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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연재] 중앙일보 '김식의 야구노트'

[김식의 야구노트] 교실 유리창 깨던 소년, 200홈런 고지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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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 MLB 15년 만에 대기록

37세에도 ‘강한 타구’ 부문 2위

타율 3할, 홈런 11개 기록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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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구단이 추신수의 200홈런을 축하하기 위해 올린 글. [사진 텍사스 레인저스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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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37·텍사스 레인저스)는 올해로 메이저리그 15년째를 맞는 베테랑이다. 그는 빅리그에서 갖가지 기록을 깨기 전에 학교 유리창을 더 많이 깼다.

1990년대 초반 추신수가 다녔던 부산 수영초등학교 교실 유리창은 수없이 박살 났다. 단단한 체격의 꼬마 추신수가 날린 홈런 타구가 교실까지 날아든 것이다. 창을 새로 갈아 끼우면 얼마 가지 못해 또 깨졌다.

추신수는 운동장이 훨씬 넓은 부산고에 입학해서도 유리창을 박살 냈다. 힘껏 당겨친 것도 아니고, 툭 밀어서 넘긴 타구였다. 부산고 야구부 역사상 그곳까지 타구를 날린 선수는 없었다고 한다. 이후 부산고 운동장과 교실 사이에 그물망이 생겼다.

추신수의 키는 1m80㎝다. 한국 선수들과 비교해도 그리 큰 편은 아니다. 그런데도 아시아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200홈런 기록을 달성했다. 그의 파워는 초(超) 아시아인 수준이다. 이순철 전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는 “대표팀에서 추신수의 타격을 유심히 지켜봤다. 방망이로 공을 때리는 소리부터 다르더라”고 말했다.

추신수는 아버지 추소민씨로부터 탱크같이 단단하고 두꺼운 상체를 물려받았다. 힘과 근성을 타고난 추신수를 추씨는 복서로 키울 생각이었다. 추씨는 마당에 철봉을 설치해 추신수에게 팔 운동을 시켰다. 매일 철봉에 매달리는 시간을 늘려가며 파워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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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 아시아 선수 첫 통산 200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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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추신수는 복싱이 아닌 야구를 선택했다. 어려서부터 해온 체력훈련은 그의 홈런 스윙에 큰 도움이 됐다. 부산고 진학 후에는 고(故) 조성옥 감독이 아버지 추씨의 역할을 대신했다. 하루 6시간 동안 러닝을 할 만큼 지독한 훈련이 이어졌다. 추신수는 “뛰다가 힘들어서 토한 적도 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뛰었다. 미국 선수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그렇게 고생하면서까지) 왜 야구를 하느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추신수는 평소에도 팔·다리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녔다. 몸무게를 늘려 운동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다 몸수색을 받은 경험도 있다.

2001년 부산고를 졸업한 추신수는 미국 시애틀 매리너스에 투수로 입단(계약금 137만 달러·16억원)했다. 고교 시절 최고 시속 150㎞가 넘는 강속구를 던졌다. 그러나 시애틀 구단은 추신수를 타자로 키웠다. 그의 주력과 수비력, 배팅 파워가 메이저리그의 거인 선수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판단했다. 투수에 대한 미련이 남았지만, 추신수는 구단의 뜻을 따랐다. 덕분에 지금까지 롱런하며 7년(2014~2020년) 동안 총액 1억3000만 달러(약 1534억원)를 받는 계약을 따냈다.

마이너리그 4년 동안 추신수는 눈물 젖은 빵을 씹었다. 아내 하원미씨와 원룸에서 살았다. 추신수 부부가 방 하나를 쓰고, 부엌과 화장실을 다른 부부와 공유하는 월세 700달러(82만원) 짜리 집이었다. 매일같이 햄버거를 먹던 추신수는 “굶어 죽기 전에는 절대 햄버거를 먹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선수의 위상이 높지 않았던 시절, 어떤 이는 추신수를 대놓고 괴롭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찬물을 뿌리는 선수도 있었다. 이럴 때마다 추신수는 큰 싸움을 벌이지 않고 악수를 청했다. 멋모르고 추신수 손을 잡았다가 무시무시한 악력(握力)을 맛보고 비명을 지르기 일쑤였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 정도 큰 선수들을 추신수는 쉽게 힘으로 제압했다.

1982년생 추신수는 한국식 ‘지옥 훈련’을 이겨낸 마지막 세대다. 메이저리그에서 30대 선수들의 대부분 사라진 요즘, 추신수는 하드 히트(시속 153㎞ 이상의 강한 타구) 비율에서 전체 2위(55.1%)에 올라 있다. 그의 나이와 체격 등을 고려하면 올 시즌 타율 0.302(아메리칸리그 13위), 출루율 0.386(리그 12위), 홈런 11개(리그 28위) 등의 기록은 놀랍기만 하다.

야구를 처음 시작한 뒤 30년 가까이 추신수는 타고난 재능에 지독한 노력을 더해왔다. 클럽하우스의 리더가 된 지금도 추신수는 가장 먼저 야구장으로 출근한다. 오전 훈련을 하는 스프링캠프 때는 새벽 5시에 라커룸 문을 연다. 추신수는 “이러지 않으면 내가 불안해서 견디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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