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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농구계가 변하고 있다”…고양 소노 사령탑 교체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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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고양 소노 새 사령탑에 오른 1984년생 김태술 감독. 한국농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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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김승기 전 고양 소노 감독이 폭행 논란으로 사퇴한 것부터, 후임에 1984년생 김태술 감독이 선임된 것을 두고 한 농구계 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감독이 폭력 논란으로 사퇴한 경우는 있었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좀 다르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과거 같으면 수건을 던졌다고 폭행 논란까지 불거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 전 감독은 지난 10일 서울 에스케이(SK)와 방문 경기 때 라커룸에서 한 선수를 질책하면서 땀에 젖은 수건을 던졌다. 수건에 얼굴을 맞은 선수는 “의도적 폭행”이라고 주장했고, 감독 사퇴를 요구하며 팀을 이탈했다. 감독이 사퇴하지 않을 경우 다른 방식의 대응도 생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감독이 22일 사퇴한 배경에는 선수의 이런 강경 대응에 부담을 느낀 구단의 압력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앞서 소노 구단은 한국농구연맹(KBL)에 재정위원회 개최를 요청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은 갈린다. 김 전 감독의 행위를 비판하는 한편으로, “사퇴까지 할 일인지 모르겠다”는 이들도 꽤 있다. 해당 선수의 경기력을 문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코치 출신 ㄱ 관계자는 “김 전 감독의 일이 내가 선수로 뛰던 과거에는 별일 아니었을 테지만, 지금은 사퇴까지 갈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아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선수 출신 비농구인은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에 선수를 했기에 ‘폭언 정도야’라고 생각했지만, 폭언 또한 권력과 통제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폭력만큼 선수를 피폐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자각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농구계에서 폭언과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변화는 더뎠다. 1997~1998시즌 당시에도 감독들이 심판의 잇따른 오심에 자제력을 상실하고 폭언을 퍼붓는 행위가 물의를 빚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지금도 유튜브에는 ‘극대노 감독 톱5’ 등 감독들이 작전 타임 때 화내는 장면을 모아놓은 영상이 넘쳐난다. 이번 시즌도 초반부터 감독들의 욕설로 시끄러웠다. 한국농구연맹은 10개 구단에 ‘비속어 사용에 대한 주의’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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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를 질타하는 과정에서 수건을 던졌던 김승기 감독이 ‘폭행 논란’으로 사퇴했다. 농구 관계자들은 “이젠 시대가 변했다”며 “감정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농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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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출신 ㄴ 관계자는 “감독들이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경기장에만 서면 나도 모르게 화를 내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1승이 중요한 만큼 선수가 어이없는 실수를 하거나, 그런 선수가 중요한 얘기를 하는데 딴짓을 하고 있으면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아서 화가 난다”고 했다. 과거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체에 해를 가하는 폭력이 있었던 만큼, 폭언 정도는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코치 출신 ㄷ 관계자는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려고 매섭게 얘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다 너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전혀 자극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 프로 선수는 “폭언을 들으면 자존심이 상하고 위축된다”고 했다.



농구계 관계자들은 “이제는 성숙한 선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선수 대부분이 1990년대~2000년대생으로,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젠지(Gen-Z) 세대 특성에 맞게 선수 성격에 따라 지도방법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독 출신 ㄹ 관계자는 “감독의 호통에 자극받는 선수도 있지만, ‘잘한다’ 해야 잘하는 선수도 있다”며 “모든 선수를 똑같은 방식으로 가르쳐서는 안 되는 시대 같다”고 했다. 소노 사태처럼 인권의 중요성을 배우고 자란 선수들은 물리적 폭력 뿐만 아니라 언어적 폭력도 참지 않는다. ㄴ 관계자는 “대화 스킬을 연구하는 등 선수와 감독이 수평 관계가 되어야 한국 농구도 발전한다”고 했다.



소노가 지도자 경험이 거의 없다는 단점에도 1984년생 감독을 새 사령탑에 선임한 것도 소통을 중시하는 변화의 의지로 보인다. 프로 농구계에서 폭언이 사라지지 않은 데는 현역 지도자들 역시 폭력과 폭언 속에서 농구를 배워왔고, 그것이 결국 좋은 성적으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김태술 감독은 프로농구계 최연소 사령탑으로, 현역 최고령 선수인 함지훈(울산 현대모비스)과 나이가 같다. ‘형, 동생’하며 가깝게 지낸 선수들이 많은 만큼 불호령을 내리는 감독보다는 좀 더 편하게 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는 성적을 내야 한다는 점에서 젊은 지도자가 무조건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감독 출신 ㅁ 관계자는 “젊은 감독이든 나이 든 감독이든 선수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바른 판단을 해서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지도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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