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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이슈 '텍사스' 추신수 MLB 활약상

숲 아닌 나무만 본 추신수의 ‘소신 발언’ [김양희의 맛있는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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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스 한인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추신수의 모습. DKNET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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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야구 커뮤니티는 뜨거웠다. 추신수(SSG 랜더스)의 소신 발언 때문이다.

추신수는 최근 공개된 댈러스 한인 라디오 방송(DKNET)과 인터뷰에서 세계야구클래식(WBC) 대표팀 구성에 대해 언급하며 문동주(한화 이글스), 안우진(키움 히어로즈) 등 젊은 투수들이 뽑히지 않은 데 대해 짙은 아쉬움을 표했다. 특히 안우진에 대해서는 “분명히 잘못된 행동을 했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처벌도 받고 출장정지까지 다 받았다. 한국에서는 용서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우진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난 시즌 강속구와 안정된 제구력을 앞세워 2관왕(평균자책점, 탈삼진)에 올랐다. 하지만 과거가 문제다. 안우진은 휘문고 시절 학교폭력(학폭)이 인정되며 대한체육회로부터 3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고, 이 때문에 영원히 국가대표에 뽑힐 수 없는 신분이 됐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및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 주관하는 프리미어12 등에는 나설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세계야구클래식(WBC)은 프로 단체인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관하기에 대표팀에 뽑힐 수 있다. 야구위(KBO) 기술위원회가 고민했던 것도 이 점 때문이다.

기술위원회를 비롯해 이강철 감독 등 대표팀 코치진은 안우진 발탁에 1년여 가까이 고심했다. B조 일본, 호주 등을 상대하려면 안우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쩌면 그들이 더 간절하게 안우진을 바랐을 지 모른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뽑지 않았다. 세계야구클래식은 리그 간 대결이 아니라 국가 이름을 걸고 싸우는 대회이기 때문이다. 조범현 기술위원장이 대표팀 30인 명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국가대표의 상징적 의미, 책임감, 자긍심을 고려해 대표팀을 선발했다”라고 애써 밝힌 이유다. 국가대표가 그저 실력만 있으면 뽑히는 자리라고 추신수가 생각했다면 많이 아쉽다. 국가 대항전이 그저 “외국으로 나갈 기회를 만들어주는”(추신수) 자리라고 생각했다면 더 그렇다. 더군다나 안우진은 아직 확실하게 학폭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사회에서 학폭은 병역, 음주운전 등과 함께 가장 민감한 이슈다. 공교롭게도 학폭으로 인생이 망가진 이의 처절한 복수극을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 1이 최근 큰 인기를 끌면서 학폭은 더 예민한 문제가 됐다. 〈더 글로리〉 파트 2는 세계야구클래식 개막(3월8일) 직후 공개되는 터. 만약 안우진이 대표팀에 뽑혔다면, 그래서 야구를 모르는 일반인까지 안우진의 학폭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면 그 이후의 상황은 어찌 됐을까. 사안은 다르지만 프로야구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대표팀 선발에 불공정이 있었다는 의혹만으로 선동열 당시 대표팀 감독이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서야만 했던 전례가 있다. 요즘 한국 사회는 성적 보다는 공정에 더 날을 세운다는 사실을 추신수는 정말 몰랐을까.

추신수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다. “나이가 많다고 선배이고 어른은 아니다. 불합리하게 대우 받는 후배를 위해 선배가 나서야 한다.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불합리한 일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실제로 추신수의 소신 발언으로 잠실야구장 원정라커가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다소 경솔했다. 그리고, 그의 발언 자체가 2차 가해가 될 수 있음을 망각했다. 때로는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만 한다. 개인이 아닌 리그 전체를 위한 선택이 불가피한 때가 있다는 말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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