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 여자오픈 골프 내일 개막
공동선두 두 사람 막판 운명 갈려
승부처 된 18번 홀 페어웨이 벙커
불운했던 2인자 박세리 연상시켜
박세리(왼쪽 사진)는 안니카 소렌스탐이 우승한 대회에서 가장 많은 6차례 2위를 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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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이 우승한 대회에서 2위를 가장 많이 한 선수는 누굴까. 박세리다. 소렌스탐의 72승 중 6번이다. 박지은과 카리 웹이 5번, 로라 데이비스 4번, 폴라 크리머 3번 순이다. 안시현도 미국에 진출하자마자 우승 기회를 맞았는데 소렌스탐 때문에 2차례 좌절했다.
센세이션을 일으킨 1998년 신인 때부터 박세리는 소렌스탐 때문에 손해를 봤다. 그 해 박세리는 미국 AP통신이 선정한 최고 여성 스포츠 스타로 뽑혔다. 모든 종목을 통틀어 최고의 여성 선수였다. 그러나 정작 LPGA 투어 최고 선수상은 받지 못했다.
전교 1등을 했는데 반에서는 1등을 하지 못한 격이다. 두 선수는 98년 똑같이 4승을 했으나 소렌스탐은 메이저 우승이 없었다. US오픈 등 메이저 2승을 한 박세리가 대회의 가치나 파급력 등이 훨씬 컸지만, 나머지 대회 성적까지 점수로 환산했을 때는 소렌스탐이 앞섰다.
2001년부터 두 선수는 본격적으로 맞대결했다. 3월 웰치스 챔피언십에서 소렌스탐은 2위 박세리에 6타 차로 우승했다. 그 다음 주 두 선수는 여자 골프에서 가장 빛나는 대결을 펼친다.
애리조나 주 피닉스 문밸리 골프장에서 열린 스탠다드 레지스터핑에서 박세리와 소렌스탐은 둘이 합쳐 52언더파를 기록했다. 나머지 선수들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최고의 퍼포먼스였다. 골프 여제와 야심찬 젊은 도전자 딱 둘 만의 명승부였다.
박세리는 무려 25언더파를 쳤다. 우승컵은 27언더파의 소렌스탐이 가져갔다. LPGA 투어에서 25언더파를 치고 우승하지 못한 선수는 박세리 뿐이다.
소렌스탐의 27언더파는 김세영이 올해 31언더파를 치기 전까지 LPGA 투어 최소타 기록이다. 소렌스탐은 2라운드에선 59타를 쳐, 박세리와 카리 웹이 가지고 있던 LPGA 투어 한 라운드 최저타(61타) 기록도 깼다. 소렌스탐은 아직도 여자골퍼 중 유일하게 60타를 깬 선수로 남아있다.
남자 골프에서 이런 명승부는 1977년 디 오픈에서 톰 왓슨과 잭 니클라우스가 벌인 백주의 결투(Duel in the Sun)를 꼽을 수 있다. 당시 준우승한 니클라우스와 3위의 타수 차는 9타였다. 레지스터핑에서 박세리와 3위는 12타 차가 났다.
소렌스탐은 그해 10월 시스코 월드매치플레이 챔피언십 결승에서 박세리를 만났다. 박세리는 6번 홀까지 4홀 차로 앞서 쉽게 이기나 했는데 결국 한 홀 차로 역전패했다. 박세리는 2002년 오피스디폿 대회에서 드디어 설욕했다. 소렌스탐을 1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그러나 이듬해 같은 대회에서 소렌스탐에 4타 차 2위로 밀렸다.
소렌스탐은 2003년 초 남자 대회에 출전했다. 왜 여자가 나오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남자 선수들이 많아 적대적인 상황에서 경기를 해야 했다. 소렌스탐은 컷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소득은 많았다. 남자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샷거리를 늘렸다. 소렌스탐은 “극단적인 스트레스 속에서 경기하는 법을 배웠다”고도 했다.
여제는 더 무서워졌다. 소렌스탐은 LPGA 챔피언십에서 연장 끝에 박지은을 제압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대회는 브리티시 여자오픈이었다. 소렌스탐은 메이저 중 브리티시 우승이 없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 못했다.
먼저 그랜드슬램 고지에 오른 경쟁자인 카리 웹을 따라 잡아야 했고 메이저대회에서 약하다는 징크스도 깨야했다. 소렌스탐의 72승 중 메이저 우승은 10번(14%)뿐이다. 19승 중 메이저 7승(37%)을 한 박인비와 비교가 된다.
소렌스탐은 꼭 우승해야 했다. 대회장인 로열 리덤 앤드 세인트 앤스 골프장은 남자 디 오픈 챔피언십을 11번 연 명문 코스다. 소렌스탐의 결의가 남달랐지만 가장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인 선수는 박세리였다.
벙커가 208개나 되는 로열 리덤에서 박세리는 3라운드 연속 69타를 쳤다. 최종일 한 타 앞선 채 소렌스탐과 함께 챔피언조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17번 홀까지 두 선수는 공동 선두였다. 17번홀 그린 주위 항아리벙커에서 파세이브에 성공했을 때 승부의 추는 박세리에게 쏠리는 듯도 했다.
로열 리덤 골프장 18번홀. 페어웨이 왼쪽 벙커들이 가장 무섭다. [로열 리덤 앤드 세인트앤스 골프장] |
2012년 아담 스콧 등 많은 선수들의 우승 꿈을 앗아간 벙커다. 박세리의 공은 바로 그 벙커로 들어갔다. 소렌스탐은 벙커들을 넘겨버렸고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수많은 펀치를 맞으면서도 끝없이 돌아와 골프여제에게 도전하던 박세리는 로열 리덤에서 길을 잃은 듯하다. 98년 US오픈을 통해 박세리가 도약했다면 2003년 브리티시 오픈을 계기로 박세리는 내리막 길을 걸었다.
박세리는 연말 미즈노 오픈에서 소렌스탐에 9타 뒤진 준우승에 그쳤고, 이듬해 긴 슬럼프에 빠졌다. 반면 골프여제는 2004년과 2005년 18승을 기록했다.
2003년 브리티시 여자 오픈 순위는 소렌스탐-박세리-박지은-웹 순이었다. 당시 LPGA 투어의 빅4를 정확히 골라낸 위대한 코스다.
올해 브리티시 여자 오픈이 2일 로열 리덤에서 열린다. 올해 18번 홀 페어웨이 왼쪽 벙커에 빠진 공을 본다면 소렌스탐 시대에 가장 불운했던 박세리를 떠올려 봐도 좋을 듯하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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