 10대다. 한국 선수단 ‘막내’ 서민규(19·사진) 이야기다.
어떤 종목이든 오른손잡이 선수는 오른손에 굳은살이 더 많이 생기게 마련이다. 보치아 선수인 서민규는 오른손잡이지만 왼손에 굳은살이 가득하다.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면서 왼손으로 휠체어를 있는 힘껏 꽉 잡아 생긴 일이다. 임광택 한국 보치아 대표팀 감독은 “보치아 선수는 몸이 고정되지 않으면 공을 정확하게 던질 수 없다. 민규는 자신의 신체적 불리함을 손바닥의 힘으로 버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치아는 구슬치기와 컬링을 합쳐 놓은 것 같은 종목이다. 엔드마다 공을 6개 던져 표적구에 더 가까이 붙인 선수(팀)가 점수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한다. 서민규의 종목인 BC2 등급 출전 기준은 딱 하나, ‘손으로만 공을 던져야 한다’는 것뿐이다. 맨바닥에 앉는 선수는 공을 던지는 데만 집중하면 되지만 휠체어에 앉는 선수는 방향이 틀어지지 않도록 왼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잡고 있어야 한다.
칠삭둥이로 태어난 서민규는 인큐베이터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102일을 보낸 뒤에야 어머니 김은희 씨(43)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뇌병변 장애를 얻은 서민규는 초등학교 1학년이던 2012년 특수반 선생님 권유로 보치아를 시작했다. 서민규는 보치아를 시작한 첫해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따며 가능성을 보였고 지난해 18세 나이에 국가대표가 됐다.
파리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 83명 중 유일한 10대 선수인 서민규가 대회를 앞두고 보치아 종목 훈련장인 아레나 파리 쉬드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서민규는 경기보조코치로 파리에 함께 머물고 있는 어머니 김은희 씨와 함께 패럴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임광택 감독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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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애인 선수가 보치아 국가대표가 되는 건 비장애인 선수가 양궁 국가대표가 되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비장애인 양궁 대표팀이 올림픽 여자 단체전 10연패를 이룬 것처럼 한국 보치아 대표팀도 파리에서 패럴림픽 10회 연속 금메달에 도전한다. 서민규는 태극마크를 달고 참가한 지난해 항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항저우에서 경기보조코치로 서민규와 금메달을 함께 따낸 어머니는 파리 패럴림픽 때도 아들 곁을 지키고 있다. 서민규는 “나를 세우는 원동력은 어머니”라며 “어머니는 혼자 세 명의 아이를 키우셨다. 운동을 시작한 후 내게 온전히 전념해 주셔서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서민규는 이번 대회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프란시스 롬바우츠(40·벨기에)에게 5-2로 승리하며 패럴림픽 금메달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서민규는 패럴림픽 데뷔전이던 이 경기에서 주눅 들지 않겠다는 듯 여러 차례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서민규는 “솔직히 부담이 됐다. 파이팅을 외쳐야 분위기가 끌려올 거라 생각했다. 한국 보치아를 대표해 패럴림픽 시상대에 꼭 오르고 싶다”며 “평소 좋아하는 축구선수 이강인(파리생제르맹)이 머무는 파리가 ‘기회의 땅’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어머니 김은희 씨는 “민규를 돌보느라 두 동생에게 소홀한 면이 있었다. 민규가 시상대에 오르면 여러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칠 것 같다”고 말했다.
파리=김정훈 기자 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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