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날 새겠다"는 소리까지 나왔었다. 한 조가 경기를 끝내는 데 무려 7시간 20분이나 걸리는 경기를 지켜보다 팬들이 역정을 내는 상황이 벌어졌다. 6년 전만 해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는 마지막 조 평균 경기 시간이 6시간 넘게 걸리는 최악의 '슬로 플레이' 현장이었다. 그래서 일본이나 미국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이 초창기엔 '거북이 골퍼'로 손가락질을 받곤 했다. 한국의 슬로 플레이는 고질병 같았다.
그런데 슬로 플레이 배격 정책을 펴자 선수들이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티타임 1·2부제를 운영하면서 진행 속도도 빨라졌다. 요즘 KLPGA 투어 대회 마지막 조는 3인 1조 기준으로 4시간 30분~5시간 정도 걸린다.
28일 이탈리아 골퍼 에도아르도 몰리나리가 슬로 플레이를 펼치는 '거북이 골퍼'의 명단을 자신의 트위터에 공개해 미국과 유럽 골프계가 발칵 뒤집혔다. 몰리나리가 공개한 자료에는 이번 시즌 유럽 투어와 월드골프챔피언십 출전 선수 중 계시 대상이 된 선수와 40초 스트로크 속도 규정을 위반한 선수들 이름이 담겨 있다.
타이거 우즈와 패트릭 리드, 브라이슨 디섐보(이상 미국), 헨리크 스텐손(스웨덴), 마쓰야마 히데키(일본), 존 람(스페인), 프란체스코 몰리나리(이탈리아) 등 세계적 스타들이 '거북이 골퍼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여기엔 자신의 친동생 프란체스코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6월에 추가 자료를 공개하기로 한 몰리나리는 앞서 유럽 투어 대회 도중 "러프에 빠지지도 않고 18홀을 도는 데도 5시간 30분이나 걸린다. 슬로 플레이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선수들이 슬로 플레이로 벌타를 받을 것 같으면 지능적으로 그 상황만 모면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몰리나리가 거북이 골퍼 명단을 공개한 뒤 그레임 맥다월(북아일랜드)이 29일 골프채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에도아르도는 좋은 친구이고 그의 뜻을 잘 이해한다. 경기 시간을 단축해 더 많은 갤러리가 오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목표다." 맥다월은 "코스는 점점 길어지고 핀은 어려운 곳에 꽂힌다. 한 타 한 타에 너무 많은 돈이 걸려 있다. 7600야드에서 3명이 함께 경기하며 4시간 45분 만에 18홀을 끝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하지만 의지의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애덤 스콧(호주)은 자신의 슬로 플레이를 처벌해달라고 자청한 적도 있다. 자신을 희생해 다른 골퍼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뜻이었다.
올해 대대적으로 바뀐 골프 룰은 분실구를 찾는 시간을 5분에서 3분으로 단축하고 한 타에 걸리는 시간도 45초에서 40초로 줄였다. 하지만 우즈와 디섐보 같은 스타들까지 티샷을 마치고 쏜살같이 다음 샷을 위해 달려갈 정도가 되기 전에는 골프의 최대 적 중 하나인 '슬로 플레이'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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