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사진 ㈜쇼박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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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감성을 건드리면서도 새로움을 잃지 않은 서사, 고정관념을 벗어난 캐릭터들의 호연 그리고 인증과 몰입을 서슴지 않았던 관객의 호응과 일정의 행운까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천만 관객에는 제작진이 의도했던 것, 의도하지 않았던 것까지 모두 맞아들어간 ‘삼박자’의 합이 있었다.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이 새해 첫 천만 영화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관통합전산망 집계에서 ‘왕사남’은 지난 6일 하루 총 27만1733명의 관객을 들여 누적관객 1004만9718명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24년 5월15일 천만 관객을 넘긴 허명행 감독의 ‘범죄도시 4’ 이후로 660일 만이며 1년 10개월이 걸렸다.
지금까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다뤄져 온 단종의 비극적인 서사 그리고 익숙한 유해진, 유지태 등의 이름 게다가 재기는 넘쳤지만, 유난히 흥행과는 거리가 있었던 장항준 감독의 이름 때문에 ‘왕사남’은 시작 당시에는 인기는 있겠다는 예상이 있었지만 32일 만의 천만 관객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는 뒤집혔다.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한 장면. 사진 ㈜쇼박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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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인 1. 익숙한 듯 다른 서사
‘왕사남’은 조선 6대 국왕 단종이 삼촌이 세조에게 밀려 왕에서 물러난 ‘계유정난’ 이후를 다루고 있다. 영화에서도 등장하지만, 이 계유정난을 다룬 사료는 많지만 정작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나 단종 이홍위가 어떻게 살았는지 기록한 사료는 없다. 제작진은 단종이 유배를 떠난 후 세상을 떠나기까지 짧은 기간을 역사적 가설을 기반으로 새롭게 창작해냈다.
하재근 영화평론가는 “단종의 이야기는 익숙한 소재에 그 비극성 때문에 한국인이 좋아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에 새로운 부분을 담았다”면서 “수양대군 중심의 피해자 서사가 아닌 단종 중심의 서사 그리고 역사가 비어있는 부분을 상상으로 채운 부분이 관객에게 새로움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한 장면. 사진 ㈜쇼박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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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욱 영화평론가 역시 “사극에서 왕의 이야기를 보면 거의 ‘남녀상열지사’(남녀 간의 연애담)에 대한 소재가 많다. 하지만 ‘왕사남’은 브로맨스를 담백하게 담아냈다”면서 “단종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간 서사가 없었다는 점이 새로움으로 다가왔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비극으로 끝나는 단종의 서사를 엄흥도와의 이야기를 구체화해 표현함으로써 클라이맥스의 감동도 잡았다. 영화는 익숙한 이야기를 하지만 신선함이 있고, 보편적인 웃음과 눈물도 놓치지 않은 ‘공감의 폭이 넓은’ 작품이 됐다.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한 장면. 사진 ㈜쇼박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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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인 2. 재발견된 캐릭터의 열연
영화는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떠난 단종 이홍위(박지훈)가 광천골 마을사람들과 교감하고, 촌장으로 설정된 엄흥도(유해진)와는 유사 부자지간의 서사까지 이뤄내면서 캐릭터의 재해석을 보였다. 익살스럽지만 의리가 있고, 굳센 의지도 동반했던 엄흥도 그리고 유약하지만은 않은, 강단이 있는 성격의 단종이 있었다. 게다가 빌런인 한명회(유지태) 역시 칠삭둥이에 왜소하다는 편견을 깨고 기골이 장대하게 그려졌다.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한 장면. 사진 ㈜쇼박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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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욱 평론가는 “유해진은 역할이 확실해 ‘파묘’에서도 그렇지만 믿고 보는 배우의 연기를 했다. 그리고 박지훈 역시 자기 주도의 성격을 보이는 단종으로서 변화를 설득력 있게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유지태는 키가 작고 악독한 이미지의 한명회 캐릭터 전형성을 변화시켰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단종의 곁에서 그의 누이이자 어머니의 역할을 한 궁녀 매화(전미도)와 광천골 마을사람들을 연기한 오달수, 이준혁, 김수진, 김민, 특별출연 박지환, 안재홍 등의 연기도 섞여들며 재미의 폭을 넓혔다.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한 장면. 사진 ㈜쇼박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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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인 3. 최신 트렌드 ‘디깅(Digging)’과 만나다
아무리 잘 만든 이야기라도, 배우들이 혼신의 연기를 했더라도 시대적인 흐름, 인기의 파도를 만나지 않으면 흥행은 알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왕사남’은 연이은 호재를 만났다. 젊은 층의 새로운 문화소비의 방식 ‘디깅’과 만났고, 시기적으로도 이로웠다.
‘왕사남’ 속 단종의 비극을 만난 관객들은 단종의 인생에 크게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이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실제 단종의 유배지가 있는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는 인기 있는 식당에서나 있을 법한 ‘오픈런’의 열기가 시작됐다. 영화 개봉 이후 8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청령포를 찾았다. 단종의 묘인 영월 장릉의 지도 서비스에는 ‘단종 오빠’를 기리는 행렬이 이어졌고, 반대로 단종을 쫓아낸 세조의 묘 남양주 광릉의 댓글 창에는 ‘악성댓글’이 달렸다.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한 장면. 사진 ㈜쇼박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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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들어간다’는 뜻의 ‘디깅’은 하나의 문화 코드를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세계관을 체험하고 인증하며, 더 나아가 감정적으로도 동화하는 적극적인 방식의 콘텐츠 향유 방법을 뜻한다. 최근 다양한 세계관에 몰입한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다.
하재근 평론가는 “최근 누리꾼들은 트렌드가 되는 소재가 있으면 함께 참여하고 직접 체험하는 ‘디깅’에 익숙하다. 직접 장소를 찾고 인증도 하고, 댓글도 달면서 문화를 향유한다. ‘왕사남’이 유행의 축이 되면서 참여가 늘고, 그것이 이슈가 돼 입소문이 느는 순환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여기에 2월 초 개봉하면서 긴 설 연휴와 만났고, 이어진 3.1절 연휴 역시도 길게 이어진 시기적인 특성도 ‘왕사남’의 천만 흥행을 도왔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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