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구의 사연이 드디어 밝혀졌다.
정현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삼성증권 시절 김일순 감독님과 약속했다. 팀이 해체되고 감독님 마음고생이 심하셔서 이렇게나마 위로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설명으로 뭔가 김일순 전 감독과 관련이 있구나 하는 정황은 드러났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김일순 전 감독 [사진제공=연합뉴스] 정현 [사진제공=연합뉴스] |
이와 관련해 김일순 감독이 3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숨은 사연을 공개했다.
김 감독은 “그게 사실 사연이 있다”며 “(삼성증권) 팀 해체 얘기가 나온 것이 정현이 고3때인 2014년이었다”며 “그때 현이에게 ‘우리가 잘하면 (팀이) 계속 갈 수 있다’고 얘기를 했는데 현이는 실제로 그걸 믿고 열심해 했다”고 말했다.
마침 그해 정현이 챌린저 대회에서 우승하며 노력이 성과로 드러났다.
정현은 그해 어느 때쯤인가 “이 정도 하면 되나요”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래서 김일순 전 감독은 “이걸로는 안돼. 적어도 그랜드슬램 8강은 가야지”라고 지나가는 말로 둘러댔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 테니스 역사상 그랜드슬램 8강에 진출한 사람은 없었다. 어린 정현에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과업을 던져준 셈이다. 팀이 해체되지 않으려면 이 정도의 불가능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사실상 ‘팀 해체를 피할 수 없다’는 의미의 완곡어법이었다.
김 전 감독은 “그 이후에는 정현도 팀 해체를 받아들이고 사실을 다 알았지만, 처음에는 좋은 성적을 내면 다시 모일 수 있다고 믿었다”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3년 후 정현은 그랜드슬램 8강 진출을 확정지은 뒤 TV 중계 카메라에 김일순 전 감독을 향해 보란 듯이 썼다. “캡틴, 보고 있나”라고.
3년이 지났지만, 캡틴이 말한 그랜드슬램 8강을 드디어 이뤘다는 의미다. 그만큼 팀을 지키고 싶었던 3년 전 순진한 소년의 마음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셈이다.
김일순 전 감독 역시 어쩌면 그때 그 이야기에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8강에 오른 정현이 카메라에 대고 자신에게 ‘보셨죠. 이제 진짜 8강에 갔어요’라고 말하듯 사인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감독은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여자테니스 간판스타로 활약했다.
주니어 세계 랭킹 3위까지 올랐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당시 세계 랭킹 6위 헬레나 수코바(체코)를 물리치고 16강까지 올랐다. 1986년과 1990년 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 5개를 땄다.
정현의 ‘보고 있나’ 사인에 인터뷰 요청이 줄을 이었지만 김 전 감독은 전화기를 꺼놨다.
그는 “대회 중에 제가 인터뷰를 하면 분명히 팀 해체 이야기를 물어오실 텐데 좋은 분위기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전 감독은 16강전에서 정현이 조코비치와 3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5-3을 만들며 환호할 때 감동이 밀려와서 울었다고 한다.
김일순 전 감독은 현재 경기도 시흥 Han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유소년 지도를 맡고 있다.
onlinenews@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