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란 생각이 들었어요."
최나연(31)에게 25일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에서 11개월 만의 복귀전을 치른 소감을 묻자 단숨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다음 대회를 위해 밤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 늦은 시간인데도 전화 목소리가 맑았다. 최나연은 이번 대회에서 12언더파 276타(65-71-69-71)로 공동 27위를 했다. 마지막 라운드 15번 홀(파5)에선 이글까지 잡았다. 그는 "원래 맡기로 했던 캐디가 나타나지 않아 급하게 현지에서 구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예상 넘는 성적이 나왔다"며 "직접 거리를 계산하고 퍼팅 라인을 읽다 보니 2~3개 대회를 뛴 것처럼 피곤하다"고 했다.
미 LPGA투어 9승, 통산 상금 1000만달러(1074만달러)를 넘은 최나연은 지난 4년 허리 부상과 드라이버 입스(yips·샷 불안 증세)로 바닥까지 떨어졌다. 전매특허 같던 컴퓨터 스윙은 사라지고, OB(아웃오브바운즈)가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지 않고 났다. 한때 2위였던 세계 랭킹이 486위까지 떨어졌다. 그가 지난해 메디컬 익스텐션(병가)을 내고 투어를 떠날 때 사실상 은퇴하는 거 아닌가 하는 추측이 많았다.
11개월 만의 미 LPGA투어 복귀전인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에서 드라이버 샷을 날리는 최나연의 모습. /LPGA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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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말처럼 "그동안 성적에 매여 골프 로봇처럼 살아 왔던" 최나연은 지난해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크로아티아로 유럽 배낭여행을 다녔다. 골프도 친구들과 저녁 내기 라운드를 하며 편하게 쳤다. 최나연은 "하고 싶었던 걸 하면서 놀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자꾸 골프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올해 친구인 박인비와 라스베이거스에서 두 달간 훈련했고, 복귀 무대인 이번 대회 1라운드에서 7언더파로 공동 2위에 올랐다.
"나도 깜짝 놀랐어요. 미국 핸드폰 번호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축하 메시지가 60통 넘게 왔어요."
그는 '오버'하지 말고, 좀 안 맞더라도 화내지 말자고 마음을 다지면서 매 라운드 언더파를 쳤다. 4라운드 전반 9홀에서 보기를 3개나 범하자 '또다시 (입스가) 시작되나' 하고 가슴이 철렁했지만 스스로를 다독였다고 한다.
최나연은 "모처럼 4라운드를 다 걸어서 경기했더니 피곤하기는 한데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최나연이 10, 20대 때보다 더 멋진 30대 골퍼로 롱런하기를 응원한다.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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