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
130분간 29곡 명불허전 가창력
포효하는 기타·밴드 사운드 압권
130분간 29곡 명불허전 가창력
포효하는 기타·밴드 사운드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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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황성옛터’, ‘비련’, ‘너무 짧아요’, ‘비오는 거리’, ‘우울한 주말’, ‘여행을 떠나요’, ‘청춘시대’, ‘슬픈 오늘도, 기쁜 내일도’, ‘회색의 도시’, ‘산장의 여인’….
반 세기의 역사를 모두 담기엔 케이스포 돔(KSPO DOME)을 횡단하는 초대형 스크린도 부족했다. 조용필의 오랜 역사를 담은 히트곡 제목이 줄줄이 이름을 올리면 청량하면서도 카랑카랑한 가왕(歌王)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아시아의 젊은이여’를 외치는 조용필의 음성은 이 곡(‘아시아의 불꽃’)을 부르던 1985년 그 시절로 되돌아갔다. 팔딱거리는 싱싱한 가창 뒤로 기타 연주의 시원한 질주가 시작되자 관객들의 함성은 잦아들지 않았다.
데뷔 56주년, 마침내 20집 앨범을 발매한 가왕의 연말 공연이 시작됐다. 조용필은 지난 24~25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체조경기장)에서 조용필의 정규 20집 발매를 기념한 ‘조용필& 위대한 탄생’ 콘서트를 통해 전국 투어의 시작을 알렸다. 가왕은 이틀간 약 1만7000 명의 관객과 만났다.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130분 동안 총 29곡의 노래를 소화하면서도 가왕의 노래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조용필의 노래는 올해에도 믿기지 않았다. 어느덧 70대 중반을 향하고 있지만, 그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 듯 했다. 팬데믹 이후 해마다 여는 공연에선 매해 그 전 공연보다 더 놀라운 노래를 들려준다. 올해에도 CD를 집어삼킨 가창력은 여전했다. 첫날 공연에서 스스로도 고백한 ‘가사 실수’가 없었다면 그의 콘서트에 처음 온 관객은 라이브를 의심할 정도였다.
‘아시아의 불꽃’을 시작으로 ‘자존심’, ‘물망초’, ‘나는 너 좋아’, ‘그대를 사랑해’까지 내리 다섯 곡을 줄줄이 달린 뒤에야 첫 멘트를 시작한 가왕은 지치는 기색도 없었다. 객석이 오빠와 형님을 연호하는 소리로 가득 차자 그는 “저를 아직도 오빠라고 그런다. 이 나이에 오빠라고 불리는 사람 나와 보라 그래”라며 팬들의 뜨거운 호응에 장난스레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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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있었지만, 그의 멘트는 길지 않았다. 조용필의 공연은 보통 방대한 히트곡을 꽉꽉 채워넣는 ‘종합선물세트’인 만큼 이날 공연도 대화보다는 노래에 집중했다. 공연에선 최근 발매한 20집의 타이틀곡 ‘그래도 돼’를 비롯해 19집 히트곡 ‘바운스’, 각 시대별 명곡이 록, 국악, 발라드, 트로트 등 장르를 아울러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밴드의 시대를 열어 제치고, 여전히 밴드의 시대에 살고 있는 가왕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 시간이었다.
공연은 가왕의 연대기와 지나온 음악 여정을 보여주면서 각각에 안성맞춤인 곡과 영상을 화려한 레이저와 폭죽과 함께 화려하게 보여줬다. 무대 뒤편을 가득 메운 거대한 전광판 아래로 가왕과 위대한탄생(기타 최희선·베이스 이태윤·키보드 최태완·키보드 이종욱·드럼 김선중) 멤버들은 일렬로 서서 관객과 마주했다. 지난해 공연부터 이어왔던 무대 위 자리 배치는 밴드에 기반한 가왕 음악의 정체성을 보여주면서도 ‘최첨단’을 달리는 영상 연출을 보여줄 수 있는 최적화한 구성이다.
이번 콘서트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조명이다. 각각의 악기에 맞춰 레이저쇼를 방불케 하는 조명이 쏟아질 때 케이스포돔은 거대한 무도장이 됐다. 특히 ‘촛불’에선 현란한 건반과 함께 레이저 조명이 소나기처럼 퍼붓는 장관을 연출했다.
노래에 딱 맞는 영상도 흥미로웠다. 무수히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탓에 “이 노래가 내 곡인 줄 모른다”고도 자평한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에선 희망을 좇는 비둘기 영상이 나왔고, 펜그림으로 아기자기한 꽃그림을 보여준 ‘단발머리’, 포효하는 기타 연주의 속도감을 시각화한 ‘청춘시대’, 우주인과 여행을 떠난 ‘미지의 세계’까지 잘 짜인 영상이 공연 재미를 더했다. 가왕의 이름 초성(ㅈㅇㅍ)을 띄우고 빈 공간에 조용필의 모습을 채워넣는 연출도 볼거리였다.
이틀 간의 공연은 같지만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사운드 디자인이었다. 첫날 공연은 모든 악기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졌지만, 전체적인 사운드는 다소 뭉툭했다.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가 생생히 살아나지 않아 밴드 음악의 묘미는 덜했다. 그럼에도 공연의 음향 수준은 국내외를 통틀어 단연 최고였다. 다만 ‘가왕’의 기존 공연과 비교했을 때는 다소 아쉬움이 느껴졌다. 크고 작은 실수도 눈에 띄었다. 공연 시작 무렵 베이스 사운드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기다리는 아픔’에선 가사 자막 실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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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둘째날 공연은 하루 만에 또 달라졌다. 쩌렁쩌렁한 사운드가 케이스포돔을 가득 채우면서도 각 악기의 소리들이 선명하게 배치돼 조용필의 목소리 뒤로 각자의 자리에서 뛰노는 기타, 드럼, 키보드, 베이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간주마다 기타 솔로가 자리한 조용필의 상당수 곡에선 기타 소리가 날이 바짝 서 난폭하게 포효하다가도 조용필의 보컬이 나오면 이를 이어받아 희노애락의 드라마를 만들다 보니 기타 사운드의 디자인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기타 연주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곡과 공연의 전체 흐름 및 분위기를 매만지고 각 곡에 맞춰 다른 해석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다”라는 가왕의 내레이션 뒤 지나온 여정과 미래를 담아 맹렬히 울부짓는 기타 소리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비롯해 ‘추억 속의 재회’, ‘모나리자’, ‘미지의 세계’, ‘태양의 눈’ 등 다수의 곡이 그렇다. 둘째날 공연에선 조용필 공연이 지향해온 밴드 사운드를 통해 첫날보다 더 짜릿한 쾌감과 감동을 연출한 무대가 됐다.
특별한 퍼포먼스도 있었다. ‘그대여’에서 단 한 번 뿐이긴 했지만, 조용필과 위대한탄생의 리더인 최희선(기타), 베이스 이태윤이 중앙의 가왕 자리에서 만나 ‘합체’하는 모습이 화면을 채웠다. 관객들의 함성이 유독 커지는 순간이었다.
공연에서 조용필은 수많은 명곡 퍼레이드를 통해 관객과 추억 여행도 떠났다. 가왕의 드라마 OST(배경음악) 에피소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1979년에 동아방송 라디오에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며 “‘1980년 1월 1일부터 나가는 드라마의 주제가를 만들어 불러달라는 전화였다”고 했다. 그는 PD가 전화를 통해 말해주는 노랫말을 받아적은 뒤 ‘창밖의 여자’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다. ‘촛불’ 역시 “1981년 주차장에서 마주친 PD가 ‘곡 하나만 써줘야 한다’고 해서 만든 곡”이라고 소개했다.
신보 20집의 타이틀곡 ‘그래도 돼’ 무대에선 전광판 한쪽엔 박근형·이솜·변요한 등이 연기한 뮤직비디오가 흘렀고, 반대편엔 가왕의 모습이 담겼다. ‘지치고 힘이 들 때면, 이쯤에서 쉬어가도 되잖아, 그래도 돼, 늦어도 돼, 새로운 시작, 비바람에, 두려움에 흔들리지 않아’라는 단단한 외침은 지금을 견뎌내는 모든 이들을 향한 위로이자 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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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21세기가 원한’ 가왕이 단 하나의 단어도 버리지 않고 방대한 서사시로 오늘을 읋자, 지난 긴 시간을 함께 한 관객들은 눈물을 훔쳤다. 그러다 ‘못찾겠다 꾀꼬리’가 시작되니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함께 즐겼다.
이날 공연의 백미는 ‘청춘시대’였다. 현란한 기타연주로 시작하는 ‘청춘시대’는 무려 10여 년만에 가왕 콘서트에서 불리는 노래다. 드럼과 베이스가 뿌리처럼 노래의 기틀을 세우고 그 위로 짱짱한 ‘청년 조용필’의 목소리와 면도날 만큼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최희선의 정교한 기타가 음악을 지배한다. 강렬한 록 사운드로 도파민을 끌어올린 무대였다.
공연엔 조용필의 오랜 팬들을 비롯해 ‘가왕’의 노래를 듣고 자란 소년소녀들이 모두 모였다. 첫날 공연에서 만난 김광재 씨는 “대학 때 응원단에서 ‘미지의 세계’, ‘청춘시대’와 같은 곡을 레퍼토리를 짜기도 했다”며 “공연에서 학창시절에 즐겨듣던 음악을 들으니 인생의 한 페이지를 다시 열어본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둘째 날 공연에서 만난 김수현 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창밖의 여자’가 나왔는데 그 곡을 공연에서 들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며 “살아오는 내내 조용필의 노래가 곁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요즘 가수들하곤 비할 수 없는 가창력이 정말 놀랍다. 앞으로도 계속 노래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팬들의 염원은 현실이 된다. 가왕 조용필은 정규 20집을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노래는 놓지 않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 번 전했다.
“20년 전만 해도 30~40집까진 낼 줄 알았는데 올해로 20집을 냈습니다. 앨범은 20집으로 마무리하지만, 앞으로 서너 곡씩 꾸준히 내고 싶어요. 평생 노래했기에 안 하면 병날 거 같아요. 다들 ‘은퇴’를 묻는데, 결국 전 은퇴를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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