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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NOW] 인종차별 논란에… 레드스킨스·인디언스 이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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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L(미 프로풋볼) 워싱턴 레드스킨스·캔자스시티 치프스, MLB(미 프로야구)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애틀랜타 브레이브스,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시카고 블랙호크스. 이들의 공통점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상징하는 용어를 팀 이름으로 쓰는 것이다. 원주민 차별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구단들은 "이 또한 역사"라며 꿈쩍도 안 했다. 하지만 지난 5월부터 번진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이들의 이름을 존폐의 갈림길에 세웠다.

87년 만에 사라지는 '레드스킨스'

변화는 미국 수도부터 시작한다. 워싱턴 D.C.를 연고지로 하는 레드스킨스 구단은 13일(현지 시각) "87년 만에 팀 이름과 로고를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레드스킨스(Redskins)는 18세기 북미 대륙에 상륙한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대거 살육하던 역사에 기인한다. 당시 백인들은 원주민들의 머리 가죽을 벗겨오거나 피범벅된 시신에 현상금을 걸며 '원주민 사냥'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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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L(미 프로풋볼) 워싱턴 레드스킨스가 '원주민 사냥'을 독려한 역사가 담긴 팀 명칭과 로고를 바꾸기로 결정한 가운데 아메리칸 원주민과 관련된 다른 팀들도 명칭이나 응원 방법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 왼쪽은 레드스킨스의 쿼터백 드웨인 해스킨스. 오른쪽은 원주민들이 전투에 앞서 손도끼를 위아래로 찍어내리는 '토마호크 찹' 의식을 흉내 낸 MLB(미 프로야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팬들의 응원 모습. /AP연합뉴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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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스킨스를 빼라는 목소리가 계속 있었지만 구단 측은 "팀의 정체성이라 못 바꾼다"고 거부했다. 2013년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상하원 의원이 이름 변경을 촉구해도 꿈쩍 안 하다가, 스폰서 기업들이 가세하자 다른 결과가 나왔다.

물류업체 페덱스는 2억500만달러(약 2500억원)를 내고 레드스킨스의 홈 구장 명칭권을 가진 메인 스폰서이고, 아마존·나이키·펩시콜라·월마트 등 굵직한 글로벌 기업들도 레드스킨스를 후원한다. 이들은 최근 "구단명을 안 바꾼다면 스폰서 계약을 철회하겠다"고 통보했다. 구단이 미적대자 아마존은 레드스킨스 관련 상품을 자사 쇼핑몰에서 철수시켰고, 나이키는 레드스킨스 용품을 생산 중단했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돈 앞에서 구단이 항복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두꺼운 코와 입술로 아메리칸 원주민을 희화화한 '와후 추장'을 1948년부터 팀 로고로 사용한다. 인디언스가 이때부터 지금까지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자 '와후 추장의 저주'라는 말도 생겼다. 인디언스는 이달 초 "사회 정의와 평등을 촉진할 책임이 있다"면서 "팀 이름 교체를 검토하는 초기 단계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구단 이름은 유지하지만, 대신 응원은 수정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브레이브스 팬들은 원주민들이 전투에 앞서 손도끼를 위아래로 찍어내리는 '토마호크 찹' 의식을 단체 응원으로 해왔는데, 이 역시 1990년대부터 원주민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캔자스시티 치프스와 시카고 블랙호크스는 아직은 이름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우리 이름이 미국 원주민의 문화 유산과 공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치프스는 팬들이 원주민 추장들(Chiefs)로 분장한 응원전으로 유명하고, 블랙호크스는 과거 일리노이 지역의 전설적인 추장 '블랙호크'를 팀 이름과 마스코트로 삼았다.

왜 원주민 이름이 인기였을까

북미 지역에선 19세기 후반부터 레드스킨스를 비롯해 워리어스, 치프스 등 원주민 관련 용어를 팀 이름으로 즐겨 썼다. 살육전 끝에 원주민을 변방으로 몰아냈지만, 손도끼 하나로 맹렬하게 맞서 싸웠던 원주민의 용맹함에 탄복한 백인들의 감상이 스포츠에 스몄다. 불과 5년 전까지 프로는 물론 중·고·대학에서 원주민 관련 이름을 쓴 미국 스포츠 팀이 2000개가 넘었다. 2010년대 들어 학계에서 원주민을 희화화하는 스포츠 문화가 원주민 차별을 고착화한다는 등의 연구 결과를 내놓고, 인권 단체들의 소송이 잇따르면서 팀 이름 교체가 대세를 이뤘다. 프로 5개 구단도 이제 성역이 아니다.

아메리칸원주민전국회의(NCAI)는 레드스킨스의 발표 직후 다음과 같은 성명을 냈다. "우리는 수천년간 이 땅을 지켰다. 우리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정의롭고 평등한 나라를 위해 오늘까지 싸웠다. 원주민을 향한 학대와 경멸의 역사를 멈추라. 우리를 마스코트로 삼지 말라."

[양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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