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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도쿄를 향해… 손으로 페달 돌리는 '강철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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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를 모르는 47세 철녀 이도연

19세 때 허리 다쳐 하반신 마비… 육상 거쳐 핸드 사이클 입문… 2016년 리우 패럴림픽서 은메달

"내년 도쿄 대회선 금메달 딸 것"

조선일보

체감온도 영하 8도 칼바람에도 이도연(47·사진)의 핸드 사이클 등받이는 땀으로 젖어 있었다. 지난 9일 경기도 이천장애인훈련원에 입소하자마자 실외에서 1시간 넘게 쉬지 않고 손으로 페달을 돌리는 중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가 지난여름부터 이어온 훈련 과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년 8월 도쿄 패럴림픽 금메달을 겨냥하는 이도연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당연히 너무 힘들죠! 시속 30∼40㎞ 로 1시간 넘게 페달을 돌리면서 달리다 보면 팔이 저려서 숟가락도 못 들어요. 그래도 달릴 때만큼은 힘든 줄 모르겠어요. 살아 있는 느낌이 들어요."

열아홉 살에 낙상 사고로 허리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된 이도연은 30대 중반 운동을 시작했다. 탁구를 거쳐 2012년부터 육상 필드 종목인 창던지기·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 선수로 뛰었다. 그해 전국장애인체전 3관왕을 차지했다. 국내에선 적수가 없었지만 세계적 수준과는 거리가 있었다. 큰 무대에서 뛰겠다는 열망을 품고 2013년 핸드 사이클에 입문했고, 1년여 만에 세계적 선수로 성장했다. 2014년 5월 이탈리아 월드컵 도로 경기 땐 레이스 도중 사이클이 뒤집혀 한쪽 페달이 고장 났는데도 나머지 페달만 돌려 3위를 했다. 포기를 모르는 근성으로 '철인(鐵人)'이란 별명을 그때 얻었다. 2014년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2관왕에 오른 그는 첫 패럴림픽이었던 2016 리우 대회 로드 레이스에서 60㎞를 1시간15분58초 만에 주파하며 은메달을 땄다. 우승자인 독일 선수에게 단 2초 뒤졌다.

작년 3월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선 종목을 바꿔 스키 선수로 변신했다. 한국 최고령 선수로 노르딕스키 7종목에 도전해 총 50㎞를 완주했다. 경기마다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레이스를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해 2018년 인도네시아 장애인 아시안게임 때는 다시 핸드 사이클 부문 금메달 2개를 목에 걸며 2대회 연속 2관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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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연이 9일 이천장애인훈련원 안에 있는 도로에서 핸드 사이클을 타는 모습. 손으로 페달을 돌려야 하는 종목 특성상 상체 힘이 중요하다. 팔굽혀펴기 100개는 거뜬하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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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연은 내년 패럴림픽 출전을 대비해 지난여름부터 자비로 훈련에 돌입했다. 로드 레이스 연습 장소를 물색하다 전북 순창 인계면에서 주민들의 도움으로 사이클을 탈 수 있었다. 매일 새벽 마을 입구에서 인근 산 정상까지 왕복 60㎞(2차선 도로)쯤을 오갔다. 땡볕에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에서 2시간 30분가량 페달을 돌리고 나서 몸무게를 재보면 하루 2∼3㎏씩 빠졌다고 한다. 숙식은 동료 선수들과 모텔에서 해결했다. 이도연은 "마을 어르신들이 '내년 패럴림픽 때 좋은 결과 기대하겠다'고 응원해줘서 어깨가 무겁다"며 웃었다.

싱글맘으로 20대 딸 셋을 키워낸 이도연은 언제나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합숙 훈련에 들어오던 이날 아침에도 둘째 딸이 끓여준 전복죽을 먹고 힘을 냈다고 했다.

"레이스 막판 힘들 때마다 딸들을 생각하면 어벤저스처럼 힘이 나와요. 도쿄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죽을힘을 다했다'고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할 거에요."



[이천=주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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