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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美 에너지 장관 된 ‘석유 재벌’... 친환경 정책 줄폐기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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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는 허구” 에너지 패권 노려

석유·가스·석탄 규제 풀고 생산 확대

조선일보

16일 미국의 신임 에너지부 장관으로 낙점된 크리스 라이트 리버티에너지 최고경영자. 라이트가 2018년 1월 셰일 가스 생산 업체 리버티에너지가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처음 거래된 것을 기념해 개장을 알리는 타종을 하고 있다.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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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16일 에너지부 장관에 ‘석유 재벌’ 크리스 라이트 리버티에너지 최고경영자(CEO)를 지명했다. 라이트는 석유와 가스 개발을 옹호하면서 지구온난화 등 기후 위기를 부정해왔던 인물이다. 트럼프는 라이트의 지명을 통해 국가에너지회의 및 담당 장관들을 필두로 민주당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기후 위기 정책 폐기를 본격화하는 한편, 석유·가스 시추를 확대하는 방안을 본격 추진할 전망이다.

트럼프는 이날 성명에서 “원자력, 태양광, 지열, 석유·가스 산업에서 일해온 그는 미국 ‘셰일 혁명’을 이끈 개척자 중 한 명”이라며 “에너지부 장관으로서 관료주의를 혁파하고 혁신을 이끌고 미국의 에너지 지배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라이트는 그간 친(親)공화당 성향의 폭스뉴스나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기후 변화가 허구이고 석유·가스 개발을 통해 미국의 에너지 자립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미 언론들은 “(라이트가)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행정부의 핵심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트럼프는 전날엔 트럼프 2기 에너지 정책을 총괄할 국가에너지회의(National Energy Council)를 신설했다. 국가에너지회의 의장은 내무부 장관 지명자인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가 이끌고, 라이트 지명자도 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트럼프는 “이 팀은 인플레이션 완화, 중국과의 인공지능(AI) 군비 경쟁에서의 승리, 미국의 ‘에너지 패권(Energy Dominance)’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에너지부 장관에 기후 변화 위기 자체를 부정하는 ‘석유 재벌’이 내정되면서 국내 산업계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석유·석탄 같은 전통 화석연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인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다 트럼프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 검토로 주가 폭락을 경험한 국내 배터리 업계는 타계책을 고민하고 있다. 국내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향후 ESS(에너지 저장 장치) 등 미국 내 수요가 큰 시장으로 변화를 염두에 두면서 대응 방향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그래픽=양진경


라이트가 이끌게 될 에너지부는 미국의 에너지 외교와 전략 비축유(SPR) 관리 등 에너지 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부처다. 화석연료 생산 확대를 통해 물가를 낮추고 미국의 글로벌 에너지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트럼프의 구상을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라이트는 매사추세츠 공과대(MIT)에서 기계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UC버클리와 MIT에서 전기공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미 언론들은 “라이트는 석유와 가스 등 화석연료가 사람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홍보하고, 기후 변화는 민주당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거침없이 주장해왔다”고 했다. 그는 작년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린 영상에서 “기후 변화라는 이름으로 퇴행적인 ‘기회 억압’ 정책이 정당화되고 있다”면서 “에너지 전환 정책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가 설립해 1992년부터 2006년까지 CEO로 이끌었던 기업 피너클 테크놀로지스는 셰일 가스 추출 공법인 ‘프래킹(fracking·수압 파쇄법)’ 기술 기업으로 1990년대 후반 상업용 셰일 가스 생산을 주도해왔다. 2011년엔 또 다른 프래킹 전문 기업 리버티에너지를 창업해 지금까지 경영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선 민주당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과거 환경 오염을 이유로 프래킹을 금지하겠다고 했다가 표심을 의식해 말을 바꾸자 트럼프가 “(해리스가) 거짓말을 했다”고 공격해 프래킹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었다.

앞서 트럼프는 대선 유세 과정에서 석유·가스 산업 규제 완화를 통해 에너지 가격을 절반 수준으로 내려 물가를 잡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 8월에는 “재임하면 18개월 안에 휘발유와 전기 등 에너지 비용을 절반으로 인하하겠다”면서 ‘반값 에너지’를 공약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반값 에너지’ 공약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라도 트럼프는 화석연료 산업 부흥이 반드시 필요하며, 바이든이 환경 문제로 중단했던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출하는 프로젝트를 즉각 승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라이트를 지명한 것은) 미국 석유 업계에는 승리이고, LNG 수출을 늘리려는 트럼프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미국의 광물 등 천연자원과 수로, 문화유산의 보존·관리 등을 전담하는 내무부 장관에는 최측근 버검 주지사를 지명했다. 버검과 라이트는 이로써 트럼프 행정부가 신설하는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의장과 위원을 각각 맡게 됐다. 위원회는 모든 형태의 미국 내 에너지의 허가와 생산, 발전, 규제, 수송과 관련된 부처와 기관으로 구성된다. 에너지와 관련한 관료주의 타파와 민간 투자 강화, 규제 혁신을 총괄할 전망이다. 또한 국가에너지회의 의장은 국가안보회의(NSC)에도 참석하게 된다. 에너지 정책을 안보 사안과 연계하겠다는 취지로 분석된다.

트럼프 정부는 반(反)기후 정책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트럼프는 내년 1월 취임과 함께 파리기후변화협정(파리협정)에서 재(再)탈퇴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석유·석탄·가스 생산 확대를 위한 규제 완화에 파리협정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파리협정은 지구의 평균 온도가 산업혁명 당시보다 1.5도 이상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각국이 자발적으로 감축 목표치를 정하고 이를 지키자고 약속하는 것으로, 2015년 12월 민주당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주도로 체결됐다.

그러나 트럼프는 1기 첫해였던 2017년 6월 “파리협정 때문에 미국인 일자리가 줄어들고 공장들이 문을 닫고 있다”며 전격 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다시 가입했지만, 트럼프 2기에서 또다시 탈퇴를 추진하는 것이다.

일각에선 트럼프 정부의 화석연료 산업 부흥 정책으로 국내 배터리 업계가 타격을 받게 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바이든 정부가 시행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미국에 50조원 이상을 투자해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대거 지어왔다. 이처럼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해왔으나 트럼프 정부가 산업 방향을 바꿈으로써 전기차 산업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커졌다는 것이다. 현재 계속되는 전기차·배터리 캐즘이 더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이 미국 LNG 수입 확대에 나설 가능성도 커졌다. 지난 8일(현지 시각)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여전히 러시아로부터 많은 LNG를 받고 있다. 에너지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미국산 LNG로 바꾸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미국산 LNG 수입 확대를 시사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러시아산 가스 파이프라인이 폐쇄되면서 LNG 수급에 어려움이 커지자, 미국의 손을 잡겠다고 한 것이다. 세계 최대 LNG 수입국인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조만간 미국과 수입 계약을 추가로 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국은 1990년대 말부터 해마다 카타르와 오만산 LNG 898만t을 수입하던 계약이 올해 연말쯤 종료되는데, 이 중 상당수를 미국산으로 대체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이를 통해 기존 10% 수준이던 미국산 비율이 15%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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