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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물집에 멈춘 도전… “정현 괜찮아, 너의 미래는 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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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오픈 테니스 4강전서 기권패 / 1세트 첫 두게임까지 팽팽한 싸움 / 0-1 상태서 2세트 못 마치고 포기 / 16강 경기까지 진통제 먹고 뛰어 / 페더러 “훌륭한 선수될 것” 위로 / ‘전설’과 겨루며 자신감 획득 결실 / 상금 7억 획득… 랭킹 30위내 들듯

2018년 첫 번째 테니스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 4강전이 열린 26일 멜버른 로드 레이버 아레나.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37·스위스·2위)와 나란히 코트에 들어서는 정현(22·삼성증권 후원·세계랭킹 58위)의 얼굴에서 다소 긴장감이 느껴졌다. 정현은 페더러와 처음 대결하지만 그와 이미 인연이 있었다. 2006년 서울에서 열린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32·스페인·1위)의 초청 경기에 정현이 볼을 나르는 ‘볼 키즈’(Ball Kids)로 참여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정현은 코트 바로 옆에서 경기를 지켜봤고 페더러에게 원포인트 클리닉을 받기도 했다. 이후 12년 만에 정현은 메이저대회 4강 진출자로 페더러 앞에 당당히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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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오른쪽)이 26일 멜버른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준결승전에서 기권한 뒤 로저 페더러의 격려를 받고 있다. 멜버른=AP연합뉴스


하지만 정현의 위대한 도전은 아쉬움을 남기고 마감됐다. 대회 내내 자신을 괴롭히던 발바닥 부상이 결정적 순간에 발목을 잡았고 세트스코어 0-1 상태에서 진행 중이던 2세트를 끝마치지 못한 채 기권했다. 첫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비록 1세트 첫 두 게임을 모두 내주면서 0-2로 출발했지만 두 게임을 모두 듀스까지 끌고 가며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페더러에게 보여줬다. 그러나 이후 눈에 띄게 발이 느려지며 플레이가 흐트러졌고 1-2 상황에서 연달아 4게임을 내주며 1세트를 내줬다.

갑작스런 난조를 보인 이유는 2세트 중반 밝혀졌다. 2세트가 4-1로 벌어진 상태에서 정현은 메디컬 타임아웃을 불렀다. 이 과정에서 물집으로 엉망이 된 발바닥이 방송 카메라를 통해 고스란히 잡혔다. 정현은 이 부상 때문에 노박 조코비치(31·세르비아·14위)와의 16강 경기 때 진통제를 먹고 뛰었고, 경기 후에도 피멍으로 제대로 연습을 소화하지 못했다. 결국 정현은 2세트 5-2에서 경기를 포기하고 코트를 떠났다.

페더러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첫 세트를 정현이 워낙 잘해 이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2세트 들어 움직임이 둔화됐다”면서 “나도 부상을 안고 뛰었을 때 얼마나 아픈지 안다. 멈춰야 하는 순간이 있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대회 기간 보여준 실력을 보면 충분히 톱10을 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춘 선수다. 훌륭한 선수가 될 것이다”고 정현의 미래에 축복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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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집이 생겨 응급치료를 받은 정현의 발. 멜버른=AP연합뉴스


관중도 코트를 떠나는 정현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정현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선수였기 때문이다. 3라운드에서 세계 4위 알렉산더 즈베레프(21·독일)를 풀세트 끝에 잡아냈고 16강전에서 조코비치마저 3-0으로 완파하며 ‘차세대 슈퍼스타’ 자리를 예약했다. 마침내 8강에서 테니스 샌드그랜(27·미국·97위)을 꺾으며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해 한국 테니스의 새 역사를 썼다.

정현의 미래는 매우 밝다. 테니스의 살아 있는 전설들과 샷을 겨루면서 실력이 눈에 띄게 성장했고 자신감이라는 큰 소득도 얻었다. 상위 랭커로 올라서기 위한 기반도 마련했다. 4강 상금으로 88만호주달러(7억5000만원)를 받게 된 정현은 대회 이후 랭킹이 30위 이내로 수직 상승할 정망이다. 덕분에 향후 마스터스대회와 ATP투어 대회에 출전권과 시드 등을 보장받게 되면서 좀 더 수월하게 랭킹 포인트를 쌓아나갈 수 있게 됐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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