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KBO 리그규정’ 가운데 ‘경기 중 선수단 행동 관련 지침’이라는 게 있다.
‘동업자 정신을 망각한 비신사적인 플레이, 고의적 빈볼 투구 및 슬라이딩 시 발을 높이 드는 행위 등 금지’를 규정 맨 앞에 두고 이어서 ‘욕설, 침 뱉는 행위 금지’, ‘경기 중 관객, 심판, 상대구단 선수단에 위화감과 불쾌감을 주는 언행 금지’, ‘경기 중 심판, 상대구단 선수단에 친목적 태도 금지’, ‘끝내기 홈런, 안타 등을 기록한 선수에게 과도한 환대행위 금지’, ‘과도한 문신의 외부 노출 금지’ 등을 명기해 놓았다.
리그규정의 인용이 장황했지만, 구태여 이 같은 조항을 들먹인 것은 비록 규정은 있으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두산 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한국시리즈 1차전(10월 22일, 잠실구장) 도중 키움의 내야수 송성문(23)이 두산 선수들을 향해 저주에 가까운 말을 내뱉은 것은 명백한 ‘경기 중 선수단 행동 관련 지침’을 어긴 행위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는 말이 있지만, 경기 과정이야 어찌 됐든 그저 이기고 보면 된다는 맹목적인 승리 지향이 승부 세계, 특히 근년 들어 한국 프로야구 판을 좀먹고 있다. 비단 송성문의 사례뿐만 아니라 규정을 지키지 않는 선수들의 이런저런 행위로 KBO 리그가 품위를 잃은 지 오래다. 상대에 대한 존중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마땅하거늘 선수 당사자는 물론 지도자나 구단들도 무관심하다.
그로 인해 송성문 사태와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풍토가 조성된 것이다.
KBO 리그를 유심히 살펴보면 꼴불견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규정상 엄연히 금지돼있는 선수들의 흉측한 문신은 이미 만연돼 있고, 타자가 출루한 뒤 상대 선수를 툭툭 건드리며 무언가 잡담을 주고받거나 히죽거리며 ‘친목’을 도모하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친선경기도 아닌데, 명색이 프로 경기 도중 불필요한 ‘신체적인 접촉’을 하는 것 또한 규정에 명시된 대로 ‘경기 중 상대 선수, 구단에 대한 친목적인 태도 금지’를 위반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1, 3루에 엄연히 ‘코처스 박스’가 그려져 있음에도 경기 중 그 선 안에 서 있는 코치들을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 코치석을 벗어나는 것은 ‘사인 훔치기’에 쉬운 위치로 옮기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엄격하게 제한을 둬야 함에도 이를 경고하거나 제지하는 구단은 없다. 그동안 사인 훔치기 논란이 끊임없이 빚어졌으나 코치들의 그런 행태는 변함이 없다.
막말과 욕설이 난무하는 그라운드, 썩은 정신으로 이기면 무얼하나. 팬들이 등을 돌리게 만드는, 동업자 정신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는 저열한 저주의 행위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
한국프로야구는 1982년 출범 당시 ‘어린이에겐 꿈을, 젊은이에겐 정열을, 온 국민에겐 건전한 여가선용’을 내세웠다. 그런 구호는 그야말로 허공에 흩어진 헛된 꿈이 됐다. 이제야말로 초심으로 되돌아가 성찰과 반성을 해야 한다. 올해 KBO 리그 관중 800만 명 선이 무너진 것도 ‘품격 없는 리그’에 대한 관중들의 질타임을 관계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아울러 KBO는 규정을 만들어놓았으면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고, 지키지 못할 사문화된 규정이라면 폐기해야 한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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