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처럼 팬을 웃길 수 있을 때
선수와 팬 사이 거리 더 가까워져
리키 파울러(오른쪽)가 오렌지주스를 우유로 착각해 커피에 붓고 있다. 오렌지색 옷을 즐겨입는 파울러는 광고에서 색깔을 구별하지 못하는 색맹으로 연기했다. [사진 ESPN 유튜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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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스타 리키 파울러와 미국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의 캐스터 존 앤더슨이 탕비실에서 만난다.
파울러 (하품을 하고 들어와, 커피를 잔에 따르며) 요즘 너무 졸려.
앤더슨 근데 왜 디카페인 커피를 마셔?
파울러 이거 디카페인 아닌데.
앤더슨 오렌지색 손잡이(디카페인 커피를 뜻함)잖아.
파울러 이건 오렌지색이 아니야.
앤더슨 너 혹시 색맹이니?
파울러 아니.
파울러는 태연하게 오렌지 주스를 커피에 타 마시더니 커피도 버리고 오렌지 주스를 통째로 버린다.
파울러 으, 이 우유 상했다.
앤더슨 (황당한 표정으로) 그래.
ESPN이 한국 프로야구를 중계한다고 해서 화제다. 앞의 대화는 ESPN의 스포츠 뉴스인 ‘스포츠센터’의 광고 시리즈 ‘이것이 스포츠센터(This is Sports center)’ 중 리키 파울러 편 대본에 나온 것이다.
이 광고 캠페인은 1994년 처음 나온 이래로 26년간 수백 개의 에피소드로 제작됐다. 주로 유명 스포츠 스타와 방송인이 출연해 ESPN 사무실에서 평범한 일상 대화에 위트를 가미한 형식이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아 인기다. ‘이것이 스포츠센터’ 역대 톱10(또는 50)을 뽑는 기사나 유튜브 등이 나올 정도다.
이 광고에서 선수들은 망가지기도 한다. 눈에 확 띄는 오렌지색 옷을 즐겨 입는 파울러는 광고에서는 주황색 색맹으로 나온다. 이를 숨기고 산다는 설정이다. 파울러는 오렌지색 손잡이가 달린 디카페인 커피를 구분하지 못하고, 오렌지 주스를 우유로 착각해 커피에 붓는다.
‘이것이 스포츠센터’에서 선수가 웃음거리가 되는 건 다반사다. 조던 스피스는 캐디가 없으면 숟가락을 쓸지 포크를 쓸지 결정도 못하는 ‘캐디 보이’가 된다.
이런 광고도 있었다. 프로풋볼 경기복 차림의 선수(아담 비나티에리)가 검색대에 자꾸 걸린다. 슈퍼볼 우승 반지가 4개나 되는데, 그걸 잊고 검색에 걸릴 때마다 반지를 하나씩만 빼 계속 걸린다. 다른 선수(짐 켈리)가 이를 보며 짜증 낸다. 유명 쿼터백 켈리는 슈퍼볼 우승 반지가 하나도 없다. 4회 연속으로 슈퍼볼서 패하는 악몽을 겪었다. 아픈 기억일 텐데, 켈리는 광고에 나와 자신의 처지를 풍자하며 기꺼이 망가졌다.
광고에 골프 스타도 많이 나왔다. 개그맨처럼 잘 웃기는 예스퍼 파르네빅과 나서기 좋아하는 버바 왓슨은 물론, 타이거 우즈, 브룩스 켑카, 필 미켈슨 등 대부분의 스타가 출연했다. 콧수염으로 유명한 우즈의 전 캐디 제프 코웬도 등장했다.
일상 속 유머로 소구력 높은 광고의 포인트는 유명인을 망가뜨리는 거다. 한국에 이런 광고가 없지 않지만, 흔치 않다. 우선 모델 본인이 싫어하는 경우도 많다. 포토샵과 사진앱을 통해 멋지게 보이려고만 한다. 광고주도 대개는 “우리 모델은 멋있게 나와야 돈값을 한다”고 여긴다. 한국 유머 코드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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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타는 약간 다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스포츠 스타의 이미지는 영웅, 롤 모델, 완벽함 등이다. 그걸 비틀면 사람들이 아주 즐거워한다.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국 스포츠 스타는 체면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은퇴 후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서야 웃음의 소재가 되려한다.
좀 망가져 주면 어떨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도, 스포츠 콘텐츠를 더 풍부하게 할 수도 있다. 또한 전염병으로 생긴 스포츠 공백을 극복하는 방법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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