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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8 (수)

    ‘디플로맷 아카이브’ ‘폴란드 1호 한인, 하얼빈 의거의 숨은 조력자였다’···바르토시 비시니에프스키 주한 폴란드 대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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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경향

    아리랑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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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낮 글로벌 채널 아리랑TV ‘디플로맷 아카이브: 히든 스토리’(Diplomat‘s Archives: Hidden Stories)는 ‘폴란드 1호 한인, 하얼빈 의거의 숨은 조력자였다’가 방송됐다.

    방송에는 바르토시 비시니에프스키(Bartosz Wiśniewski) 주한 폴란드 대사, 이민희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종현 가천대 한의과대학 한의예과 교수가 출연했다.

    아리랑TV 외교 전문 다큐멘터리 ‘히든 스토리’는 한국–폴란드 초기 교류사를 조명하는 시리즈를 제작했다. 1편에서 바츠와프 시에로셰프스키(Wacław Sieroszewski) 작가의 ‘한국, 극동의 열쇠’, ‘월선이 기생’ 저서를 다룬 데 이어, 2편에서는 ‘폴란드 1호 한인’으로 알려진 류경집의 삶을 재조명했다.

    폴란드 최초의 한인으로 알려진 류경집의 존재를 국내에서 처음 학술적으로 연구한 인물은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이민희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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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이민희 교수 제공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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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교수는 2001년부터 5년 동안 폴란드 바르샤바대학교에서 한국 문학을 가르쳤으며, 현지에서 1세대 한인들의 행적을 조사해 왔다. 그 연구의 성과로 올해 1월 ‘폴란드 거주 최초의 한인(韓人) 류경집과 류동주 부자(父子)의 디아스포라와 한국–폴란드의 역사적 관계’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민희 교수는 “류경집은 1869년 당시 함경도 원산에서 태어나 1894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해 독학으로 한의사가 된 인물이다. 그의 본명은 ‘류승렬’이며 조선 후기 초시에 합격해 ‘류초시’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류경집은 포그라니치나야(Pogranichnaya) 일대에서도 명의로 이름을 떨치며 안중근,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들과도 인연을 맺었다. 그러던 중 그와 그의 가족 모두의 인생을 뒤흔든 역사적 사건에 깊숙이 연루되는데, 바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다.

    이 교수는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위해서 모의할 때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안내인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장남인 류동하를 의거 활동에 참여시킨 인물이 바로 류경집”임을 강조했다. 실제로 1910년 뤼순 관동지방법원에서 공개 재판을 받는 안중근 의사 일행이 담긴 사진에서 가장 앳된 얼굴의 주인공이 바로 류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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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이민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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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동하는 1년 6개월의 옥고를 거친 끝에 풀려났지만, 온 가족이 일제의 감시 대상이 돼 결국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자녀들과 헤어진 류경집은 러시아로 이주해 한의원을 열었고 결혼도 하며 안정적으로 생활을 이어갔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여파 속에서 오늘날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로 이주한다.

    류경집이 바르샤바로 이주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러시아에서 재혼한 아내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시 한국 언론이 유럽 관련 기사를 자주 보도했기 때문에 그에게 비교적 익숙한 지역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1910년대에 발행된 대한매일신보, 신한민보, 매일신보 등에서는 폴란드인들의 독립 활동 소식을 여러 차례 보도했는데, 이 교수는 “100여 년 전 한국 지식인들의 폴란드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오늘날의 수준을 넘어설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사실 폴란드는 1795년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분할된 이후 1918년 독립할 때까지 123년 동안 유럽 지도에서 사라져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겪고 있던 한국인들은 폴란드 사람들도 비슷한 역사적 경험과 독립 염원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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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천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예과 김종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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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 폴란드 대사관에서 만난 바르토시 비시니에프스키 대사는 1910년대 한국 언론이 폴란드 정세를 주목했던 사실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시기 한국 언론은 바르샤바를 둘러싼 국제 정세뿐 아니라 사회 내부의 분위기까지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폴란드인들과 조국을 점령했던 강대국들 사이의 관계를 날카롭게 분석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한국과 폴란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20세기 초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큰 영향을 받았으며, 류경집의 삶은 바로 이러한 양국 역사의 교차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류경집은 폴란드에서도 한의원을 열어 성공을 거둔다. 비교적 한인이 많았던 연해주와 달리 한의학이 생소했던 유럽에서 그는 어떻게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 가천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예과 김종현 교수는 “류경집은 바르샤바로 이주하기 전 모스크바에서 2년 동안 서양 의학과 기술을 공부했다”며 “바르샤바에서 한의원을 개업한 뒤 하얼빈에서 한약재를 수급하고, 알코올을 이용해 약물을 추출해 유럽 환자들에게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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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토시 비시니에프스키(Bartosz Wisniewski) 주한 폴란드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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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에서 성공한 한인 동포였던 류경집은 고국을 잊지 않았다. 그는 한인 유학생들과 교류했고, 네덜란드 헤이그를 방문했던 영친왕에게 한약재와 함께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 편지에는 ‘영친왕의 신분이 일본 황족이 아니라 한국의 황태자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선언해야 한다’는 직언이 담겨 있었다고 전해진다.

    20세기 초 한국과 폴란드의 교류사에서 특별한 존재감을 지닌 한인 가족의 역사를 다룬 ‘디플로맷 아카이브: 히든 스토리 – 폴란드 2편’은 3월 17일 아리랑TV를 통해 전 세계에 방송 됐고 아리랑TV 유튜브 채널에서도 풀버전을 시청할 수 있다.

    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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