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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태평로] “적게 일하면서 무슨 수로 혁신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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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바꾸려면 땀 흘려야” 머스크도 잡스도 한목소리

우린 ‘주 52시간’ 초과 다툼… 땀 흘려 성공한 경험 잊어선가

조선일보

일론 머스크 전기 표지 사진/사이먼 & 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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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읽은 소년지엔 종종 미래의 모습이 그려졌다. 온종일 빈둥거리며 놀아도 모든 게 풍요로운 천국이었고 혁신을 거듭하면 그런 날이 온다고 했다. 자라면서 혁신을 주도하는 나라가 미국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1990년대 애플 광고에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미친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고 했는데, 미국은 에디슨부터 빌 게이츠를 거쳐 잡스와 머스크, 젠슨 황까지 세상을 바꾸는 혁신가가 끝없이 탄생하는 나라다. 그들 덕분에 세상이 더 풍요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머스크가 트럼프 2기 정부효율부를 맡아 지난주 낸 구인 공고가 ‘무엇으로 혁신을 이루는가’를 돌아보게 했다. 혁신의 대명사이니 적게 일하고 많이 받는 조건을 달 줄 알았는데 거꾸로였다. 주 80시간 일을 시키고 월급은 한 푼도 안 주겠다고 했다. 한국에서 이런 공고를 냈다간 악덕 사업주란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노동은 없다. 나는 머스크가 줄 보상은 ‘혁신적인 리더와 함께 일하고 성공한 경험’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 경험이 커리어 가치를 높여 더 좋은 회사, 더 높은 직급으로 올라가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현실적 판단도 물론 있을 것이다.

미국의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우리 시대 두 명의 걸출한 혁신가인 일론 머스크와 스티브 잡스의 평전을 썼다. 전기에 소개된 두 사람은 직원에게 과중한 노동시간과 열정을 요구하는 리더들이었다. 머스크는 일할 때 ‘광적인 긴박감’을 강조했다. 스페이스X 우주선 로켓이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단지 긴박감을 잃지 않게 하려고 단 몇 주 만에 로켓을 세울 스탠드를 완성하라고 지시하는 식이다. 전기차 모델3 출시를 앞두고는 네바다 공장에 죽치고 하루 3~4시간만 자면서 직원들을 주 7일 노동으로 내몰았다. 잡스 평전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1984년 매킨토시 출시를 앞두고 마지막 3일은 퇴근도 못 하게 막았다. 직원들에게 “해군이 되느니 해적이 되라”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목표 달성에 매진하라 다그쳤다. 밤샘 끝에 과업을 완수하면 “여정 자체가 보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전기에는 이런 두 사람에게 매료된 직원들의 증언이 여럿 실려 있다. 잡스가 생일을 맞으면 직원들은 고속도로 광고판을 사서 ‘생일 축하해요, 스티브.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ㅡ해적 일동’이라 썼다. 협력업체들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잡스는 납품 시간을 촉박하게 제시한 뒤 협력업체 경영진이 고개를 저으면 ‘빌어먹을 고자X들(Fucking Dickless Asshole)’이란 막말을 퍼부었다. 그런데도 밤샘으로 납기를 지킨 한 업체는 잡스가 한 욕설 머리글자를 딴 ‘팀 FDA’라 새긴 재킷을 만들어 자랑스레 입고 다녔다. 머스크의 닦달에 시달린 직원들도 기적 같은 성공을 맛보면 태도가 달라졌다. ‘지옥문이라도 선탠오일을 들고 따라 들어갈 마음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머스크의 구인 공고에 “나라를 기업처럼 운영하려느냐?”는 비판도 있다. 그런데 나라라고 다를 게 있나. 우리에게도 “더 오래 일하고 더 많이 땀 흘리자”던 리더가 있었다. 그의 리더십은 강하고 매서웠지만 많은 국민이 그를 진짜 리더로 존경한다. 그의 여정에 동참해 성공을 맛봤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가 바뀌며 따뜻한 말을 하는 리더가 대세다. 그러나 본질은 머스크와 잡스처럼 성공을 경험하게 하고 땀 흘린 만큼의 보람을 안기는 리더, 그래서 여정에 동참한 것을 보상으로 느끼게 하는 리더다. 최근 주 52시간 초과 근무 허용 여부를 두고 우리 사회에 논란이 일고 있다. 혁신가의 나라 미국에서도 첫손 꼽는 혁신가는 여전히 열정과 헌신을 효율의 조건으로 내세우는데, 정작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일을 덜 할까 고민한다. 우리가 땀흘려 성공한 경험을 해본 지 너무 오래돼 이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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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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