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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이슈 스타와의 인터뷰

    "무대 한 번에 1kg 빠지는듯, 관객이 함께 버텨주신다" 김신록의 '프리마 파시'[인터뷰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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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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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관객이 함께 버텨주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극 '프리마 파시'(제작 ㈜쇼노트)로 1인극의 힘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는 배우 김신록은 담담하게 말했다.

    오는 11월2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한국 초연이 이어지는 '프리마 파시'는 성폭력 가해자를 변호하던 주인공 테사가 한 순간 성폭력 피해자가 된 뒤 겪게되는 일을 담은 1인극이다. 지게 될 사건임을 뻔하 알면서도 외로운 투쟁에 나선 주인공의 782일을 2시간 넘는 무대에 오롯이 담아낸다. 2019년 호주에서 초연된 이후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를 강타하며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그 제목인 '프리마 파시'(Prima Facie)' "처음 보기에는"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반증이 없는 한 진실로 간주하는 사실이나 주장을 뜻하는 법률용어다. 연극은 '프리마 파시'와 실제로 벌어진 일 사이, 그 간극을 집요하게 드러내 보인다. 그에 그치지 않고 성폭럭 피해 입증의 구조적 한계를 꼬집으며 제도의 변화를 요구한다.

    "호주에서 초연됐던 2019년은 미투 열풍이 불던 시기예요. 당시엔 좀 더 명확히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했죠. 6년이 흘렀어요. 서로 혐오하거나 손가락질한다고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젠더적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기도 합니다. '너 잘못했어'라고 하기에는, 큰 구조 안에서는 모두가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각성, 세계에 대한 반성으로 나아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그리고 이 작품이라면 나아갈 수 있겠다. 지금 사회에 필요한 건 그렇게 나아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했습니다."

    연극이 시작되면 부채꼴 모양의 객석을 마주한 원형극장에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다. 김신록의 테사는 자신만만한 확신에 찬 모습으로 등장한다. 성폭력 사건 가해자의 편에 서서 손쉬운 승리를 거두는 데 도취돼 있던 그녀는 끔찍한 사건을 직접 겪고 무너져내린다. 스스로를 변호하면서야 피해를 입증하고 인정받기가 얼마나 막막한기를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 말하기로 한다. 스스로를 향해, 그리고 다른 여성들과 세상을 향해. 김신록은 때로 폭발적이고, 때로 서늘하며, 그리고 한없이 처연하기도 한 모습으로 2시간 넘는 무대를 홀로 이끌어낸다.

    "그녀는 '재판장님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하고 드디어 할말을 시작해요. 그 첫 마디는 내가 여자들에게 이런 잘못을 저질러왔다는 처절한 고백이죠. 그녀는 교육을 잘 받은 능력있는 개인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끝까지 믿은 것 같아요. 끝까지 하다 안 됐을 때에야 구조의 문제일 수 있고, 우위에 서서 엄청난 폭력을 가했다는 걸 처절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 엄청난 반성이 있기에 구조를 말할 수 있다, 이런 깨달음까지 다 담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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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의 도움 없이 극과 극의 감정선을 오가는 드라마와 감정의 진폭은 보는 사람이 기가 질릴 정도다. 심지어 육중한 테이블을 밀고 돌리며 무대 세팅까지 배우 홀로 직접 해내는데, 점점 힘들어지는 테사의 모습에 관객까지 절로 이입하게 된다. 김신록은 "실시간으로 1kg빠지는 것 같다. 관객들이 실시간으로 살 빠지는 게 보인다고 한다"고 웃어보였다.

    여기에 더해진 어마어마한 대사량은 기가 질릴 정도다. 2시간 넘는 1인극 내내 오디오가 거의 비지 않을 정도다. 김신록은 "예전에는 대본을 쫙 외우고 연습실, 공간을 찾고 했는데 지금은 공간과 위치, 몸이 찾아져야 거기에 말이 붙어서 외우게 된다. 거의 마지막까지 대사를 유려하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뒤로 갈수록 체력적으로도 힘들어 테이블을 미는 게 점점 힘들어지는데도 할 일을 하고 그 위에 바로 서면서 이 작품이 끝나요. 이것이 바로 생존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요. 배우가 실시간으로 두시간을 쓰니 그것이 맥락과 맞아들어가면 인물과 극의 상황과 맞물리는 힘이 있어요. 그것이 1인극의 매력이죠. 그런 초월적인 힘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그녀와 함께하는 관객들은 '프리마 파시'의 또 다른 힘이자, 김신록에게도 힘이 되는 존재들이다. 김신록은 "관객들도 힘들 수 있다. 그 시간을 관객들도 같이 견뎌주시는 것 같다"며 "그 분들이 살아있는 공감과 지지를 보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살아있는 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엄청난 책임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굉장히 많이 우세요. 자기 경험에 빗대서든 그냥 저무대에서 어떤 일을 당하고 그걸 겪어나가는 사람에 대한 연대로서든 관객들이 같이 버텨주신다는 걸 느끼게 되죠. 특히 커튼콜이 그래요.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이렇게 힘들고 중요한 이야기를 해줬고 그것을 내 눈에 담아 열정을 다해 함께했다고, 그 마음을 몹시 보여주고 싶어하신다는 걸 느껴요. 그래서 너무 감사하고 회복이 됩니다. 테사가 일어나 두 발로 서는 순간, 배우로 돌아와서 해내고, 관객과 서로에게 '귀한 경험이야, 고생했어' 하며 많은 사람을 소환해 짧은 작별을 고하고 헤어져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에요."

    이번 '프리마 파시'에선 김신록 외에 이자람 차지연 세 명이 테사를 연기했다. 그들 각자의 매력과 걸어온 길이 다르듯 세 명의 테사 또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김신록은 "여러명이 관객을 맞는 시스템이 갖는 기쁨이 있다. 똑같은 대본을 달리 해내는 걸 보며 느끼는 신기함과 아름다움, 배움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지연 배우는 아주 사실주의적으로 감정적으로 큰 진폭을 써서 이 일을 의심없이 겪어내는 힘이 있다. 이자람 배우는 판소리 자체가 1인 공연이다보니까 한 명이 좌중을 이끌어가는 힘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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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어 무대에서도 믿고 보는 연기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김신록은 "TV나 영화를 하면서 무대를 하면 장점이자 기쁨이 뭐냐고 생각하냐면, 연극을 처음 보시는 분들이 오시는 것"이라면서 "제 공연에는 남녀 커플도 오고 나이드신 분도 꽤 앉아계신다. TV나 영화에서 본 저를 보고 싶어 오신 분들도 있는 것 같고 그런 분들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젠더를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특히 지금 공연되기 때문에 더더욱. 2019년에 공연됐다면 가해자 피해자를 구분하고 '가해자 정신차려라. 법이 피해자 말을 더 듣고 제대로 지목해라' 이럴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더 구조에 대해 나가서 '우리 모두가 어떤 세계를 꿈꿔야 할까' 이야기할 수 있으니. 지금에서야, 더 다정하고 안전하게 함께 더 어울려 살 수 있는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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