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들어 국내에서 휴식을 취하며 힘을 비축한 '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22·한국체대·세계랭킹 19위)이 이제 흙 위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지난 16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미끄럼을 더 타겠다면서 클레이코트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 정현은 18일 스페인으로 출국해 남은 시즌을 이어간다.
정현은 우선 오는 23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ATP 투어 바르셀로나 오픈(총상금 251만900유로)에 출전할 예정이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8강까지 진출했던 정현은 어느새 세계랭킹 19위까지 올라선 실력을 바탕으로 그보다 더 높은 곳까지 노려볼 심산이다.
그 이후에도 클레이코트 경기가 쭉 이어진다. 이후 BMW 오픈, 마드리드 오픈, BNL 이탈리아 인터내셔널, 리옹 오픈 등 유럽 각지에서 흙먼지 날리도록 뛰고 나면 5월 27일에는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프랑스 오픈이 정현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 1월 시즌 첫 메이저대회 호주 오픈에서 4강 진출 신화를 써냈던 정현이 프랑스 오픈에서도 호성적을 낸다면 랭킹 상승은 당연한 일이고 테니스계에서 받는 대접도 달라질 전망이다. 이미 프랑스 오픈에서도 시드 배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정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이유는 우선 로저 페더러(2위·스위스),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6위·아르헨티나), 마린 칠리치(3위·크로아티아)에 이어 당당히 4위에 달하는 시즌 성적 때문이지만 정현이 유독 클레이코트에 잘 맞는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선수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다진 자갈과 석회암을 깔고 벽돌가루로 그 위를 덮어 만들어진 클레이코트는 하드코트나 잔디코트보다 바닥이 무르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바닥에 튕기는 공의 속도가 느려지기에 서브 에이스가 나올 확률이 20%가량 줄어든다. 그렇다 보니 클레이코트에서의 경기는 빠른 서브나 강력한 스매싱으로 빠르게 경기를 끝내는 선수보다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랠리를 이어가는 선수에게 유리해진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라파엘 나달(1위·스페인)이다.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자랑하는 나달은 메이저 16승 가운데 10승을 프랑스 오픈에서 거두며 국내 팬들에게 '흙달' '흙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다. 나달과 라이벌 관계인 페더러는 이와 반대로 메이저 20승 중 프랑스 오픈 우승은 단 1회에 그친다. 1981년생 노장이기도 한 페더러는 그래서 작년부터는 클레이코트 시즌을 건너 뛰고 하드코트와 잔디코트 경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아직 서브가 완성되지 않았지만 체력이 좋고, 그라운드 스트로크 대결에서 상대를 압도할 줄 아는 정현도 '차세대 흙신'으로 탄생할 가능성이 충분한 선수로 꼽힌다. 정현의 상승세도 바르셀로나 오픈 8강, BMW오픈 4강 등 지난해 클레이코트 시즌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1989년 프랑스 오픈에서 17세 나이로 깜짝 우승을 차지한 중국계 미국인 마이클 창(46)과 같은 대사건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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