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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스포츠 타타라타] 2020 도쿄올림픽 ‘사라진 오모테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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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레니 리펜슈탈의 '민족의 대전'이 한국에서 개봉할 때 만들어진 포스터.


# 예술(혹은 스포츠)과 정치(혹은 경제). 참 어렵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세계 다큐멘터리 영화의 거장으로 평가 받는 레니 리펜슈탈(1902~2003, 독일)의 삶에 녹아 있다. 그의 삶은 마치 개인적 욕망을 위해 악마와 거래한 파우스트의 이야기와 닮았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을 위해 일했고(히틀러와의 염문설도 있다), 그 과정에서 불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그 유명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기록영화인 '올림피아'(1부 민족의 제전, 2부 미의 제전)다. 우리에게는 리펜슈탈이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한 고 손기정의 역주 장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후 올림픽마다 기록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공식기록영화는 남북관계를 상징하듯 ‘경계를 넘어’라는 뜻의 '크로싱 비욘드'(Crossing Beyond)‘이었다.

# 장면 하나. 지난 7일 자민당의 고이즈미 신지로(38) 중의원이 탤런트 겸 아나운서인 타키가와 크리스텔(41)과 결혼을 발표했다. 워낙 중요한 인물들이어서 그런지, 그냥 발표를 한 것이 아니라 이날 관저로 아베 총리를 방문해 결혼소식을 보고했고, 이후 언론에 알리는 방식이었다. 고이즈미 의원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총리의 아들로, 젊은 나이에 이미 4선이고 미래의 일본총리로 꼽힌다. 미모의 타키가와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한때 배우 오자와 유키요시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었으나 헤어졌다. 2013년 백인남성과의 섹스동영상이 유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타키가와가 이미 임신을 한 상태로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내년에 출산한다고 한다. 유명 정치인과 아나운서의 결혼이니, 이것도 정치와 예술의 만남일까?

# 장면 둘. 2013년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그해 일본의 최대 유행어가 탄생했다. 2020 도쿄 올림픽 유치를 위한 최종 프리젠테이션에서 유치위원인 타키가와가 일본어로 ‘환대’를 뜻하는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를 손동작을 써가며 한음 한음 끊어서 말한 것이 화제가 됐다. 일본의 두 번째 하계올림픽 유치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다. 오모테나시는 접대를 의미하는 ‘모테나시(もてなし)’에 정중한 표현 ‘오(お)’를 붙여 최고의 환대를 의미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손님을 정성으로 대접하는 마음가짐’으로 일본 전통의 문화코드이기도 하다. 자동차 등 제조강국 일본의 제품에 이 정신을 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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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결혼 발표를 하는 고이즈미 중의원(왼쪽)과 타키가와 아나운서.


# 일본이 오모테나시의 자세로 전 세계 손님을 환대하겠다며 올림픽 개최권을 가져간 후 6년이 지났다. 그런데 오모테나시는 요즘 잘 들리지 않는다. 올림픽을 계기로 경제침체기에서 탈출하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상처를 말끔히 씻어내겠다는 ‘부흥’이 일본 정부가 내건 키워드다. 평화, 화합, 인류애, 도전, 감동 등의 보편타당한 메시지 대신 쇼비니즘에 가까운, 비스포츠적 이념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원전 사고가 터진 후쿠시마에서 야구와 소프트볼 경기를 하고, 성화봉송을 시작했다. 심지어 선수촌 식당에 후쿠시마산 식재료로 공급하겠다고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안전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지역에서 경기를 치르고, 손님에게 그 지역 농산물을 먹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환대와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 자원봉사들에게는 교통비는 물론 숙박비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외국인 자원봉사자의 경우, 580만 원에 달하는 숙박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평창 동계올림픽은 숙식을 제공했다).

# ‘사라진 오모테나시’는 가장 가까운 나라 한국에게는 아예 적대감으로 표출되고 있다.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빌미로 삼아 경제분쟁을 일으켰다. 우리네가 평창 동계 올림픽 때 공식지도에 독도를 표기하지 않았는데도, 도쿄 올림픽조직위원회는 독도를 버젓이 자국영토에 넣어놨다. 이에 한국에서는 전 국민적인 ‘노노재팬’ 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올림픽 보이콧(혹은 불참)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정치경제적 이유로 한국이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무리 일본이 먼저라고 해도, 스포츠에 정치나 경제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또 방사능 공포로 인한 불참도 다른 나라와의 공조가 필요하고, 그동안 수많은 한국인이 일본관광을 다녀올 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점에서 쉽지 않다. 무엇보다 4년 간 올림픽을 위해 땀을 흘려온 선수들의 권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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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공식 사이트에 성화 봉송 루트를 알리는 지도에 버젓이 한국 영토인 독도(붉은 원내)를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 [사진=도쿄 올림픽조직위 홈페이지]


# 과거 군국주의 일본은 1940년 하계 올림픽을 유치해놓고,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개최권을 빼앗긴 바 있다(이 대회는 핀란드 헬싱키로 개최지가 변경됐다가 2차 세계대전으로 취소. 이후 1964년 도쿄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개최). 만일 1940 도쿄 올림픽이 열렸다면 히틀러의 베를린 올림픽을 능가하는, 역대급 정치쇼가 됐을 터이다. 이런 과거가 있기에 교묘하게 스포츠를 국가 이데올로기에 활용하는 일본의 못된 버릇에는 따끔하게 일침을 놓을 필요가 있다. 정치적으로 일본 지배층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것과 함께, 스포츠 영역인 올림픽에서는 ‘일본이 말한 오모테나시는 어디에 있는지’, ‘그 오모테나시는 일본이 잘 보이고 싶어하는 서구 강대국에만 해당되는 것인지’ 지켜보고 따져야 한다. 당당하게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말이다.

# 2020 도쿄 올림픽의 공식기록영화 감독은 일본의 대표 여성감독인 가와세 나오미다. 일본 사소설(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조류)의 전통을 영화로 옮겨놓은 듯한 그의 작품은 ‘사적 영화’로 불릴 정도로 비정치적이다. 그래서 기대가 되지만, 레펜슈탈의 사례가 있기에 걱정도 된다. 일본부흥이 아니라 세계평화, ‘방사능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방사능에 대한 경각심 고취’가 담겼으면 한다. 그게 진짜 환대다. 어떤 도쿄 올림픽이 될까, 어떤 기록영화가 나올까? 가까이에 사는 우리네는 눈을 부릅뜨고, 일본의 올림픽을 제대로 지켜보고,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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