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달마배 스노보드 대회' 열며 유망주 육성·후원
김상겸·유승은·최가온 등 달마배 출신…이상호는 선수 불자회 이끌어
"스노보드의 '자유', 불교 정신과 맞닿아…관심·지원 이어지길"
2007년 달마배 대회에서 하프파이프 경기 선보이는 호산스님 |
(남양주=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이탈리아에서 열리고 있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에선 한국의 전통 '메달밭'인 빙상 대신 설상, 그것도 스노보드 종목에서 연이어 승전보가 들려오고 있다.
불모지에 가깝던 스노보드에서 잇따라 메달이 나온 것도 놀랍지만, 우리 스노보더들의 성장 뒤에 불교가 있다는 사실도 새삼 조명되며 놀라움을 주고 있다.
그 중심엔 '스노보드의 대부'로 불리는 호산스님(61)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경기도 남양주 봉선사의 주지스님으로 있는 호산스님은 지난 12일 연합뉴스와 만나 "우리 선수들이 모두 너무 애를 많이 썼다"며 대표 선수들의 선전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이번 대회 한국 첫 메달이자 한국의 올림픽 통산 400번째 메달을 딴 김상겸(37·하이원)과 빅에어에서 한국 여자 스키·스노보드 선수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수확한 유승은(18·성복고), 한국 스키 첫 금메달의 주인공 하프파이프 최가온(18·세화여고)을 비롯한 우리 스노보드 대표 선수 중 상당수는 '달마 키즈'이자 '호산스님 키즈'다.
호산스님을 중심으로 불교계가 2003년부터 20년 넘게 개최해온 '달마배 스노보드 대회'에 출전했거나 후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스노보드 대부' 호산스님 |
1980년 출가한 호산스님이 스노보드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5년부터다.
"그땐 보드 타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 데다 10대들이 힙합바지 있고, 머리 노랗게 염색하고 타니까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었어요. 보드 타는 아이들에게 '왜 타느냐'고 물었더니 보드는 스키와 달리 앞뒤가 따로 없어서 더 자유롭게 탈 수 있고, 보드를 탈 때면 속박에서 벗어나 늘 자유를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그 '자유'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불교에서도 생사해탈(生死解脫)의 자유를 추구하고, 우리가 '대자유인'이 되기 위해 출가했기 때문에 뭔가 스노보드 타는 친구들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죠."
서른 무렵 스님은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 짜장면, 탕수육도 사주며 함께 스노보드 '수행'을 했다.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고, 그들이 어렵게 훈련하는 이야기도 들으면서, 작은 도움이 되고자 스노보드 대회를 만들었다. '달마배'라는 이름은 선수들이 직접 지었다.
2007년 달마배 대회 모습 |
"국내에선 스노보드 훈련할 곳이 없어서 전지훈련 비용이 많이 듭니다. 선수들이 겨울엔 연습을 해야하니 정식 직장을 구하기도 어려워 식당 아르바이트나 일용직을 하면서 돈을 모아 훈련을 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우리가 대회를 열어주면 좋겠다 생각했죠."
처음엔 단순히 선수들을 돕기 위한 대회로 시작했다가,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FIS) 월드컵 출전을 위한 포인트가 인정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대회로도 치러졌다. 최근엔 주니어 선수들 육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년엔 꿈나무 선수들을 훈련하기 위한 캠프 형식으로 치렀다. 대회 성격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달마배'라는 이름과 스노보드를 육성한다는 취지는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2008년 달마대회 당시 호산스님 |
한 번 개최에 5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드는, 그것도 비인기종목 대회를 쭉 이어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스님은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고 했다.
"전국체전 같은 대회는 엄숙하기도 하고, 입상한 선수들 위주라 시상식 때 다른 선수들은 다 집에 가죠. 그런데 우리 대회는 입상한 선수나 아닌 친구나 시상식을 제일 좋아합니다. 행운권 추첨도 있고 상품도 나눠주고 다같이 뷔페 식사도 해요. 달마배 출전이 좋은 기억으로 남는 거죠."
불교계는 달마배 외에도 꾸준히 선수들과 인연을 이어가고 격려하며 '최대 스폰서'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올림픽 출전 전 호산스님 찾은 유승은 선수 |
호산스님과 불교계의 후원은 선순환으로도 이어져 후원을 받은 선수들이 자라서 대회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도 하고, 후배 육성을 위해 후원금을 보태기도 한다. '스포츠 포교'가 빛을 발한 덕분인지 상당수 스노보드 선수가 불자인데, 이상호 선수가 회장으로 '한맘불자회'를 이끌며 유망주 지원에도 나섰다.
지금은 주지의 소임과 수행을 겸하느라 보드 탈 시간이 거의 없지만 달마배 대회를 비롯해 1년에 한두 번은 스키장을 찾는다. 예순의 나이에도 최상급자 코스에서 스노보드를 탈 정도로 몸이 보드를 기억한단다. 올해도 동안거(겨울철 집중수행)가 끝나면 스키장을 찾을 생각이다.
'스노보드 대부' 호산스님 |
올해 달마배 대회는 올림픽 출전 선수들과 어린 선수들이 함께 하는 일종의 '올림픽 뒤풀이'처럼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새벽 3시면 기상하는 스님의 일과 덕에 시차 어려움 없이 동계 올림픽을 보고 있다는 스님은 메달 딴 선수는 물론 운이 따라주지 않아 못 딴 선수들까지 모든 선수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했다. 특히 부상과 어려운 훈련 여건에도 첫 출전에서 새 역사를 쓴 '승은이'를 대견해했다.
호산스님은 선수들이 기술 훈련을 하러 외국에 가야 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국내에 시설을 마련하는 등 스노보드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스노보드에 대한 지금의 관심이 '반짝'에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스님의 바람이다.
"이미 너무 큰 것을 이룬 '배추보이' 이상호 선수나 은퇴를 고민했던 맏형 상겸이나 다들 굉장한 스토리가 있어요. 정말 영화로 만들고 싶어요. 제목은 '달마야 보드 타자' 어떻습니까? 하하."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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