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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강호철의 스포트S라이트] “대부분 선수들처럼 내가 은퇴 결정 못해 마운드가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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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투수 니퍼트 특별한 은퇴식

조선일보

지난 9월 14일 은퇴식을 치른 더스틴 니퍼트는 당시 눈물을 펑펑 흘렸다. 가족과도 같았던 동료와 인생의 전부였던 야구, 그리고 끝까지 성원해 준 팬들과 공식적으로 작별을 고하는 순간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은퇴후에도 그는 용인에서 빅드림 야구교실을 세워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친다. /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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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니퍼트는 은퇴한 지 6년 지났지만 여전히 150km 초반의 빠른 볼을 던진다. 자신이 한국인이었다면 여전히 어떤 보직이든 마운드에서 서 있을 것이라고 했다. /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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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잠실야구장에선 한 특별한 외국인선수의, 특별한 은퇴식이 열렸다. 주인공은 2010년대 최강팀인 두산의 마운드를 이끌었던 ‘푸른 눈의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43). 니퍼트는 2011년부터 KBO리그에 데뷔해 7시즌은 두산, 마지막 2018년엔 KT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KBO리그 외국인 투수 최초이자 지금까지 유일하게 100승과 1000탈삼진 기록을 갖고 있다. 또 외국인 선수론 타이런 우즈와 함께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도 올스타 40인에 선정됐다. 니퍼트는 이날 KBO의 특별엔트리 허용으로 두산 유니폼을 입고 더그아웃에 들어갔고, 외국인선수로서 처음으로 은퇴식을 치렀다. 니퍼트는 현재 용인에서 유소년야구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은퇴식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눈물을 엄청 많이 흘리더라.

“야구에서 팀 동료는 가족과도 같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야구와 가족 같은 동료, 그리고 팬들과 작별하는 시간이었다. 그런 자리에서 눈물을 참지 못할 것을 100% 알고 있었다. 팬들이 많이 와서 깜짝 놀랐고, 기분이 좋았다. 내가 뛸 때는 잠실이나 수원야구장이 매진된 적이 없었다. 야구 인기가 정말 높아진 것 같다. 7년 만에 와 보니 허경민, 김재호, 정수빈, 김재환, 조수행, 양의지, 야수 4~5명, 투수 2~3명 정도만 남아있었다. 나머지는 아마 내가 뛰었을 때 중·고교 선수였을 거다.”

-많은 사람들이 마운드에 서서 공 던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정말 공 한 개라도 던져보고 싶었다. 경기 전 이승엽 감독이 4~5점차로 앞서게 되면 한 번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1점차 승부가 이어져 아쉬웠다. 내게 그런 기회를 주겠다고 말한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 말을 잘 못해 은퇴사를 글로 적었는데, 완성하는데 2~3주 걸렸다. 썼다가 마음에 안 들어 버리고, 다시 생각했다고 쓰고 버리고.”

-원래라면 7년전 은퇴식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시 많은 일이 일어났다. 2017시즌 후 두산과 재계약이 불발돼 매우 화가 났었다. 1년간 기회를 더 준 KT에게 감사하다. 하지만 이후에도 다시 기회를 얻지 못했다. 운동 선수 대부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화가 풀렸다. 그리고 이제 다 과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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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니퍼트가 지난 25일 자신이 운영하는 유소년 야구 교실 내에서 유소년 대회 트로피 등을 놓고 앉았다.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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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5시즌, KBO 8시즌을 뛰었다. 가장 기억 남은 순간은 언제였나.

“2004년 스프링캠프, 메이저리그 첫 등판경기. 상대가 밀워키 브루어스였을 것이다. 아웃카운트 한 개도 못 잡고 4~5점 정도 내줬다. 영혼이 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포수가 내게 다가와 왜 이렇게 눈이 커졌냐고 하더라.(하하) 한국에서는 첫해 첫 등판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상대가 LG였다. 한국 야구는 미국과 달리 컨택트를 잘한다. 투구 수 조절하는데 몇 경기 걸린 것 같다. "

-영광스러웠던 순간, 아쉬웠던 순간은?

“2015년 두산 우승했을 때가 가장 영광스러웠다. 올스타 휴식기 이후 공을 던질 수 없을 정도로 다쳤다. 나를 방출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다행히 팀이 나를 내보내지 않았고, 결국 돌아와 포스트시즌에 나설 수 있었다. 아쉬운 때라면 KT와 재계약 안됐던 2018년 이다. 대만리그나 마이너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 갔어야 했는데, 너무 화가 나 자포자기했다. 그리고 내가 한국인이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아직도 마운드에서 서 있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계속 공을 던질 자신이 있으니까.”

-정규리그 MVP, 다승왕, 골든 글러브를 석권하고 우승한 2016년이 더 영광스럽지 않았나.

“솔직하게 개인 성적에 대해선 생각 안 해봤다. 선발투수란 자리는 잘 던져도 패전멍에를 쓰고, 못 던져도 승리투수가 될 수 있다. 숫자에 함정이 있다. 내가 상을 받은 것은 뒤에서 잘 받쳐준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야구는 골프나 테니스와는 달리 팀 스포츠다. 나는 현역시절 그라운드에 항상 먼저 올라가고, 이닝을 마치면 야수들이 더그아웃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장 늦게 나온다. 내가 팀 동료와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기 때문이다.”

-은퇴한 지 6년이 지났는데도 한국에 남아있는 이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은 현역 때부터 있었다. 내 KBO리그 경력이 MLB보다 좋다. 나를 더 많이 기억해 주는 곳에서 많은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은퇴 후 미국에 잠시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2020년 초 지금 장소에 아카데미를 세웠다.”

-한국과 미국 유소년 야구는 환경이 어떻게 다른가.

“한국은 감독이 유소년을 가르치기 보다 이기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한참 성장기에 있는 9~10세 아이들이 대회 때 어깨에 지장을 주는 커브를 마구 던지게 한다. 대회 때 우리 아이들이 그걸 보면서 ‘저건 뭐예요? 우리도 던져도 되느냐”고 묻더라. 나는 신경 쓰지 말라고, 따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한국 어린이들은 요즘 메이저리그, KBO리그 성인 선수들 경기를 배우면서 그것을 무작정 흉내 내려고 한다. 투수가 마운드에 서서 삼진만 잡으려고 하면 야수들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삼진 대신 투구 수 줄이면서 타자로 하여금 때리게 하라고 주문한다. 기본이 중요하다. 그게 갖춰져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

-특별한 지도 철학이 있다면

“아이들이 야구하면서 행복하고 즐거워야 한다. 한국에선 어린이들이 일주일에 5~6일 야구만 한다. 내가 어렸을 때 미국에서 그랬다면 일찍 그만뒀을 거 같다. 미국에선 어린이들이 여러 스포츠를 경험한다. 나는 봄이 되면 야구를 할 수 있어 좋았고, 가을에는 미식축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 부모들은 여러 가지를 경험해야 할 초·중학생에게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킨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화내거나 야단 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도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고 있다. 야단 치면 오히려 결과가 더 나빠진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할 때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이렇다’라며 아이들이 스스로 잘못했다는 것을 판단하고 이해하도록 한다.”

-요즘 연예 프로그램에서 152km의 빠른 공을 던져 화제가 됐다.

“최강야구 트라이아웃에 나갈 기회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몸을 만들었다. 아카데미를 설립한 다음에도 계속 운동하고 아이들과 함께 달렸다. 프로 무대는 아니지만, 내가 마운드에 서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물론 경기에서 이기고 싶다는 승부욕을 느끼는 것도 짜릿하다. 최강야구에서 처음 만난 김성근 감독님도 대단하신 분이다. 80대 중반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만큼 열정적이고 승부욕이 대단하시다. 모든 훈련에 다 참석하셔서 투수 타자들을 지도한다. 은퇴한 선수들인데도 못하면 가차 없이 뺀다. TV쇼인데도 모든 경기에 이기고 싶어하신다.”

-언제까지 한국에 있을 생각인가.

“미국에 있는 올디스트 투(Oldest Two·전처와 둔 아들 케이든과 딸 오브리)는 이제 고등학생인데, 매일 통화한다. 한국에 있는 영기스트 투(리바이, 오웬)는 이제 7, 6살이다. 한국 애들이 좀 더 크면 교육 문제 때문에 미국에 가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미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아카데미는 계속 운영한다. 시작해 놓고 중간에 그만둘 생각은 전혀 없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다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시 한번 정말 감사 드린다. 나를 지금까지 기억해주셔서 고맙다. 두산, KT팬들 모두에게. 한국 팬들은 충성심과 열정이 가득하다. 내겐 너무 소중한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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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선디자인랩


[강호철 스포츠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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