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선미경 기자] ‘강연자들’ 추성훈이 일본으로 귀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고백했다. 재일교포 4세로 일본에서 겪었던 차별과 태극마크를 달고 싶었던 마음도 솔직하게 밝혔다.
추성훈은 지난 3일 오후에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심장을 울려라 강연자들’에 출연해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한국말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 고민했지만 ‘나도 한 번 도전해 볼까?’라는 생각을 전하고 싶었다고.
이날 추성훈은 가족들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 추성훈은 “아버지는 재일교포 3세, 어머니는 한국에서 태어나시고 일본에 넘어오셨다. 아버지와 어머니 엄청 젊으시다. 아버지가 23~24살이고, 어머니는 20살 정도였다. 일찍 결혼했다. 어머니는 20살까지 한국에 계셔서 일본 말을 한 마디도 못하고 친구도 없었다. 아버지는 학생인데, 아르바이트를 해서 우리를 먹였다”라고 설명했다.
추성훈은 “재일교포로 살고 있었고, 차별 있지 않았나 질문 많이 받는다”라면서 학창시절 겪은 학교폭력과 차별을 고백했다. 추성훈은 자신에게 돈을 빌린 친구가 돈이 있으면서도 갚지 않아 싸우게 됐고, 어머니까지 학교에 오실 정도로 일이 커졌다. 이후 선생님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추성훈은 “그 친구 반의 선생님이 나를 찾아와 혼자서 체육관으로 오라고 하더라. 선생님이 갑자기 나를 막 때렸다. 얼굴 밑으로 몸쪽으로 때렸다. 그 순간 그 사람이 ‘일본 사람 때리지 마’라고 하더라. 맞으면서 그건 틀린 거 아닌가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추성훈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잡아준 것은 유도였다. 추성훈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유도를 했고, 그만큼 유도를 사랑했다. 추성훈은 "오사카 지방에서도 (치안이)나쁜 동네였다. 우리 친구들이 거의 다 야쿠자, 조폭이었다. 그런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왜 나는 그쪽에 안 갔나 생각했을 때 나는 아무래도 어린 시절부터 유도를 했다. 아버지가 유도를 해서 엄청 무서워서 나쁜 길 안 가고 유도만 바라보고 좋아했다"라며 진심을 드러냈다.
추성훈은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교까지 갈 수 없을 수도 있었지만, 오사카 지방에서 유도로 1등을 하면서 진학에도 문제가 없었다. 다만 추성훈의 꿈도 있었다. 추성훈은 태극기를 달고 국가대표가 되는 꿈이 있었기에 일본에서 실업팀 대신 한국을 선택했다. 돈보다는 꿈에 자신의 미래를 걸었고, 한국으로 와 부산 시청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추성훈은 "도복에 붙어 있는 태극기, 뒤에 ‘KOREA’라는 게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그때 받을 때 눈물이 났다. 2001년 한국 대표로 들어갔다. 태극기 달고 시합 나가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더라. 마음 속으로 많이 울었다. 잘못된 판정이 너무 많이 있었다. 나 혼자 문제가 아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하면 되겠다, 다음에 열심히 하자' 했는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된다. 아시아 대회도 금메달 따고, 결국은 이상한 판정은 하나도 안 변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추성훈은 유도를 계속하기 위해 귀화를 택했다. 추성훈은 "그래서 저는 귀화를 결정했다. 저는 교포 4세고, 그러면 1세대 100년 정도 지켜온 ‘추’ 씨 성을 바꾸는 건 이상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도 했다. 아버지 꿈이 태극마크 달고 금메달 따는 거였다. 부모님 마음도 모르겠지만 네가 한다면 응원해 준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귀화를 했다"라고 말했다.
일본으로 돌아가 1년 만에 일장기를 들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왔고, 한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추성훈은 "결승 상대가 한국 선수였다. ‘추성훈 진짜 아깝네’라는 소리 듣고 싶었다. 1등하고 금메달 목에 걸고 나서 일장기가 제일 가운데 올라가고 태극기가 옆에 조금 떨어져서 올라갔다. 바라봤는데 기쁜데 뭔가 이상하다. 두 나라 국기가 올라가는 거 보니까 너무 마음이 무거웠다"라고 밝혔다.
이후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악성 댓글이 따라왔다. 추성훈은 "악플도 많이 있었다. 그렇다고 제가 일본에서 사랑받는 것도 아니었다. 일본에서도 악플 많이 받았다. 방송이라서, 센 거는 안 나왔다. 여기서 느낀 게 하나 있다. ‘나는 도대체 어디 사람이야?’였다. 유도를 그만두고 다음 목표를 생각해 보다가 이종격투기를 하게 됐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추성훈은 "추성훈이라는 단어도 너무 좋아한다. 왜냐하면 원래 없는 이름이다. 일본에 귀화했기 때문에 없어졌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면 아키야마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추성훈은 한국 사람이야라고 하는 말이 여태까지 마음 아팠던 문제 다 해결되는 한 마디 갔다. 나는 일본 사람 됐지만 내 몸 속 피와 마음은 한국 사람이라는 마음 지금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가지고 있을 거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추성훈은 "아버지가 2년 전에 돌아가셨고, 배운 거 많이 있었다. 인생의 순간 순간이 다 선택이다. 7만 번 하루에 결정한다고 한다. 그래도 어려운 선택하는 순간이 생길 거라고, 무조건 어려운 길을 가라, 그게 너에게 도움이 되고 빠르게 성공하는 방법이야라고 하셨다. 간단한 길을 가지 말고 어려운 길을 가자고 하더라. 어디서 태어나든 관계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멈추지 않고 끝까지 도전할 것"이라며, "지금 우리 사랑이가 12살이다. 그래도 제가 사랑이에게 부모로서 뭘 가르쳐 줘야 하나 생각할 때, 저는 일단 공부 이야기 해봐야 의미 없고, 용돈 줘봐야 의미 없다. 내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추성훈은 여전히 악성 댓글에 시달리기도 했다. 추성훈은 "(악플이)지금도 있다. 그걸 보는 사랑이가 보게 되면 마음이 아프다. 여기서는 안 나왔는데 사랑이 악플도 있다. ‘네 딸 조심해야 한다’, ‘네가 어디 살고 있는지 알고 있다’ 이런 얘기 많이 나왔다. 육아 예능 한창 하고 있을 때, 유치원 가고 있을 때 데려다주고 했는데 그것도 무서웠다. TV에 나오는 게 맞는지 고민했다. 아직 그런 얘기는 안 하고 있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추성훈의 고민에 다른 강연자들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seon@osen.co.kr
[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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