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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1 (토)

이병헌 “연기, 진실 향한 끝없는 발버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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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겜2’서 프론트맨 열연

무수한 질문·고민으로 만든 디테일

한 인물에 세 자아 품은 연기 호평

“시작부터 배우 인생은 곧 나의 삶”

헤럴드경제

‘오징어게임2’의 프론트맨을 연기한 배우 이병헌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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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의 그림자를 품었다. 생존게임에 뛰어들어 우승자가 된 전직 경찰 황인호, 게임의 세계를 떠나지 않고 ‘지배자’가 된 프론트맨, 게임을 파괴하러 온 456번의 대항마인 001번 오영일. 삼원색처럼 뚜렷한 세 자아를 품다 보니 배우 이병헌은 “다중인격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오징어게임’ 시즌 2에 함께 출연, 정배 역할을 맡았던 배우 이서환은 그에 대해 “안구를 바꿔끼우는 연기”라며 감탄했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뭔가 새롭다, 안 보여줬던 눈빛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되게 좋다”며 웃었다 .

그가 출연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은 456명의 참가자가 456억원의 우승 상금을 놓고 벌이는 생존 게임이다. 시즌 1에서는 게임을 진두지휘하는 프론트맨으로 마지막에서야 얼굴을 보여준 그는 시즌 2에서 프론트맨은 정체를 숨긴 채 오영일이라는 이름으로 게임 안에 잠입한다. 이병헌은 “저와 시청자만 아는 비밀을 은밀하게 건드리는 느낌”이라고 했다. 시즌 1에서 오일남(오영수 분)이 정체를 숨기다 극의 후반부에 공개된 것과는 정반대의 전략이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이병헌은 무수히 묻고 고민하기를 반복했다. 한 사람이면서 세 사람의 내면을 모두 담기 위해서다.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했고, 황동혁 감독에게 수도 없이 물으며 ‘게임 참가자’ 001번 오영일을 만들어갔다. 배우로서 자신을 설득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배우는 연기로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기에 스스로 설득력이 생기지 않으면 반드시 그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억지로 연기를 하는 순간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집요하고 세밀하게 캐릭터를 구축한다. 한 인물을 낱낱이 해부한 뒤에야 카메라 앞에 선다. 이병헌은 “애초에 글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고스란히 내게로 가져오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하나의 캐릭터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던진 여러 질문이 결국 한 사람의 생을 완성했다. 황인호였다가 프론트맨이 됐고, 다시 오영일로 위장한 한 남자로 말이다. 황 감독이 “(이병헌) 선배가 하도 질문을 많이 해서 서사가 완성된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병헌이 그리는 황인호는 “삶의 희망을 모두 잃은 상태에서 게임에 참여했다가 무자비한 죽음과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본 뒤 세상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한 인물”이었다. 인간성을 상실한 시대에 대한 절망과 환멸로 프론트맨을 자처한 것이다. ‘희망’과 ‘인간성’을 지키려 게임을 끝내야 한다고 믿는 성기훈(이정재 분)과 달리 프론트맨은 게임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456명 중 한 사람이 됐다.

그의 눈빛은 복잡다단하다. 아귀 다툼을 벌이는 사람들 속에서 게임을 멈추겠다는 456번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진정한 게임꾼이다. 그러면서 자신과 다른 신념으로 무장한 성기훈을 향한 조소와 냉소도 품는다. 내면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인간성도 갖고 있다. 이병헌은 “프론트맨에겐 양 감정이 다 있다”며 “기훈을 향해 ‘너의 신념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그의 신념이 맞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고 했다.

그에게 가장 어려운 장면은 ‘둥글게 둥글게’ 노래에 맞춘 짝짓기 게임이었다. 정해진 숫자에 맞춰야 살아남기에 또 다른 참가자를 죽이는 장면에선 “0.1초 단위로 황인호, 프론트맨, 오영일이 왔다갔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1991년 데뷔, 지난 35년간 TV와 스크린을 통해 무수히 많은 모습을 꺼냈다. 소위 말하는 ‘할리우드 1세대’다. 영화 ‘지.아이.조’ 시리즈(2009·2013)로 한국인 배우·한국 영화의 경계를 넘었다. 동시에 한국에서도 TV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무수히 많은 히트작을 내놨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하선과 광해, 영하 ‘협녀, 칼의 기억’ 속 유백, 영화 ‘남한산성’의 최명길 등 작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올해는 박찬욱 감독과 ‘쓰리 몬스터’(2004) 이후 20여 년 만에 만난 ‘어쩔 수가 없다’로 관객 앞에 선다.

사실 이병헌의 연기는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그의 오랜 ‘고민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는 “연기를 오래 하면 많은 걸 해봤으니 관성적으로, 자연스럽게 툭툭 나오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고민의 종류가 달라졌을 뿐, 고민의 크기와 시간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아무리 짧은 분량으로 등장해도 주인공을 맡았을 때처럼 캐릭터를 다져간다는 것이다.

“배우로 30년 이상 살아오며 정말 훌륭한 작품인데 내가 못하게 된 작품도 있고, 선택했지만 아쉬웠던 작품도 있어요. 작품 안에서 새로운 연기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보다 그 인물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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