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야구 실패에도 로버츠는 승승장구
프리드먼 사장 지시 따르는 로봇 역할
수익 늘리고 비용 줄이는 데에는 성공
WS우승 바라는 다저스 팬들만 아쉬워
디비전시리즈 5차전에서 대역전패를 허용한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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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 팬들은 로버츠 감독의 해고를 요구하는 의미로 각자의 소셜미디어(SNS)에 #firedaveroberts를 달았다. 로버츠 감독 해임을 요구하는 SNS 계정도 생겼다. 한국의 다저스 팬들 마음도 다르지 않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MLB) 평균자책점 1위(2.32)에 오른 류현진(32)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에 그랬다.
다저스는 수년 전부터 MLB 최고의 전력을 갖췄다. 올해는 정규시즌 팀 최다승(106승) 기록도 세웠다. 그러나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주저앉았다. 지난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으나 2017년 휴스턴에, 2018년 보스턴에 패했다. 한국 팬들은 그의 머리가 나쁜 탓이라며 로버츠 감독을 '돌버츠'라고 부른다.
올해 포스트시즌에서도 로버츠 감독의 오판은 명확했다. 가장 큰 실수는 커쇼의 활용이었다. 커쇼의 등판 순서와 교체 타이밍 모두 완벽하게 실패했다.
5차전에서 결정적인 홈런 두 방을 허용한 뒤 괴로워하는 클레이턴 커쇼.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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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과 미디어가 결과만 놓고 로버츠 감독을 비판하는 것일까. 로버츠 감독의 오판은 다저스 지휘봉을 잡은 지난 4년 동안 수없이 반복됐다. 결정적인 판단 착오로 승리를 놓친 뒤 그의 해명이야 말로 결과론이다.
"선수가 잘해줄 거라 믿었다. 모든 건 감독의 책임이다."
선수를 감싸고 책임은 자신에게 물으라는 말. 그의 레토릭은 한결같다. 그러나 실제로 책임을 지진 않는다. 다저스에서 감독의 역할은 두루뭉술한 말로 내부(선수단)와 외부(팬과 미디어)의 비판을 무디게 하는 것 같다.
이번에도 로버츠 감독이 책임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LA타임스는 11일 '로버츠 감독이 다음 시즌에도 감독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보도했다. 로버츠 감독은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선수 운영으로 우승을 날린 뒤에도 다저스와 재계약(4년 1200만 달러 추정)에 성공했다.
다저스 구단은 왜 로버츠 감독을 재신임하는 것일까. 그가 구단의 명령을 정확하게 이행하는 '로봇'이기 때문일 터다.
막후에서 로봇을 조종하는 인물은 다저스의 실권자 앤드류 프리드먼(43) 야구부문 사장이다. 그는 빌리 빈, 테오 엡스타인과 함께 MLB의 혁신을 이끈 경영인으로 유명하다. 월스트리트 출신 프리드먼은 2005년 탬파베이 단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부사장에 오르는 10년 동안 탬파베이를 저비용·고효율에 최적화한 팀으로 만들었다. MLB 최하위권 페이롤(총 연봉)의 탬파베이는 뉴욕 양키스, 보스턴과 우승을 경쟁하는 팀으로 성장했다.
프리드먼의 능력을 흠모한 다저스는 2014년 말 그를 사장으로 영입했다. 탬파베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프리드먼은 다저스 유망주 육성에 많은 공을 들였다. 다른 팀에서 몇몇 베테랑 선수를 영입한 목적도 젊은 선수들이 연착륙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디비전시리즈 패배 후 망연자실하는 류현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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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MLB에서 선수단 구성은 단장(General Manager)의 몫이다. 선수들을 경기장에서 활용하는 건 감독(Field Manager)의 권한이다. 힘이 센 단장은 감독의 영역을 침범한다. 이를 테면 디비전시리즈의 선발 로테이션 결정, 커쇼의 불펜 활용은 로버츠 감독이 아닌 프리드먼 사장의 계획이었을 확률이 커 보인다.
프리드먼은 탬파베이 시절 그런 스타일로 팀을 운영했다. 현재 다저스 단장 자리는 1년째 공석이다. 즉, 프리드먼은 사장 자리에서 가장 강력한 단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프리드먼을 영입한 구단주(구겐하임 베이스볼 매니지먼트)가 단장을 선임하지 않을 만큼 프리드먼을 신뢰하고 있다. 프리드먼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로버츠 감독을 신임하는 구조에서 다저스가 운영되는 것이다.
디비전시리즈 패배 후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다저스 선수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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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 선수들도 이를 잘 안다. 로스터와 포지션을 결정할 때 로버츠 감독은 자신의 생각이 아닌 매뉴얼(혹은 지시)을 따르는 걸 수년 동안 봤기 때문이다. 로버츠 감독이 황당한 판단을 할 때 몇몇 다저스 선수들은 현지 기자들에게 "왜 로버츠 감독에게 (이상한) 결정의 이유를 묻지 않으냐"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지난 겨울 다저스는 야시엘 푸이그, 맷 켐프, 알렉스 우드 등 고연봉 선수들을 팔아치웠다. 젊은 선수들의 출전 기회를 늘리는 조치이자, 구단주의 재정 부담을 덜어주는 트레이드였다. 다저스는 2022년까지 팀 연봉을 사치세 부과 한도 아래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투자자들에게 공언한 터였다.
이런 흐름을 보면 시즌 중 다저스가 명확한 약점(불펜) 보완을 위해 투자하지 않은 게 이해가 된다. 경영 효율이 절대 가치가 된 다저스는 정규시즌 때와 마찬가지로 디비전시리즈에서 신인 선수들을 폭넓게 썼다. 불펜투수 더스틴 메이, 포수 윌 스미스, 내야수 가빈 럭스, 외야수 맷 비티을 비중있게 활용했다.
송재우 MBC플러스 해설위원은 "프리드먼은 스몰마켓에서 하던 운영방식을 반복하고 있다. 빅마켓 팀인 다저스에 와서도 그의 경영 스타일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그가 온 뒤로 다저스는 총액 1억 달러 이상의 계약을 하지 않았다. 트레이드를 할 때도 다저스의 유망주를 지나치게 보호하느라 꼭 필요한 선수를 영입하지 못했다. 유망주가 많은 다저스에서 굳이 그렇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다저스의 실권을 갖고 있는 앤드류 프리드먼 사장.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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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비전시리즈에서 로버츠 감독(혹은 프리드먼의 사장)은 계획에 따라 경영했다. 반면 내셔널스 선수들은 내일이 없는 것 같은 전쟁을 치렀다. '원투펀치' 맥스 셔저와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선발과 불펜으로 오가며 투혼을 불살랐다. 다저스가 전략을 짜는 동안, 내셔널스는 전력을 다했다. 다저스는 기량이 아닌 기세에서 졌다.
다저스의 가을야구는 허망하게 끝났다. 1988년 이후 31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은 또다시 미래의 꿈으로 미뤘다. 프리드먼 사장이 경영 효율화에 전념하고, 로버츠 감독이 로봇처럼 사장의 방침을 잘 따른 결과다.
어쩌면 프리드먼 사장과 로버츠 감독에게 2019년은 실패한 시즌이 아닐지 모른다. 정규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동안 다저스타디움의 5만 관중석은 항상 꽉 찼다(다저스타디움 입장권은 MLB 최고 수준으로 비싸다). 또 팬들은 지역 유료 TV 채널로 다저스 경기를 봤다(다저스는 타임워너케이블과 25년 총액 9조원의 중계권 계약을 했다).
2018 스프링캠프에서 대화하는 로버츠 감독과 프리드먼 사장.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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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늘렸으니 경영적 측면에서 다저스는 성공했다. 다만 월드시리즈 우승을 바란 다저스 팬들이, 뛰어난 기량을 갖고도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되지 못한 다저스 선수들이 실패했을 뿐이다.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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