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윔블던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닐 프레이저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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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테니스를 상징했던 닐 프레이저가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호주테니스협회는 3일(현지시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할 호주 테니스의 진정한 전설 프레이저가 2일 사망했다"고 전했다.
다각도·다회전의 서브가 주특기였던 프레이저는 1959년과 1960년 US오픈(옛 US 내셔널 챔피언십)에서 단식, 복식, 혼합복식 타이틀을 석권한 테니스계의 간판선수다. 프레이저 이후 단일 그랜드 슬램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한 선수는 현재까지 단 한 명도 없다.
그랜드 슬램에서만 통산 챔피언 트로피를 19번(단식 3회, 복식 11회, 혼합복식 5회) 들어 올렸던 프레이저는 데이비스컵 호주 대표팀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국민적 영웅이 됐다. 1959년부터 1962년까지 데이비스컵 4연패 달성에 있어 그의 활약이 돋보였을 만큼 프레이저는 호주의 '스포츠 황금기'를 이끈 주역이었다. 개인과 팀 경기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내며 1959년에는 남자 테니스 단식 세계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나라를 대표하는 것보다 더 보람찬 일은 없다"고 말했던 프레이저는 1963년 선수 은퇴를 결정, 지도자로서 제2의 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1970년부터 24년간 데이비스컵 호주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존 뉴컴, 존 피츠제럴드, 팻 캐시 등 여러 세대의 테니스 스타들이 프레이저의 리더십에 존경을 표할 만큼 테니스를 향한 그의 사랑은 대단했다. 공로를 인정받은 프레이저는 1984년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ITHF)에, 1994년 호주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감독으로도 은퇴한 뒤인 2008년에는 테니스에 뛰어난 공헌을 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국제테니스연맹(ITF)의 필립 샤트리에 상을 수상했다.
심이주 인턴 기자 augf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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