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학교 폭력 사태가 일파만파 체육계를 잠식한 가운데서도 가해자의 안위를 걱정한다. 체육계의 부조리와 폭행 근절을 대한체육회로부터 기대할 수는 있는 것일까.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실에 따르면 대한체육회는 ‘체육선수 학폭 등 가혹행위 관련 문체부의 추진 방향’ 답변서에서 “청소년기에 무심코 저지른 행동으로 평생 체육계 진입을 막는 것은 가혹하다”는 견해를 밝혀 논란이 됐다.
체육회는 “형사처벌을 받은 범죄자에 대해서도 사회진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며 “적절한 징벌 및 규제, 재범방지 교육, 사회봉사 명령 등을 통해 반성하고 교화해 사회에 재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프로배구에서 잇따라 학교 폭력 폭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부적절한 답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권리 보호를 걱정한다’는 여론의 비판이 들끓자 체육회는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징벌 및 규제를 우선적으로 실시하되 재범방지 교육, 사회봉사 명령 등의 교화 프로그램 마련이 제도적으로 필요하다는 취지였다”며 해명했다.
그럼에도 찜찜한 마음을 거두기 힘들다. 체육회가 여전히 제 식구 감싸기에만 급급하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구시대적인 시각으로 폭력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는 인상도 받는다. “체육인들의 인식과 문화를 바꾸도록 노력하겠다”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외침이 공허하게 들린다.
체육회는 그간 숱한 폭행 및 성폭행 폭로가 나올 때마다 예방과 자정을 약속했다. 하지만 매번 솜방망이 징계에 머물렀고, 가해자가 또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체육회가 이번에 언급한 학교폭력 가해자 사회 재진입 프로그램 역시 재범방지 교육과 사회봉사 명령 등에 그치는 것으로, 기존에 체육회가 제시했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여론의 포화가 몰리자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마지못해 내놓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폭력에 대한 인식 역시 답보 수준이다. 최근 청소년들의 범죄 행위가 늘어나면서 소년범에 대한 접근을 달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소년법을 아예 폐지하거나 촉법소년(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낮춰 소년범을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학교폭력 문제를 ‘청소년기에 무심코 저지른 행동’ 또는 ‘미성숙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니라는 의미다.
박옥식 청소년폭력연구소 소장은 “청소년들의 신체 성숙도와 인지적 발달은 과거보다 굉장히 빨라 충분히 성숙한 존재”라며 “학교폭력과 성인 범죄를 구별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주장했다. 박 소장은 “미성년자들이 자신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소년법과 촉법소년 조항 등을 악용하는 예도 많다”고 덧붙였다.
이기흥 회장이 과거 심석희 앞에서 가해자인 조재범 코치의 복귀를 언급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체육계는 그간 폭력 사태를 ‘어쩌다 일어난 사고’ 정도로만 여겨왔다. ‘맷값’ 폭행 당사자인 최철원이 도덕성에 흠결이 있음에도 아이스하키협회장에 당선된 것 역시 일례다.
실제 체육계에서 폭력은 일상이 된지 오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 5274개 초·중·고 선수 6만3211명을 대상으로 인권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4.7%(8440명)가 코치나 선배로부터 신체 폭력을 경험했다. 폭언이나 욕설·협박 등 언어 폭력도 15.7%(9035명)를 차지했다.
놀라운 점은 폭력을 경험한 초등학교 학생 선수의 38.7%(898명)는 신체 폭력을 경험한 뒤 감정을 묻는 말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함”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일부 중‧고등학교 학생 선수들도 인권위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운동이라는 것 자체가 좀 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게 없으면 성적 내기가 힘들다”, “선배들도 이렇게 했으니까 이제 그냥 자연스럽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처맞아야지 정신을 차린다”라고 말해 경악을 자아냈다.
체육단체 수장부터 일선 지도자, 체육계 풀뿌리까지.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한국 체육의 현실이다. 대대적인 인식 변화와 제도 개선이 없다면 체육계의 악습 근절은 요원해 보인다.
mdc0504@kukinews.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