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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고를 졸업하고 202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KIA의 2차 2라운드(전체 14순위) 지명을 받은 장민기는 향후 KIA 마운드의 좌완 전력을 이끌어나갈 유망주 중 하나로 큰 기대를 모았다. 단순히 가능성이 아니라 실적으로도 보여줬다. 데뷔 시즌이었던 2021년 1군 21경기에 나가 23⅓이닝을 던지며 2승1패2홀드 평균자책점 3.47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후 곧바로 군에 가 미래를 기약했다.
상무에서 2년을 보내고 제대한 장민기의 의욕은 불탔다. 제대 후인 2024년 다시 1군에 올라가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런데 그때 부상이 찾아왔다. 무릎이 말썽이었다. 장민기는 “2024년 시범경기를 던지고 조금 안 좋다 생각했었다. 재활에 내려간 뒤 조금 괜찮아져서 복귀를 하고 잔류군에 갔는데 바로 또 문제가 생겼다”면서 “다시 재활에 가서 계속 왔다 갔다만 하면 시간만 버릴 것 같았다. ‘수술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코치님께서 먼저 물어봐 주셔서 수술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수술을 결정할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무릎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다. 십자 인대는 아니어서 빨리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도 생각했다. 그러나 연골이 상당히 손상된 상태였다. 장민기는 “활차구 연골이 평평해야 하는데 거기가 밧줄처럼 터져 있었다. 그것을 다 걷어냈다”고 설명했다. 재활 기간만 자그마치 1년이 걸렸다. 어깨가 아픈 것도, 팔꿈치가 아픈 것도 아니었는데 1년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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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재활을 하는 동시에 그냥 앉아서 공을 던졌다. 정상적인 투구는 아니었고, 어떻게 보면 처량한 신세였지만 그래도 공을 던질 때마다 한결 나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장민기는 “공을 던지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미소를 보였다. 천성이 투수였고, 다시 마운드에 서 그 느낌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포기하지 않고 재활한 결과 올해 퓨처스리그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었다. 그리고 팀의 마무리캠프에도 참가해 본격적인 예열에 들어갔다.
무릎에서는 계속 뚝 소리가 난다. KIA 오키나와 마무리캠프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러닝 훈련도 힘이 들 수밖에 없다. 뛰는 건 자신이 있는데 한참 뛰면 무릎이 붓는다. 장민기는 “욱신욱신거리는 것은 있는데 그런 것은 몇 년 지나야 된다고 하더라. 야구 선수들 중에서도 무릎 수술을 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 것으로 운동을 빼고 싶지는 않다. 일단 참고 열심히 보강을 하고 있다”고 단단한 각오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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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상황도 장민기의 의욕을 되새김질한다. 올해 KIA는 믿었던 좌완 전력이 무너지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좌완 필승조인 곽도규가 팔꿈치 수술로 이탈했고, 나머지 좌완 필승조들의 활약도 기대만 못했다. 곽도규가 내년 중반에야 복귀할 수 있는 가운데 장민기는 반드시 이 기회를 잡겠다는 각오다. 올해는 자리가 비었을 때 자신도 부상으로 고전해 그 기회를 놓쳤다. 1군에 올라가든 말든, 기회가 있을 때 준비되어 있는 게 장민기의 목표다.
공을 못 던지던 시절 장민기는 포스트잇에 여러 좋은 글귀를 적어 책상 앞에 붙여놨다고 했다. 그 글귀를 보며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글귀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그 조그마한 시선 때문에 내 하루를 망치지 말자”였다. 기대치가 사라진 자리에는 비아냥이 남는 법이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장민기는 “스프링캠프에 따라가서 1군에 붙어 있을 만큼 붙어 있고 싶다. 조금이라도 팀이 이길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게 목표”라면서 2026년을 조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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