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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이슈 '한국 축구' 파울루 벤투와 대표팀

[송지훈의 축구.공.감] 목적 불분명한 벤투호 실험, ‘사람’만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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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와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 직후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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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 벤투(포르투갈) 축구대표팀 감독은 6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끝난 조지아와 A매치 평가전(2-2무) 직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볼 소유도 안정적이지 못했고, 패스 실수가 이어져 실점했다”면서 “전반전만 떼어놓고 보면 지금까지 치른 17경기 중에서 가장 좋지 않은 45분이었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의 언급처럼 전반은 엉망이었다. 여기저기서 실수와 오류가 터져나와 뒤범벅이 됐다. 윙백으로 나선 황희찬(잘츠부르크)은 공격 가담 후 번번이 수비 지역 복귀가 늦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백승호(다름슈타트)는 1차 저지선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연신 공간과 사람을 놓쳤다. 공격형 미드필더 권창훈(프라이부르크)은 우리 지역에서 볼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역습과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지만,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37위(한국)와 94위(조지아)의 대결이 이처럼 치열하고 박진감 넘칠 줄은 미처 몰랐다. 후반 들어 흐름이 나아지긴 했어도 끝내 우리가 상대를 압도하는 장면은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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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전에서 드리블 돌파하는 이강인. 성공적으로 A매치에 데뷔했다는 평가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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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위기감을 불러일으킨 조지아전의 부진이 과연 선수만들의 잘못일까. 고개를 끄덕이고 넘기기엔 감독이 꺼내든 전술이 너무 낯설었다. A매치 평가전에서 변화를 주고 실험을 진행하는 건 나무랄 수 없지만, 무엇을 위한 실험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벤투 감독은 조지아전에서 ‘비대칭 3-5-2’라는 낯선 전형을 활용했다. 왼쪽 윙백으로 공격 가담이 좋은 수비수 김진수(전북)를 기용한 건 무난했다. 반대편에 황희찬(잘츠부르크)을 세운 게 파격이었다. 황희찬은 그간 벤투 감독이 스트라이커와 윙포워드로 활용하던 선수다. 수비에 가담할 순 있지만, 안정적인 방어를 기대하긴 어려운 카드다.

공격 본능이 뛰어난 황희찬의 강점을 살리려면 뒷 공간을 커버하기 위한 대비책 마련이 필수적이다. 1차 저지선 역할을 맡은 백승호가 적극적으로 수비 부담을 덜어주거나, 또는 스리백이 적절히 빈 공간을 나눠 맡는 등의 ‘약속된 움직임’이 필요했다.

전반 내내 벤투호가 조지아의 압박과 역습에 휘둘린 건 ‘공간 커버링’에 대한 사전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선발 라인업과 포메이션이 공개됐을 때 우리 축구팬들의 눈에 들어온 또렷한 약점은 상대의 눈에도 훤히 보였다. 조지아는 황희찬의 뒷공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여러 차례 찬스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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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수준 높은 돌파와 슈팅으로 클래스를 입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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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 감독이 어떤 목적으로 독특한 형태의 포메이션을 꺼내들었는지는 명확치 않다. 경기 후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벤투 감독은 전술적인 약점이 드러난 이후에도 적극적인 변화를 선택하지 않았다. 후반에도 엇비슷한 전형을 유지하면서 각 포지션별 선수 교체만 진행했다. 어떤 상황을 가정해 실험한 포메이션인지, 그 상황이 월드컵 예선 직전 마지막 A매치 평가전을 통째로 투자할 만큼 중요한 건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조지아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새 얼굴들이 각자의 경쟁력을 보여준 건 희망적이다. 이강인(발렌시아)은 수비 가담이 거의 없었지만, 공격 지원에서만큼은 18살 어린 나이를 의심케하는 노련한 운영 능력을 선보였다. 이동경(울산) 또한 한국의 두 번째 골에 관여하는 등 신인답지 않은 과감한 플레이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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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 구성윤은 조지아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세 명의 선수 중 한 명이다. 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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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3 수문장’ 구성윤(콘사도레 삿포로)의 경쟁력을 확인한 것또한 소득이다. 2실점했지만, 엄밀히 말해 책임 소재는 수비라인에 있다. 일각에서 롱킥 대신 짧은 패스로 일관한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데, 이는 벤투 감독이 강조하는 ‘후방 빌드업(build-up)’을 완성하기 위한 첫 단추다. 조지아전 수준의 압박에 눌려 롱킥으로 전환한다면 향후 월드컵 예선 기간 중 정상적인 후방 빌드업을 기대하기 어렵다. 벤투호 골키퍼 중 (출전 기회가 없어) 사전 검증을 받지 못한 선수가 구성윤 뿐이라는 점 또한 감안해야한다.

냉정히 말해 벤투호가 조지아전의 전술과 선수 구성을 다시 활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보인다. 오는 10일 열리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첫 경기에는 포백 기반의 안정적인 포메이션을 꺼내 들 것으로 전망된다. ‘선수 발굴’ 이외에 조지아전이 벤투 감독에게 남긴 유산은 무엇일까. 우리가 보지 못한 무언가가 확실히 존재하길 기대할 뿐이다.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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