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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리디아 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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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리디아 고.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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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스터스에서 다시 한번 여실히 느꼈다. 골프에서 마음 착한 사람이 불리하다는 것을.

당시 챔피언조에서 패트릭 리드와 로리 매킬로이가 경기했다. 리드는 라이개선, 절도, 경기장에서 부모님을 쫓아내는 등의 사건으로 악명이 높다. 반성도 안했다. 매킬로이는 다들 좋아하는 굿가이다. 매킬로이라는 선과, 리드라는 악의 대결 구도였다. 갤러리는 다들 매킬로이를 응원했다.

리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너희는 떠들어라. 나는 내 길을 간다는 식이었다. 반면 착한 매킬로이는 자신을 응원하는 갤러리를 위해서 꼭 이겨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듯했다.

매킬로이는 2번 홀에서 1m 남짓한 이글을 넣지 못한 후 얼굴이 빨개졌다. 부담을 느꼈는지 이후 제 스윙을 못 하고 리드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녔다.

스포츠는 실력 위주일 것 같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착한 사람이 잘 되기가 쉽지 않다. ESPN의 화제작인 ‘더 라스트 댄스’를 보면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승리를 위해 동료를 학대했다. 그게 먹혔다.

타이거 우즈는 1996년 US 아마추어 챔피언십 결승에서 규칙을 알려줘, 패배할 경기를 이기게 해준 매치플레이 상대에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벤 호건은 얼음 같은 사나이로 불렸다. 월터 헤이건 등 뛰어난 선수들은 냉혈한의 모습이 있다.

가장 큰 예외는 로레나 오초아다. 여자 골프에서 세계 랭킹 1위를 가장 오래(158주) 한 선수다. 오초아는 멕시코 어린이 드라마 '천사들의 합창'의 히메나 선생님 같은 캐릭터다. 경쟁자를 포함,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골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멕시코 노동자들을 위해 음식을 대접하곤 했다.

리디아 고도 선한 마음의 상징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세상을 밝게 본다. 나는 판타지 소설인 ‘나니아 연대기’를 빗대 ‘리디아 연대기’라고 쓴 적이 있는데 그가 어리고 대단한 활약을 해서이기도 했지만, 동화 속 주인공처럼 약간 비현실적으로 세상을 밝게 보는 캐릭터 같기도 해서였다.

20대 들어서는 성적이 예전만 못하다. 세상이 밝기만 한 것도 아니고, 때론 정의롭지 않고, 어릴 때는 몰랐던 복잡한 일들이 생긴다는 것도 알게 됐을 것이다.

10일 마라톤 클래식 역전패는 아프다. 6개 홀을 남기고 5타 차가 뒤집어졌고 마지막 홀에서 더블보기로 무너졌다. 메이저대회는 아니지만 주인공이 천재 리디아 고니까 골프에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패배를 받아들이고 승자를 축하하는 모습은 멋졌다. 그는 “내가 원하는 마무리는 아니었지만 내 경기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한 번에 한 발자국씩 디뎌가겠다”고 했다.

마음 착한 오초아도 은퇴를 앞두고는 경기 중 클럽을 던져버리는 등 짜증을 내곤 했는데 리디아 고는 선한 마음을 잃지 않았다. 그의 SNS에 8644명이 위로하고 응원했다.

리디아 고가 최근 쓴, 첫 우승 직전의 열다섯 살 자신에게 보낸 편지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멋진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생길 거야. 즐거운 추억도 있고 네가 눈물을 흘릴 만큼 상처 입게 될 일들도 있어. 그리고 그 모든 일을 겪으며 인간으로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거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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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고의 마지막 우승인 2018년 4월 메디힐 챔피언십.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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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은퇴 후엔 심리학자가 되려 한다. 기쁨과 상처를 두루 겸험했으니 좋은 학자가 될 것이다. 선수로서도 최고의 자리로 돌아왔으면 한다. 리디아 고를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착한 사람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를 아는 LPGA 선수들도 다들 응원할 거다.

골프전문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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