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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안방서 역대급 참패…‘별들의 전쟁’ 삼성화재배 4강에 한국 없다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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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서 열린 삼성화재배 4강에 한국은 없다. 왼쪽부터 당이페이-롄샤오, 진위청-딩하오. 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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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창설된 최초의 세계 바둑대회 응씨배. 일본 6명, 중국 4명, 대만은 3명의 티켓을 배부받은 이 대회에 한국은 딱 1명의 출전만 허락됐다. ‘바둑 불모지’, ‘변방’ 국가의 설움이고 수모였다.

한국이 받은 1장의 티켓은 미국·호주 등 소위 ‘구색 맞추기’로 출전하는 국가들과 동일했다. 참가 자체를 ‘보이콧’ 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끓었다. 하지만 이후 스토리는 모두 알다시피,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이 단기필마로 출전해 중국과 일본 고수들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리고 초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조훈현 9단이 길을 열고 이창호 9단이 세계를 정복한 이후 한국 바둑은 세계의 중심이 됐다. 길고 길었던,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이창호 시대’를 끝낸 것은 다름 아닌 이세돌 9단이다. 중국이 ‘양이(兩李)’라고 부르는 두 기사는 도합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세계 바둑계를 지배했다.

지난 17일 경기도 고양시 삼성화재 글로벌캠퍼스에서 2024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8강전이 열렸다. 안방에서 열린 세계대회에 한국은 신진서 9단 딱 한 명만 생존했다. 박정환·변상일·신민준 9단 등 한국 바둑 ‘빅 4’ 중 3명이 16강 문턱을 넘지 못하고 모두 중국 선수에게 패해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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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바둑 랭킹 1위 신진서 9단(왼쪽)이 2000년생 동갑내기 중국 강호 딩하오 9단에게 패해 탈락했다. 딩하오는 신 9단을 꺾은 여세를 몰아 결승에 진출하면서 삼성화재배 2년 연속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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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서 9단은 이번 대회에서 첫 판 왕싱하오 9단, 두 번째 대국에선 커제 9단을 상대했다. 왕싱하오는 중국의 차기 일인자로 모두가 눈여겨 보고 있는 강자이고, 커제는 이론의 여지 없는 중국 바둑 레전드 중 한 명이다.

두 판 모두 힘겹게 승리했다. 특히 커제 9단과 대국은 그로기 상태에 몰린 상황에서 끝까지 맹렬하게 추격한 끝에 ‘반집’으로 승부를 뒤집었다. 이어진 세 번째 상대는 딩하오 9단으로 과거 신 9단이 “세계대회 우승은 시간 문제”라고 치켜세웠던 난적이다. 실제로 딩하오는 이후 메이저 세계대회 2회 우승을 차지했다.

신진서 9단은 딩하오를 상대한 8강전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비록 패배했지만 충분히 질 수 있는 상대였고 그럴 수 있는 내용이었다. 대진운을 탓 하기에는, 신 9단의 패배를 아쉬워하기에는 한국 바둑의 층이 너무 얇아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바둑의 전성기로 꼽히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약 10년은 그야말로 강자들이 즐비한 시절이었다. 자타 공인 세계 최강 이창호 9단을 필두로 메이저 세계대회 9회 우승에 빛나는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보다 먼저 ‘세계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던 유창혁 9단 등이 앞에서 끌었고 후기지수 중 세계 최고인 이세돌 9단이 뒤를 받쳤다.

‘이세돌 시대’에는 지금은 해설자로 전향했지만 한 때 ‘송 폭풍’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송태곤 9단을 위시해 이제는 모두 황소가 된 ‘송아지 삼총사’가 버티고 있었다. 1985년생 소띠 기사들을 일컫는 송아지 삼총사는 최철한·박영훈·원성진 9단이고 이들은 모두 국내 대회는 물론 세계대회 우승도 차지했다. 이외에도 바둑리그 감독과 해설로 활약하고 있는 박정상 9단 등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한국 선수들이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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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한 한국 검토실 풍경. 과거 삼성화재배가 펼쳐질 때 발 디딜 틈이 없던 모습과 대비된다. 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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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둑은 이제 진지하게 ‘신진서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 최근 메이저 세계대회 흐름을 보면, 한국은 신진서 9단 한 명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신 9단이 난조를 보일 때는 동료들이 ‘한 건’ 해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하고, 더 나아가 ‘후계자’가 등장할 수 있는 토양을 하루 빨리 조성해야 한다.

전성기 시절 한국 바둑은 세계대회 못지 않게 국내 무대 경쟁이 치열했다. 대진표에서 한국 선수의 숫자가 더 많아져 자국 기사 간 대결이 벌어지면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대진표 절반 이상이 늘 중국이다. 한국은 세계대회에서 중국 선수만 상대하다 대회가 끝난다.

라이벌 중국 바둑에 대한 연구와 분석, 대책 마련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그것 보다 한국 바둑을 이끌 후지기수 찾기가 급선무다. 이창호 9단은 1975년생, 이세돌 9단은 1983년생이었다. 박정환 9단은 1993년생, 신진서 9단은 2000년생으로 약 7~8년 사이에 새로운 일인자가 탄생하곤 했다.

한편 한국이 모두 탈락한 2024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는 19일 오후 12시 중국 당이페이 9단과 롄샤오 9단의 준결승이 펼쳐진다. 승자는 하루 전 결승에 선착한 딩하오 9단과 우승 트로피를 놓고 3번기를 펼친다. 2024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우승상금은 3억원, 준우승상금은 1억원이다. 제한시간은 각자 2시간에 1분 초읽기 5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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