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홍명보호가 또 한 명의 '걸출한 가능성'을 품에 안은 분위기다.

옌스 카스트로프(21,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가 분데스리가 무대와 태극마크를 동시에 품은 ‘이중 심장’으로 팬들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카스트로프는 22일(한국시간) 독일 레버쿠젠의 바이아레나에서 열린 2025-2026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과 4라운드 원정에 선발 출장했다.

포지션은 2선 왼쪽 날개. 그의 이름이 선발 명단에 오른 순간부터 현지뿐 아니라 국내 팬들도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었다.

그간 백업 역할을 수행하던 카스트로프가 분데스리가 데뷔 첫 선발로 72분 동안 맹활약하면서 팀의 주요 퍼즐 조각으로 올라설 가능성을 움틔웠기 때문이다.

스타팅 데뷔까지 과정이 다소 극적이었다.

분데스리가 개막 첫 3경기에서 카스트로프의 출전 기록은 7분, 15분 그리고 0분이었다. 점점 줄어드는 출전 시간에 위기감을 느낄 법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묀헨글라트바흐가 부진에 빠지고 결국 헤라르도 세오아네 감독이 경질되는 격변 속에 기회가 찾아왔다. 23세 이하(U-23) 팀을 이끌던 유진 폴란스키 감독 대행 체제가 들어서자 카스트로프는 마침내 선발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한국인 미드필더가 이날 피치에서 보여준 것은 단순히 ‘젊은 에너지’가 아니라 ‘즉시 전력감’으로서 안정감이었다.

전반 19분 묀헨글라트바흐 수비형 미드필더 야니크 엥겔하르트가 날카로운 패스를 전방으로 찔렀고 이어 우 측면에서 조 스캘리가 빠른 크로스를 올렸다.

크로스는 카스트로프 발끝을 살짝 비껴갔다. 비록 직접 마무리하진 못했지만 상대 수비를 흔드는 움직임과 침투 타이밍에서 재능을 드러냈다.

전반 23분 공격 본능을 번뜩였다. 로코 라이츠가 절묘한 스루패스를 찔러줬고 카스트로프는 침착하게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비디오판독(VAR) 결과 오프사이드가 선언돼 데뷔골이 아쉽게 무산됐다. 아쉬움에 고개를 떨궜지만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팬들에게 ‘왜 이 선수가 선발로 나왔는질’ 증명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경기 후 폴란스키 감독은 “운이 조금만 따랐다면 이길 수도 있었다. VAR이 없던 시절이라면 인정됐을 골”이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동시에 “내 문은 모든 선수에게 열려 있다. (카스트로프 같은) 젊은 자원도 반드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며 무한 경쟁을 예고했다.

이는 팀 내 젊은 피를 향한 단순한 독려 차원이 아니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폴란스키호 전술에 녹아들 기회가 주어질 것이란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날 카스트로프는 아쉬운 골 취소 장면만 남긴 것이 아니었다. 전반 40분 과감한 드리블 돌파로 수비를 끌어낸 뒤 스캘리에게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줬다.

스캘리 슈팅은 골키퍼 선방에 막혔지만 장면 자체가 카스트로프 창의성과 침착성을 아울러 보여줬다.

또한 수비 가담도 성실했다. 상대 빌드업 라인을 압박하며 흐름을 끊는 역할을 수행했고 팀이 필요로 할 때 적극적으로 몸을 날려 상대를 저지했다.

축구 통계 전문 풋몹은 카스트로프에게 평점 6.6을 부여했다. 대단히 높은 점수는 아니지만 패스 성공률 82%, 4차례 태클 성공 등 스탯에서 유의미한 포인트가 적지 않았다.

그의 활약은 독일 현지서만 주목받지 않았다. 한국 팬에게도 이러한 내용들이 특별히 다가왔다.

불과 2주 전 카스트로프는 홍명보호 깜짝 발탁 멤버로 미국-멕시코와 A매치에 출전해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다.

그 순간부터 그의 이름은 한국 축구 팬들 뇌리에 선명히 각인됐다. “한국 팬들 응원이 나를 뛰게 한다” 말하던 소년이 이제 독일 분데스리가 피치에서 직접 그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날도 VAR로 골이 취소되자 원정석에서 태극기를 흔들던 교민 팬들이 일제히 카스트로프 이름을 연호했다.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한국과 독일을 잇는 '특별한 가교'가 카스트로프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장면이었다.

전술적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폴란스키 감독 체제의 3-4-2-1 대형 속에서 카스트로프는 라이츠, 케빈 슈퇴거와 함께 빠른 공수 전환 중심에 섰다.

압박 후 전개되는 첫 패스 질을 높이며 하프스페이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마치노 슈토와 연계 플레이서도 원활한 호흡을 보였다. 선발 기회를 받았다는 차원을 넘어 신임 사렵탑 구상 속 핵심 퍼즐로 떠오를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후반 25분 레버쿠젠의 맬릭 틸만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경기 종료 직전 해리스 타바코비치가 극적인 헤더 동점골을 꽂아 가까스로 패배를 모면했다.

묀헨글라트바흐는 올 시즌 4경기에서 2무 2패, 승점 2를 쌓는 데 그쳐 17위에 머물러 있다. 강등권 위기 속에서도 폴란스키 감독은 젊은 피를 과감히 기용했고 카스트로프는 그 선택에 부응하며 팬들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스토리는 국내 팬들에게 더욱 특별하다. 2022년 1월, 뉘른베르크(독일)에서 프로 입단을 모색하며 시작한 여정은 2부리그 네 시즌을 거쳐 올해 묀헨글라트바흐 이적이란 결실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단련된 근성과 기량에 태극마크를 달고 뛴 국제대회 경험이 더해지면서 카스트로프는 분데스리가 포장지를 두른 유망주를 넘어 ‘양국 축구 스타일을 집약한 보석’으로 성장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한국 축구가 카스트로프라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품었다는 사실이다. 분데스리가와 태극마크, 두 무대가 그의 미래를 동시에 비추고 있다. 그리고 이날의 72분은 그 찬란한 시작을 알리는 서막으로 기능할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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