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 양산 막으려 공 반발력 낮춰
변화에 따른 정교한 준비 부족
변동성 크면 팬도 팀도 힘들어져
불과 1㎜ 커지고, 1g 무거워진 공이 불과 1년 만에 야구를 너무 많이 바꿨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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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공을 치는 것 같다.”
지난 6월 롯데에 입단한 외국인 타자 제이콥 윌슨(29)의 소감이다. 잘 맞은 타구가 생각만큼 뻗지 않는다는 뜻이다. 심재학 해설위원은 “미국에서 온 타자 대부분이 이런 말을 한다”고 전했다. 내부를 공기로 채운 테니스공은 아무리 힘껏 때려도 홈런을 치기 어렵다. 몇몇 선수는 “외야에서 공이 수직 낙하하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놀라운 반전이다. 2014년 시작된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은 홈런 1756개(경기당 2.44개)가 터진 2018년 절정에 달했다. 툭 치면 넘어가는 공을, 팬들은 ‘탱탱볼(잘 튀는 고무공)’로 불렀다.
올 시즌 직전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공의 반발력을 0.4134~0.4374에서 0.4034~0.4234로 낮췄다. 전문가들은 홈런성 타구의 비거리가 2~3m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스프링 캠프 당시엔 바뀐 공을 사용한 선수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정규시즌 일정의 99.4%(716경기)를 소화한 지난달 29일 기준으로 총 홈런은 1012개(경기당 1.41개)다. 1년 새 크게 줄었다. 올 시즌 홈런 20개 이상 때린 타자는 11명, 30개 이상은 박병호(키움·33개)뿐이다. 지난해에는 35명이 20홈런 이상 쳤고, 그중 11명이 30홈런, 5명이 40홈런을 넘겼다.
1년 만에 투고타저(投高打低) 리그가 된 이유는 단 하나, 공인구 교체다. 반발력을 낮춘 공인구 둘레는 234㎜, 무게는 147g이다. 지난해보다 1㎜, 1g씩 늘었다. 이 작은 변화가 ‘탱탱볼’을 물렁물렁한 ‘퉁퉁볼’로 바꿔놨다.
심재학 해설위원은 “현장에서는 공인구 교체로 홈런과 장타가 15% 정도 감소할 거라 생각했다. 예상보다 훨씬 더 타구가 안 나갔다”고 분석했다. 이종열 해설위원은 “박병호처럼 오랫동안 홈런을 많이 친 타자는 바뀐 공 영향을 덜 받았다. 그러나 경험이 적은 타자는 장타가 확 줄었다”며 “홈런으로 생각한 타구가 잡히면 다음 타석에서 더 힘을 준다. 그러면 타격폼이 무너지고 홈런을 더 못 친다”고 설명했다.
홈런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다 디플레이션을 불렀다. 여기에서 ‘방향’과 ‘속도’의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먼저 홈런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정책은 KBO리그 성장과 흥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홈런은 야구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다. 특히 열정적 응원을 즐기는 한국에서 홈런 감소는 치명적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비공식적으로 공인구 반발력을 높여 팬들 관심을 유도한다.
투고타저가 된 프로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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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난해 타고투저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공인구 교체와 함께 다른 수단(스트라이크존 엄격 적용 등)을 병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KBO의 대처는 정교하지 못했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공인구를 급작스럽게 바꿨다는 지적은 인정한다. 퓨처스(2군) 리그에서 효과를 검증하는 등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며 “그렇다고 1년 만에 반발력을 다시 높일 순 없다. 내년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공인구 교체로 KBO리그는 변동성이 매우 커졌다. 홈런 1개라도 지난해와 올해 가치는 크게 달라졌다. 이에 따른 팀들 손익도 엇갈린다. 이렇다 보니 내년을 전망하기도 쉽지 않다. 시행착오를 겪은 팀들이 ‘작전 야구’와 ‘수비 야구’를 강조하며 팀 구성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과도기가 지나면 홈런이 다시 늘어날 거란 전망도 있다.
분명한 건 1㎜의 변화가 불러올 결과에 KBO리그 구성원 모두 무심했다는 사실이다. 어제의 야구와 오늘의 야구가 너무나 달라, 내일의 야구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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