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은 그저 전망일 뿐이라곤 하지만, 이른바 전문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각 방송사 야구 해설위원들의 해마다 시즌 전망과 관측이 들어맞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어긋나기 마련이다. 상수(常數)보다 변수(變數)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두산 베어스의 2018년 KBO 정규리그 우승도 그렇다.
올 시즌을 앞두고 3월 24일치 한국일보에 실린 ‘2018 프로야구 전문가 5인 전망’ 기사를 보자.
이종렬(SBS스포츠), 김경기(SPOTV), 안치용(KBSN), 안경현(SBS스포츠), 이용철(KBS) 등 해설위원들은 하나같이 KIA를 최강팀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 이종렬, 김경기, 안치용 해설위원은 두산을 KIA와 더불어 2강, 또는 3강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안경현, 이용철 해설위원은 KIA와 SK를 2강으로 관측하면서 두산을 선두권을 위협하는 정도(안경현)로 봤거나 외국인투수의 활약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이용철)으로 전망했다.
구태여 이 사례를 든 것은 전망이나 예측의 허술함, 승부세계의 변화무쌍함을 얘기하기 위함이다. ‘변화’ 또는 ‘변신’은 쉽사리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 세상살이의 이치다. 하물며 승부세계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두산은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공적인 변화를 이루었다.
김태형 두산 감독조차도 속마음은 몰라도 겉으로는 2019시즌을 정상 재탈환의 적기로 여겼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비교적 여유 있게 12경기를 남겨놓은 시점(9월 25일)에서 정규리그 1위를 확정했다.
전문가들이 예상치 못한 두산의 정규리그 1위는 숱한 악재를 딛고 일궈낸 성취여서 더욱 뜻깊다. 그 과정에서 김태형 감독의 선수단 운용과 용병술도 돋보인다.
호재보다는 악재가 많았던 두산이었다. 선발투수진의 주축을 이루었던 장원준과 유희관 두 토종투수의 부조, 외국인 타자의 부재가 두산을 괴롭혔고, 외부 FA 선수 보강은커녕 ‘유출’만 있었다.(민병헌의 롯데행) 혹시나 했던 ‘돌아온 김현수’는 옆집 LG로 말을 갈아탔다. ‘과연 이런 전력으로 버텨나갈 수 있을까’하는 우려가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이런 악재를 상쇄시킬만한 호재도 없지 않았다. 조쉬 린드블럼과 세스 후랭코프 두 외국인 쌍두마차가 마운드를 이끌었고 FA를 앞두고 ‘미친 존재감’을 유감없이 과시한 포수 양의지와 3년 연속 30홈런, 100타점 100득점을 기록하며 KBO 리그 최고의 타자로 흉을 잡을 수 없는 김재환, 그리고 최주환과 더불어 시즌 초반 부진을 털고 중, 후반에 맹위를 떨친 오재일 등 타자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무엇보다 김재호, 오재원, 오재일 등 주전들이 부상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마다 빈자리를 훌륭하게 메워준 류지혁, 조수행 등 이른바 ‘대체요원’의 세력화가 두산의 뒷심의 원동력이라고 하겠다. 군 복무를 마치고 막판에 합류한 정수빈의 가세는 ‘닫는 말에 채질하는 격’이었다.
마운드에서도 토종 선발진의 공백을 이영하가 잘 메워줬고, 함덕주를 뒷문지기로 전환시킨 데 이어 신예 박치국, 곽빈과 함께 노장 김승회가 불펜의 버팀목 노릇을 해준 게 좀체 무너지지 않았던 두산의 강점이 됐다. 김태형 감독의 ‘안목(眼目)’을 높이 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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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들의 배후에 버티고 있던 대체요원들이 어느새 위협세력으로 성장한 것과 관련, 흔히 두산 야구를 ‘화수분’이라고 칭송하는데, 사실 그 대목은 상투적이지만, 가장 눈여겨봐야할 두산의 힘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물에도 그치지 않듯’이 두산이 ‘뿌리 깊은 나무’가 된 것은 인재의 ‘식목(植木)’이 국내 프로야구단 가운데 가장 먼저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두산은 2군 육성 시스템을 선구적으로 개척한 구단이다. 대전을 연고로 출발했던 두산은 일찌감치 장기적인 안목에서 2군 정착화에 힘을 기울였다. OB(두산 전신)는 6개 구단(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 당시) 가운데 가장 먼저 1983년 1월26일에 경기도 이천에 전용 연습구장을 마련했다. 1983년 3월24일에 주식회사 OB 베어스로 독립, 독자 생존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1983년 7월2일에 2군을 창설했다.
이듬해인 1984년 1월15일에는 창원에 전용 연습구장을 개장해 선수들의 전지훈련 장소로 활용했다. 1985년 3월 30일 연고지를 대전에서 서울로 옮긴 두산은 성장 터전을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다져놓았던 것이다.
두산의 ‘화수분’ 야구는 그런 똑똑한 인재 발굴, 육성의 토대 위에서 준비됐고, 만들어졌다고 봐야겠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서 미래를 내다본 두산의 ‘육성 시스템’ 투자가 오늘날의 결실을 가져왔다고 해도 그리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2년 연속(2015, 2016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3년 연속(2015~2017년) 진출 경험이 낳은 여유는 두산 선수단에 안겨준 덤이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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