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3 (월)

이슈 [연재] 스포티비뉴스 '한준의 작전판'

[한준의 작전판] 숙제 못 푸는 벤투호, 패스의 질이 문제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포티비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포티비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벤투호가 또 한번 원정 경기에서 무력한 무승부를 거뒀다. 교과서적인 선수비 후역습 자세를 취한 아시아 팀을 상대로 고전하는 패턴을 넘지 못했다. 북한 원정에 이어 레바논 원정에서 득점 없이 비긴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팀은 최종 예선 진출에 유리한 위치를 유지했으나, 최종 예선 진입 이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했다.

한국 시간으로 14일 밤 열린 레바논과 2022년 FIFA(국제축구연맹)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H조 4차전 경기 내용은 연초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2019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과 대동소이했다. 키르기스스탄, 필리핀 등이 포백과 파이브백을 혼용하며 펼친 일명 '두 줄 수비'에 길을 잃었던 모습 그대로였다.

중립 지역에서 열렸던 아시안컵과 달리 원정 경기를 치러야 하는 체력적, 환경적 부담이 더해지면서 결정력 차이로 그나마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아시안컵 당시와 달리 대표팀은 북한, 레바논 등 한 수 아래의 팀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2-0 승리를 거둔 투르크메니스탄전도 내용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유일한 홈 경기이자, 최약체인 스리랑카를 8-0으로 이긴 경기는 경기력을 논할 대상이 아니었다.

◆ 철학논쟁: 전술은 죄가 없다. 구현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철학은 뚜렷하다. 골키퍼와 센터백을 거쳐 공격을 시작하고, 좌우 풀백이 윙어 영역으로 올라가 중앙 지역에 많은 숫자를 두고 상대 지역에서 주도적인 경기를 하는 것이다. 공을 소유하고, 경기를 지배하자는 점유 기반 공격 축구는 대부분의 축구 감독들이 꿈꾸는 방식이다. 스페인과 FC바르셀로나, 그리고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이 지휘한 팀들이 이 스타일로 챔피언이 됐다.

이러한 축구는 기본적으로 공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기술 수준을 갖추고, 전술적으로 영리한 선수들이 모여야 가능하다. 필자와 인터뷰에서 벤투 감독은 한국 대표 선수들이 이러한 플레이를 구사할 자질을 갖췄다고 평가해 이 경기 철학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기 스타일을 통해 국내에서 치른 중남미 팀들과 경기에서 인상적인 내용과 결과를 끌어내기도 했다.

벤투 감독의 방식은 상대 팀도 공격 의지를 갖고 정상적인 경기를 하고자 할 때 유효했다. 우리가 홈에서 경기했다는 이점이 있는 상태에서는 검증됐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의 개별 성향을 철저히 분석하고, 수비에 집중한 채 웅크린 아시아 지역 팀들과 경기할 때, 특히 우리 선수들의 체력과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원정 경기를 할 때 정밀성이 떨어지면서 거듭 답답한 경기를 하고 있다.

스포티비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선수비 후역습의 교과서, 레바논도 다른 팀처럼 한국을 읽었다

4-2-3-1 포메이션으로 나선 레바논은 수비시 공격형 미드필더 무함마드 하이다르가 전진해 일자형 4-4-2 대형으로 블록을 만들었다. 한국 공격은 중앙 지역 진입이 쉽지 않았다. 손흥민을 왼쪽 측면에 배치해 시도한 공격 작업은 상대 라이트백 로베르트 멜키의 철저한 대인 방어를 기반으로 상대 오른쪽 측면 공격수 라빈 아타야,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수비적 리베로로 기능한 펠릭스 멜키의 협력 수비에 철저히 차단됐다.

하프 스페이스, 최종 수비 라인과 미드필드 수비 라인을 공략한 한국의 공격 시도는 레바논 수비의 조밀한 그물, 그리고 개인 집중력을 흔들지 못했다. 상대 수비 간격이 좁았기 때문에 발생한 배후 공간을 한 번에 노린 패스가 들어갈 때 그나마 유효한 공격이 이뤄졌다. 경기 초반 김민재가 손흥민을 향해 직접 뿌린 롱패스, 전반 35분 배후로 빠진 황의조를 향해 이용이 길게 찔러 넣은 패스 등이 레바논 수비를 급하게 했다.

황의조와 남태희가 부지런히 배후 공간 침투를 시도했으나 이러한 배후 직격 패스는 자주 나오지 않았다. 공을 확보했을 때 타이밍이 늦었다. 시야 확보가 늦었고, 시야가 확보됐을 때는 패스가 부정확해 무산됐다. 물러선 상대, 블록을 만든 상대를 공략하기 위해 공을 소유하고, 풀백일 전진시켜 중앙 지역 공격 숫자를 늘리는 것은 공격 전술의 기본이다. 전술의 문제가 아니라 구현법의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가 틈을 보이는 지역을 공략해 골로 가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스포티비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늦은 타이밍, 부정확한 패스: 공 소유한 벤투호가 답답한 이유

전반 8분 남태희가 과감하게 중앙 지역을 돌파하며 만든 공간을 통해 이재성의 왼발 중거리 슈팅이 시도될 수 있었다. 센터백 김민재가 직접 저돌적으로 공을 운반하여 전진한 뒤 뿌린 패스가 레바논 압박 그물을 당황시킨 장면도 여럿 있었다. 경기가 답답한 것은 상대가 수비 준비를 잘 했기 때문이었다. 이 수비를 흔들기 위해 한국도 여러 방식의 공격을 시도했으나 완성도가 떨어졌다. 패스의 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레바논의 공격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국의 공격이 차단된 이후 역습에 치중했고, 서너 명의 선수들이 적은 수의 터치로 빠르게 골문에 도달하는 효율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레바논도 이날 변친적으로 공격진을 운영했다. 본래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어로 뛰는 바셀 지라디를 최전방에 세우고 제로톱 임무를 부여했다. 지라디는 전방에서 포스트 플레이를 하는 게 아니라 2선으로 내려와 공을 받아주고 2선 선수들이 전방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연결해줬다.

지라디가 효과적으로 연계 플레이를 펼치면서 하산 마툭, 무함마드 하이다르, 라빈 아타야 등이 페널티 에어리어 근방에서 돌파 내지 슈팅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다. 이 선수들이 공격에 집중하고 좌우 풀백이 거의 공격에 가담하지 않으며 6명의 선수들은 항시 수비 위치를 잘 지켰다.

레바논 공격은 두 센터백 중 자주 전진하는 김민재의 뒤 공간을 역습 포인트로 삼았으나 김민재는 빠르게 따라 내려와 완벽한 대인 방어력으로 레바논 공격의 차단했다. 이날 출전한 한국 선수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레바논은 공격 상황에서 기술적으로도 준수했으나 김민재를 넘기 역부족이었다. 한국이 무실점 경기를 한 것에 김민재가 적지 않은 지분을 갖고 있다.

스포티비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빨랐던 교체 카드도 무소용, 근본적 개선 필요한 벤투 축구

벤투 감독은 경기가 풀리지 않자 후반전 시작과 함께 황인범을 빼고 황희찬을 투입했다. 황희찬이 우측면 공격으로 이동, 이재성이 왼쪽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되면서 경기의 속도감이 조금 더 살아났다. 손흥민도 이재성, 남태희와 연계 플레이를 통해 공을 소유했을 때 조금 더 여유가 생겼다.

그럼에도 득점이 여의치 않자 벤투 감독은 후반 16분 남태희를 빼고 김신욱을 일찌감치 투입해 조금 더 직접적인 축구를 시도했다. 손흥민-황의조-김신욱-황희찬을 전방에 세운 4-2-4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그러자 레바논은 수비형 리베로로 뛰던 미드필더 펠릭스 멜키를 센터백 라인 사이로 내려 5-4-1 대형으로 대응했다.

신체조건이 준수한 레바논 수비는 김신욱을 철저히 대인 방어하면서 기존의 수비 블록을 유지했다. 무리한 역습으로 승리를 노리다 실점하기 보다 수비 안정을 추구했다. 그러다 보니 황희찬과 김신욱을 빠르게 투입하며 변화를 준 벤투 감독의 선택이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벤투 감독은 후반 40분 이재성을 빼고 이강인을 투입해 예리한 왼발 패스를 기대했으나 레바논 수비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레바논은 후반 27분 아타야를 빼고 스트라이커 힐랄 엘헬위를 투입했으나 공격 숫자를 늘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0-0인 상황의 후반 추가 시간에 공격형 미드필더 무함마드 하이다르를 빼고 풀백 카셈 엘제인을 투입해 수비 숫자를 늘려 막판 실점을 막는 데 집중했다. 북한 원정에서 완패한 레바논은 한국과 홈 경기에 반드시 승점을 얻고자 했고, 그 목표를 달성했다.

레바논전에 한국은 16개의 슈팅을 시도했으나 유효 슈팅은 3개에 불과했다. 패스 성공률은 87.71%로 준수했으나, 크로스는 25개 시도에 6개만 성공했다. 침투 패스를 2회 성공한 선수는 정우영과 이용 뿐이었다. 3개 이상 성공한 선수는 없었다. 전진 패스도 필연적으로 공을 전진시키는 위치에 있는 정우영, 김영권, 김민재 등 후방 선수들 외에는 3개 이상 성공한 선수가 없었다.

공인구의 상태와 경기장 현지 잔디 상태가 패스 플레이를 하기 편안한 환경이 아니었던 점도 있다. 그렇다면 다른 패턴의 플레이를 준비해야 했다. 레바논은 패스를 최소화하고 드리블과 원거리 슈팅으로 효율적인 공격 장면을 만들었다.

스포티비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변화 원하는 목소리, 최종 예선은 더 강한 상대를 만난다

물론 한국이 전반적으로 공격을 주도하고, 좋은 장면을 더 많이 만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승점 1점을 나눠가졌고, 객관적 전력에서 한국이 앞선다는 점에서 만족할 수 없는 경기였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의 경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벤투호를 향해 의심의 시선이 생기는 이유다. 벤투호의 경기 운영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이날 얻은 승점 1점으로 H조 단독 선두에 올랐고, 2020년 잔여 4경기 중 3경기가 안방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위기 상황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2연속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한 북한과 레바논보다 강한 상대를 최종예선에서 만나야 한다는 점, 1년 여 시간이 지났지만 고전하는 양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은 카타르행 티켓을 얻는 길에 대한 불안감을 갖게 하기 충분하다. 벤투호를 향한 의심의 눈길이 대중의 조급함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라 벤투호가 증명해야 하는 문제인 이유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