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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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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트럼프가 깬 골퍼 대통령 필승 징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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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대선 패배가 확정된 8일(한국시각) 자신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하는 도널드 트럼프.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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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골퍼와 비(非) 골퍼가 경쟁하면 대개 골퍼가 이겼다. 그 결과 지난 105년간 19명의 미국 대통령 가운데 골프를 하지 않은 사람은 3명뿐이었다. 특히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할 때는 이 징크스가 예외 없이 들어맞았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버락 오바마는 야당으로부터 “골프를 너무 많이 쳐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그러나 너끈히 재선에 성공해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았다. 반대로 골프 안 쳤던 3명의 대통령인 지미 카터, 허버트 후버, 해리 트루먼은 모두 재선에 실패했다.

대선 승패가 골프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골프』(First off the tee)를 쓴 존 나타 주니어는 “골프를 하면 무소불위의 대통령이라도 자신이 실수투성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다”고 썼다. 겸손해지고 남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인다는 얘기다.

빌 클린턴은 골프를 두고 “대통령이라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오바마는 “4시간의 자유”라고 표현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잔디를 걸으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기분 전환이 된다”고 말했다. 그런 시간이 대통령의 현명한 정책 결정을 도와줄지도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 중 골프를 가장 좋아하고, 실력이 뛰어났으며(본인 주장), 게다가 골프장 사업까지 하는 골퍼였는데도 재선에서 실패했다. 골퍼 대통령 재선 필승의 징크스가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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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LPGA 대회에서 선수들과 사진을 찍는 트럼프.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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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스포츠 칼럼니스트 릭 라일리가 현직 대통령의 골프를 고발한 책 『커맨더 인 치트』에 따르면 트럼프는 속임수를 많이 쓰는 내기 꾼들한테 골프를 배웠다. 그 결과 '발각되지 않으면 속임수가 아니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트럼프는 클럽 챔피언십에서 "18차례 우승했다"고 자랑했는데, 확인된 건 하나도 없다. 16번은 거짓말이 확실하고, 두 번은 근거가 불확실하다. 골프장 개장 전 친구들과 시범 라운드에서 1등 한 뒤에 '클럽 챔피언'이라고 명패를 박기도 했다.

그가 주장한 핸디캡(2.9)만 보면 골프 실력이 잭 니클라우스보다 뛰어나다. 함께 라운드를 한 사람들은 "트럼프는 공을 치기 좋은 곳에 옮기는 건 다반사이며, 그린에 있는 상대 공을 몰래 벙커에 던진 일도 있다"고 했다.

돈 문제도 깨끗하지 않다. 자신의 골프장에 홀인원 상금 100만 달러를 걸었다가, 주지 않아서 소송을 당했다. 골프 코스를 만들 때 건축업체에 대금을 지급하지 않기도 했다.

특이하게 골프장에 염소 8마리를 키우는데 농지세를 감면받기 위해서다. 주영 미국대사에게 "디 오픈 챔피언십 개최지를 트럼프 소유 골프장으로 옮기라"고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골프에서 일어난 이런 사례를 보면 트럼프의 사업과 세금 비리, 다른 나라의 도움으로 대선을 치렀다는 의혹에 신빙성이 커진다. 트럼프는 오바마의 대통령 재임기에 “골프 때문에 일을 안 한다”고 27번이나 트위터로 비난했다. 정작 자신은 대통령이 된 뒤에는 오바마의 두 배 가까이 골프장에 갔다.

트럼프의 진짜 모습은 골프 라운드 때 이미 알 수 있었다. 대통령 재임기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트럼프의 재선 실패는 '골퍼 대통령의 재선 필승 징크스가 깨졌다'라기보다, '양심 없는 골퍼는 결국 실패한다'는 상식의 확인에 가깝다. '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보려면 골프를 함께 해보라'는 격언도 다시 힘을 얻는다. 무엇보다 골프가 4년간 트럼프 때문에 고생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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