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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수)

세컨드 보러 왔다가 경기 출전…한국에 이런 파이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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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김건일 기자] 제주도 출신 로드FC 밴텀급 파이터 양지용은 로드FC 072 대회에 출전하는 팀 동료 윤태영 세컨드를 위해 경기가 열리는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대회 이틀 전 양지용은 세컨드가 아닌 파이터로 신분이 바뀌었다. 15일 공식 계체에서 관계자석이 아닌 세컨 대기실에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했고, 체중계까지 올랐다.

계체 하루 전인 14일. 로드FC는 난딘에르덴과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던 박시원이 허리 부상으로 대회에서 빠진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박시원은 로드FC 간판이자 국내 라이트급을 대표하는 파이터. 로드FC 프로 무대에서 5전 전승을 쌓았는데, 1경기를 제외하면 모두 1라운드 피니시 승리를 거둔 강자다. 7개월 만에 돌아오는 박시원과 또 다른 라이트급 강자 난딘에르덴의 경기는 타이틀전에 못지않은 무게감을 자랑했다.

대회 이틀을 남겨두고 박시원이 부상으로 빠진다는 소식은 경기를 기대했던 팬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로드FC는 팬들의 실망감을 인지하여, 예매를 취소하게 된다면 수수료를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하루 뒤 계체를 앞두고 양지용이 박시원의 대체 선수로 난딘에르덴과 경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세컨드로 서울에 왔던 양지용이 경기를 24시간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박시원을 대신해 싸우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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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용은 로드FC와 일본 최대 격투기 단체 라이진을 오가며 9승 2패 전적을 쌓은 강자. 탭폴로지에 따르면 아시아 밴텀급 1192명 중 22위이며, 한국에선 김수철과 김재웅에 이어 3위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상대인 난딘에르덴은 무려 두 체급이 높다. 몽골 복싱 국가대표 출신으로, 한국 격투기계 라이트급 4위로 평가받는 강자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 경기를 위해 수 개월을 훈련한 난딘에르덴과 달리 양지용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양지용이 쌓아 온 9승 2패라는 전적에 흠집이 날 수도 있는 결정이었다.

왜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자원한 것일까. "지난 대회 버팅 이슈로 팬들에게 실망을 드린 것 같아서, 은혜를 갚고자 출전하게 됐다"며 "(박)시원이가 부상으로 아웃됐다는 사실을 비행기에서 내려서 알았다. 대회사에 가서 적극적으로 어필을 했다. 마이크를 잡고 있는 지금 두 시간 전에 오카 형(난딘에르덴)이 수락을 해줬다"고 말했다.

양지용은 지난해 12월 29일 열린 로드FC 071 대회에서 김수철을 TKO로 꺾고 밴텀급 토너먼트 우승자가 됐다. 그런데 경기 후 버팅 반칙으로 판정이 번복되면서 경기 결과가 노컨테스트로 바뀌었다.

양지용이 잃은 것은 승리와 우승 상금만이 아니었다. 고의로 버팅 반칙을 했다는 '악플'을 비롯한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양지용은 이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언젠가 로드FC 팬들에게 은혜를 갚겠다고 다짐했다. "파이터라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난딘에르덴을 향해 "로드FC 최고 타격가가 누구인지 지켜봐 달라"고 출사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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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체급 차이는 확연했다. 계체를 통과하고 몸집이 커진 난딘에르덴은 양지용보다 눈에 띄게 크고 길었다.

'거인 같은' 난딘에르덴을 향해 양지용이 전진했다. 특유의 폭발적인 러쉬로 왼손 훅을 적중시켰다. 장충체육관이 웅성였다.

하지만 두 체급 위인 난딘에르덴은 단단하고 묵직했다. 난딘에르덴의 왼손 훅 한 방에 양지용이 휘청였다. 후속타에 양지용은 다리가 풀리고 다운됐고, 연타에 경기가 끝났다. 1라운드 1분 25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양지용은 눈과 다리가 풀리고, 다운되는 순간까지 난딘에르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양지용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양지용은 "두 체급 위 선수에게 졌으니, 세 체급 위와 싸우겠다"는 말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로드FC 072를 구한 영웅은 양지용 한 명이 아니다. 부상으로 빠진 김태인을 대신해 일본의 헤비급 강자 세키노 타이세이와 맞설 상대로 권아솔이 나섰다.

타이세이와 메인이벤트를 장식할 예정이었던 김태인은 무릎을 다쳐 대회 하루 전 출전이 무산됐다.

대회 하루 전 메인이벤터 중 한 명이 빠지면서 메인이벤트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계체 현장에서 권아솔이 출전을 자원한 것이다.

로드FC 라이트급 챔피언을 지냈던 권아솔은 2022년 나카무라 코지와 경기를 끝으로 프로 무대를 떠났고, 자신이 만든 단체 파이터100을 운영하는 등 경영인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반면 타이세이는 일본 단체와 로드FC를 오가며 8승 6패 전적을 쌓은 강자. 지난해에만 3경기를 뛸 정도로 선수 생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사실상 승패를 알 수 있는 은퇴 선수와 현역 선수의 대결. 하지만 권아솔은 스텝을 밟고 주먹을 휘둘렀다. 10년 넘게 싸웠던 파이터 본능은 남아 있었다. 5분을 버텨 내면서 1라운드 종료 공이 울렸다.

권아솔의 저항은 2라운드를 넘기지 못했다. 타이세이의 묵직한 왼손 훅 한 방에 휘청였고, 이어진 펀치 연타에 쓰러졌다.

무기력하게 쓰러진 권아솔을 바라보며 몇몇 관계자들은 눈물을 보였다. 목발을 짚고 세컨으로 권아솔을 도왔던 김태인도 미안한 마음에 고개숙였다.

특히 마음이 무거웠던 김태인을 위로한 건 권아솔이었다. 오히려 경기장을 빠져나가면서 김태인의 뒤통수를 툭 때리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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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2월 1일 육군체육관을 개보수해 문을 연 장충체육관은 국내 최초의 실내체육관으로, 50여 년간 실내 스포츠의 산실 역할을 해왔다. 특히 프로레슬링, 권투, 씨름 등을 개최하면서 '격투스포츠의 메카'로 각광받았다. 로드FC가 기반을 잡고 성장한 곳이기도 하다.

2021년 7월 로드FC 058 대회 이후 4년 만에 여는 장충 대회였기 때문에 타이틀전만 세 개를 준비하는 등 초호화 대진이 꾸렸다. 늘어난 국내 종합격투기 인기가 더해지면서, 이번 대회는 일찌감치 모든 표가 팔렸다.

위기의 장충 대회를 살린 건 현재 로드FC를 이끌어가고 있는 양지용과 과거 로드FC를 이끌었던 권아솔의 무모한 도전이었다. 선수들은 물론이고 많은 관계자들, 팬들이 두 선수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두 선수의 용기가 위기를 기회로 바꾼 셈이다.

이밖에 황인수가 미들급 통합 챔피언에 올랐으며, 이정현은 플라이급 챔피언이 됐다. 로드 투 UFC 준우승자인 하라구치 신은 전 페더급 챔피언 박해진에게 압승을 거두며 기량을 증명했다.

박현빈·편예준·조준건 등 로드FC가 자랑하는 신진급 선수들은 본 대회 못지않은 경기력으로 대회 열기를 끌어올렸다. 특히 2007년생 편예준은 이번 대회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아마추어 무대부터 탄탄하게 기량을 쌓고 프로 무대까지 올라 장충 대회 1부를 장식한 선수들 역시 이번 대회를 빛나게 한 영웅들이다.

사진 제공 | 로드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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