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구의 젖줄인 초중고 체육 현장에서는 '제2의 김연경'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친 지 오래다. 이에 CBS노컷뉴스는 지난달 막을 내린 제36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 현장에서 직접 들은 지도자들의 고충을 바탕으로 한국 배구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연속 기사를 싣는다.
'제36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 개막일인 8월 29일 경북 영천 최무선관에서 18세 이하 여자부 전주근영여고와 제천여고의 경기가 열리고 있다. 역대 최다인 75개 팀이 출전한 이번 '제36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 는 영천체육관, 영천생활체육관, 최무선관, 영청 금호체육관 등에서 9월 5일까지 일주일간 펼쳐진다. 영천(경북)=황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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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싣는 순서 |
| ① 중고배구 현장의 절규 "기본기 부족? 운동할 시간조차 부족해요" ② 엘리트 체육 vs 스포츠 클럽, 경쟁 아닌 상생의 해법을 찾아서 |
최근 배구계 안팎에서는 엘리트 체육과 스포츠 클럽 간의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엘리트 체육 관계자들은 "스포츠 클럽 현장에는 각종 지원금이 늘어나는데, 정작 선수를 육성하는 엘리트 체육은 예산이 줄고 있다"며 불만을 제기한다. 지원이 줄어든 만큼 선수 수급과 팀 운영에 어려움이 커졌다는 하소연이다.
엘리트 체육은 선수 육성의 뿌리를 지켜왔지만 최근 들어 스포츠 클럽 중심의 생활체육 정책이 강화되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단순한 예산 문제를 넘어 한국 체육의 구조적 위기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특히 선수 수급난이 심각하다. 학생 수 감소로 인해 팀 유지가 어렵고, 우수 선수를 확보하기 위한 비용 부담도 커졌다. 이는 최근 여자 배구의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강등을 비롯한 국제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다만 이를 스포츠 클럽 지원 확대의 영향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한국배구연맹(KOVO) 관계자에 따르면, 과거에는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 선수를 많이 배출한 학교는 그만큼 지원금을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남자부는 2022년, 여자부는 2023년부터 지원금 배분 방식이 바뀌었다.
매년 많은 프로 선수를 배출하는 배구 명문 학교 입장에서 지원금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스포츠 클럽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서 생긴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연맹 관계자의 설명이다.
스포츠 클럽의 현실도 녹록지 않다. 지자체와 공공기관 중심의 지원은 일부 클럽에 한정돼 있고, 대부분의 민간 클럽은 인건비와 임대료 부담 속에 운영난을 겪고 있다. 매년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줄고 있는 가운데, 한 스포츠 클럽 관계자는 "내년부터 지원금이 끊긴다는 얘기도 나온다. 아직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클럽으로서는 매일 불안에 떨고 있다"고 호소했다.
'제36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 개막일인 8월 29일 경북 영천 영천체육관에서 18세 이하 남자부 수성고와 인하사대부고의 경기가 열리고 있다. 역대 최다인 75개 팀이 출전한 이번 '제36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 는 영천체육관, 영천생활체육관, 최무선관, 영청 금호체육관 등에서 9월 5일까지 일주일간 펼쳐진다. 영천(경북)=황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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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배구협회는 스포츠 클럽 활성화를 위해 올해 디비전 리그를 출범해 운영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하는 디비전 리그는 생활체육에서 출발해 점차 전문체육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선순환 구조를 갖추려면 해결해야 할 큰 숙제가 있다. 두 영역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면 갈등만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엘리트 체육이 '선수 육성'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면, 스포츠 클럽은 '사업'과 '운영 지속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때문에 서로를 경쟁 상대로 인식하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에 김재남 일신여상 감독은 "스포츠 클럽은 엄연히 사업"이라면서 "엘리트 체육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목적인데, 스포츠 클럽과 목적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연계될 수 없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이어 김재남 감독은 "스포츠 클럽에서 잘한다고 하는 아이들이 엘리트 체육에 오면 얼마 못 버티고 그만둔다"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했던 아이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 스포츠 클럽과 엘리트 체육의 수준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엘리트 체육 현장에서는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스포츠 클럽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후인정 수성고 감독은 "최근 클럽에서 데려온 선수들이 꽤 많다"면서 "당장 급하니까 데려오는데, 솔직히 엘리트로 키우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나도 이번 대회가 끝나면 스포츠 클럽을 한 바퀴 돌 계획"이라면서 "그만큼 선수 수급이 잘 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제36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 개막일인 8월 29일 경북 영천 영천체육관에서 18세 이하 남자부 수성고와 인하사대부고의 경기가 열리고 있다. 역대 최다인 75개 팀이 출전한 이번 '제36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 는 영천체육관, 영천생활체육관, 최무선관, 영청 금호체육관 등에서 9월 5일까지 일주일간 펼쳐진다. 영천(경북)=황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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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클럽을 운영 중인 임도헌 삼성화재 단장은 "스포츠 클럽에서 운동하는 아이들이 엘리트 체육으로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면서 "엘리트 체육에 적응하기 힘들면, 잘 적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엘리트 체육은 성적 위주로 훈련하지만 스포츠 클럽은 흥미 위주라 성적도 중요하지만 연령별 프로그램을 구성해서 흥미를 쌓게 해야 한다"면서 "성적을 내기 위해 강압적으로 하면 선수들이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확실한 목표를 설정해 주고 명확하게 설명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스포츠 클럽 관계자는 엘리트 체육과 함께 경쟁하는 대회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엘리트 체육도 클럽을 보고, 클럽도 엘리트 체육을 보며 성장해야 한다"면서 "클럽 선수들이 엘리트 체육 선수들과 같이 대회를 치르면서 이들을 동경하고,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클럽의 인프라가 좋아지고, 사람이 많아져야 엘리트 체육에서 데려갈 명목이 생긴다"고 전제했다. 이어 "클럽이 작은데 엘리트 체육으로 가는 건 쉽지 않다"면서 "배구를 하는 사람이 많아야 데려갈 사람도 많아지고, 스포츠 클럽의 실력 안 좋더라도 하는 사람이 많아야 엘리트 체육이 살아난다"며 스포츠 클럽 활성화를 주장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지원금'이 아니라 '체계'다. 엘리트 체육과 스포츠 클럽이 상생하려면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이를 조율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재능 있는 선수를 키우는 엘리트 체육의 전문성과 스포츠 클럽의 저변 확대 기능이 결합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 한국 체육이 진정한 선순환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엘리트 체육과 스포츠 클럽의 상생 모델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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