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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린드베리 반란, 마스터스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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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 귀족 대회” 비판 마스터스

톱50 출전 ‘엘리트 정책’으로 인기

‘여자 마스터스’ 되고픈 ANA대회

무명의 우승 드라마는 핵심 빗겨가

중앙일보

타이거 우즈(가운데)가 3일 열린 마스터스 연습라운드 2번 홀에서 칩샷으로 이글을 성공하자 갤러리들이 환호하고 있다. 평일이었지만 우즈를 보기 위해 구름 관중이 몰려들었다. [오거스타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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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는 아멘코너에 만발한 철쭉처럼, 분홍색 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도 골프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그런 오거스타에서도 박인비-제니퍼 송-페닐라 린드베리가 연장전을 벌인 LPGA 투어 ANA 인스퍼레이션이 화제가 됐다.

해가 지고 난 뒤의 어둠 속에서 불을 켜고 치른, 1박2일 8홀 연장전. 큰 대회에 유달리 강한 박인비를 무명 린드베리가 꺾은 점도 드라마틱했다. 박인비는 슬로플레이 논란이 있던 린드베리에 대해 “마지막 퍼트는 챔피언의 퍼트였다”며 위대한 패배자의 품위를 보여줬다.

마스터스와 ANA 인스퍼레이션은 공통점이 많다. 두 대회는 각각 남녀 골프의 시즌 첫 메이저 대회다. 예쁜 꽃이 피는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열려 축제의 느낌도 강하다.

마스터스는 4대 메이저 대회 중 유일하게 여러 골프장을 돌지 않고,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만 열린다. ANA 대회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에 있는 미션힐스 골프장의 다이나 쇼어 코스에서만 연다. 그래서 코스에는 역사가, 얘깃거리가, 권위가 쌓인다.

ANA 인스퍼레이션은 마스터스를 본떠 캐디에게 흰색 점프수트를 입힌다. 그린재킷을 입혀주는 마스터스 세리모니처럼, ANA는 포피의 호수에 뛰어드는 의식을 만들었다. 이 밖에도 ANA 인스퍼레이션이 마스터스를 벤치마킹한 사례는 많다.

그러나 ANA가 마스터스의 여성 버전이었다면, 린드베리가 박인비를 꺾고 우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골프장의 그린이 빠른데다 박인비가 퍼트를 잘하기 때문이라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마스터스라면 린드베리 같은 하위 랭커들은 아예 참가 자체가 불가능했다. 마스터스 출전 기준의 골격은 세계랭킹 50위 이내다. 그 기준을 적용하면 박인비와 연장전을 치른 린드베리(세계랭킹 95위)와 제니퍼 송(69위)은 참가 자격도 얻지 못했을 거다.

마스터스는 소수의 스타 선수들만 참가하는 대회다. 처음부터 소수 유명 선수가 출전하는 대회로 디자인됐다. 올해는 87명이 출전한다. 고령의 역대 우승자, 아마추어 등 참가에 의의를 둔 선수를 빼면 실질적인 우승 경쟁자는 60명 선이다. 반면 ANA 인스퍼레이션은 출전 선수가 110명을 넘는다. 대부분 우승 경쟁에 참여하는 선수다.

마스터스가 고집하는 소수 정예 출전 방식은 장단점이 있다. 스타 선수들이 대부분 우승하기에 흥행에 유리하다. 가장 나가기 어려운데, 선수들은 가장 좋아한다. 쉽게 얻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동경하는 값비싼 명품과 같은 이치다.

반면 가장 뛰어난 선수를 가리는 챔피언십의 이상에는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일부 스타들만 나가면 무명 선수들에겐 아예 기회조차 없다. 최대한 많은 선수를 참가시키는 디 오픈이나 US오픈보다 폐쇄적인 귀족 대회라는 비판도 받는다.

이에 대한 생각은 각자 다를 것이다. 그러나 좋든 싫든, 그 소수 엘리트 정책이 메이저 중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가진 마스터스를 만들었다.

한국 선수인 박인비가 우승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ANA의 정책이 잘못 됐다고 비판하려는 것도 아니다. ANA 인스퍼레이션이 닮고 싶어하는 마스터스는 그렇게 한다는 얘기다. ANA가 마스터스의 겉모습을 따라하면서 정작 핵심은 놓쳐 의아하다.

마스터스에서는 유난히 스타 선수가 많이 우승했다. 타이거 우즈(4회), 필 미켈슨(3회), 아널드 파머(4회), 잭 니클라우스(6회) 등이 많은 우승을 챙겼다. 파머는 메이저 대회 우승 중 57%, 미켈슨은 60%를 마스터스에서 기록했다. 린드베리처럼 이변을 일으킬 수도 있는 재야 무명 선수들을 원천봉쇄한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본다. 출전선수가 많았다면 역대 마스터스 우승자 명단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2018년 ANA 인스퍼레이션은 드라마틱한 대회였다. 미국 기자는 린드베리의 우승을 두고 “16번 시드가 1번 시드를 눌렀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마스터스는 16번 시드를 아예 만들지 않는다. 여자 마스터스였다면 박인비가 아리야 주타누간, 제시카 코다 등을 한 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을 것이다. 그 것이 사람들이 마스터스를 동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거스타에서>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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