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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11년 만이야… '이형택 키즈' 정현의 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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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테니스 정현, 이형택 이후 처음 메이저 대회 16강 진출

호주오픈 오늘 조코비치와 대결

"코트가 작게 느껴진다" 자신감… 승리 땐 한국 첫 메이저 8강 진출

정현에게 패한 세계 4위 즈베레프 "그는 세계 50위권 실력이 아니다"

올해 첫 메이저 테니스 대회인 호주오픈 남자 단식 3라운드(32강전)가 열린 20일 호주 멜버른 로드 레이버 아레나. 3시간 22분의 혈투가 끝나자 숨죽이며 경기를 지켜봤던 1만5000여 명의 관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축하와 놀라움이 뒤섞인 관중 반응은 한국에서 온 정현(22)을 향하고 있었다. 세계 58위 정현이 세계 4위 알렉산더 즈베레프(독일)에게 3대2(5―7 7―6 2―6 6―3 6―0)로 역전승하는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조선일보

정현이 20일 호주오픈 남자 단식 3라운드 경기 중 포효하는 모습. 이형택(오른쪽)이 2007년 US오픈에서 16강행을 확정하고 기뻐하는 모습과 닮았다. 정현은 한국 선수로는 사상 첫 메이저 대회 8강 진출에 도전한다. 정현은 이형택의 활약을 보고 자란 '이형택 키즈'다. /AP·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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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지막 세트는 상대에게 한 게임도 허용하지 않는 '베이글 스코어'인 6대0(베이글 빵 모양처럼 0점을 만들었다는 의미)으로 마무리했다. 즈베레프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듯 라켓을 바닥에 집어던진 뒤 밟아서 망가뜨렸다. 1라운드에서 미샤 즈베레프(독일·35위)를 꺾은 정현은 3라운드에서 그의 동생 알렉산더 즈베레프까지 꺾으며 16강에 진출했다.

한국 테니스 역사에서 메이저 대회 단식 16강 진출을 달성한 선수는 여자 이덕희(65)와 남자 이형택(42)뿐이었다. 이덕희는 1981년, 이형택은 2000년과 2007년 US 오픈 16강에 진출했다. 정현은 이덕희, 이형택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지만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듯 호주오픈 16강 진출이 확정된 순간 가족들이 앉아 있는 플레이어 박스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다. 경기가 끝난 뒤 정현의 이름은 인터넷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네티즌들은 "테니스가 이렇게 짜릿한 스포츠였나" "대단하다는 말밖엔…" 등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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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前세계 1위 조코비치


정현은 "이형택의 뒤를 잇는 건 좋지만 넘어서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현이 22일 오후 5시 열리는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14위)와의 16강전에서 승리할 경우 한국 테니스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정현은 단식 16강전에 집중하기 위해 남자 복식 경기(16강전) 출전도 포기했다.

단식 16강전 상대인 조코비치는 어린 시절부터 정현의 우상이었다. 세계 1위에 오른 기간만 223주에 달한다. 이번에 호주 오픈 사상 최초로 남자 단식 7번째 우승을 노리고 있다. 지금까지 조코비치는 12차례의 메이저 우승 중 절반인 6번을 호주 오픈에서 달성할 정도로 이 대회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정현은 2년 전 이 대회 1회전에서 당시 세계 1위였던 조코비치와 만나 0대3으로 완패했다. 당시 정현은 본지 인터뷰에서 "보통 말하는 '정상급 선수'와 세계 1위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며 "우상과의 경기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2년 사이 조코비치와 정현 모두 달라졌다. 조코비치는 팔꿈치 부상으로 지난해 7월 이후 투어 활동을 중단하고 재활에 집중하다 이번 대회에 복귀했다. 그사이 랭킹도 14위로 떨어졌고, 폼도 전성기 시절만은 못하다는 평가다. 정현은 지난해 11월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이탈리아) 단식에서 첫 투어 우승을 차지하며 큰 자신감을 얻었다. 한국 선수가 ATP 투어에서 우승한 건 이형택에 이어 14년 10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진수 코리아오픈 토너먼트 디렉터는 "정현이 장점인 백핸드뿐 아니라 약점으로 지적됐던 포핸드와 서브까지 확실하게 보완한 모습"이라며 "상승 분위기이기 때문에 주눅 들지 않고 맞선다면 조코비치와의 대결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6강 진출이 확정된 후 정상급 선수들에게 주로 배정되는 센터 코트(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뛴 심경을 묻자 정현은 이렇게 답했다. "2년 전 처음 센터 코트에서 경기했을 때는 코트가 크게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코트가 작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석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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