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7 (수)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켑카-디섐보 앙숙 우리는 왜 없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브라이슨 디섐보(왼쪽)와 브룩스 켑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PGA 투어의 스타인 브룩스 켑카와 브라이슨 디섐보가 으르렁거리고 있다. 2019년 디섐보의 슬로플레이를 켑카가 돌직구 스타일로 비판해 앙금이 생긴 이래 티격태격한다.

지난 5월에는 켑카가 방송 인터뷰를 하는데 디섐보가 쇠 징 스파이크를 신고 소리를 내면서 지나갔다. 디섐보에 대한 켑카의 짜증 가득한 표정을 볼 수 있었다.(조회 수 1000만).

두 선수 모두 장타를 치는 정상급 선수다. 실력에 비해 인기는 상대적으로 적어 인정 욕구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유치하게 싸우지는 않는다. SNS를 활용한 말싸움엔 유머를 섞는다.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 셧다운이 끝나고 디섐보의 몸이 헐크처럼 불어서 나타났을 때다.

켑카는 금지약물을 복용했다 적발된 선수의 영상을 올렸다. 디섐보가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암시다. 그러자 디섐보는 “나는 복근이 있고 켑카는 없다”고 받아쳤다. 무릎을 다친 후 운동 부족으로 약간 배가 나온 켑카를 꼬집었다.

그러자 켑카는 트위터에 자신의 메이저 우승컵 4개를 전시한 사진을 올렸다. 거기에 “네가 맞다. 나는 아직 두 개가 모자란다”고 썼다. 메이저 4승을 거둔 켑카는 식스팩이 되려면 두 개가 모자란다는 뜻이다. 당시 디섐보의 메이저 우승은 하나도 없었는데 이를 비꼰 것이다.

중앙일보

브룩스 켑카 인터뷰 중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브라이슨 디섐보.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프로풋볼(NFL) 쿼터백 애런 로저스-디섐보가 한 팀이 되어 필 미켈슨-톰 브래디와 벌이는 ‘더 매치’ 대진이 발표됐을 때다. 켑카는 “(디섐보와 한 편이 된) 로저스가 불쌍하다”고 했다.

디섐보는 “나는 켑카의 머릿속에 임대료도 내지 않고 살고 있다”고 비꼬았다. 사사건건 자신에게 어깃장을 놓는 켑카의 머릿속엔 디섐보라는 이름으로 꽉 차 있다는 뜻이다.

미켈슨도 숟가락을 얹었다. 그는 “둘의 싸움이라 나는 빠져야 할 것 같은데, 주최 측에서는 PGA 챔피언십 우승자를 원한다”고 썼다. 미켈슨은 PGA 챔피언십에서 켑카와 경쟁해 우승했다. 돌 하나로 더 매치의 상대인 디섐보와 켑카를 한꺼번에 저격했다.

선수끼리 아옹다옹하는 장면은 골프에 해가 될까. 켑카는 “라이벌 관계가 골프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골프장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골프장 안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며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골프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했다.

켑카와 디섐보는 동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이 부분에서 의견은 같았다. 실제로 두 선수의 인터넷 격돌은 SNS에서뿐만 아니라 미디어에 자주 보도됐다.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지 않은가. 유머라는 양념이 들어가니 더욱 그렇다.

국내 투어에는 언제부턴가 라이벌이 사라졌다. 다들 경쟁자를 좋은 선수, 착한 후배, 존경하는 선배 등으로 말한다. 실제로 꼭 그렇지는 않다. 골프는 누군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내려가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라 경쟁의식이 강하다.

개그맨들이 더는 정치 풍자를 하지 않는 것처럼, 선수들도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을 뿐이다. 말꼬리를 잡아 여론재판에 회부하는 엄숙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선후배 관계 등이 경직되어서 그럴 수도 있다.

사람들의 욕망과 이에 따른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갈등은 재미의 필수요소다. 스포츠에서 이는 라이벌 관계이며, 가장 흥미로운 콘텐트다.

그러니 켑카와 디섐보처럼 적당한 선에서 누굴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드러낼 필요도 있다. SNS 시대엔 누가 더 말을 재치 있게 하는지, 누가 더 똑똑한지 볼 수 있는 계기도 된다.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