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김건우 인터뷰 /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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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존버(존중하며 버티기)'는 승리한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끝까지 버텨낸다면 결국 승리는 찾아온다. '더 글로리'로 인생의 '영광'을 맞이한 배우 김건우 이야기다.

지난해 12월 30일 파트1으로 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극본 김은숙·연출 안길호)는 이달 10일 파트2가 공개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극 중 학교 폭력 가해자 5명 중 한 명인 손명오 역을 연기한 김건우는 "본의 아니게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제가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렇게까지 알아봐 주신 적은 없다"며 "이런 파급력은 처음 겪어보는 거라 부끄럽기도 하다. 제일 실감하는 순간은 저를 '솔명오'라고 불러주실 때다. 몇 년 간 '쌈, 마이웨이' 이후 '김탁수'로 살아왔는데 제 본명을 아는 분도 늘어나서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건우는 '더 글로리' 참여 과정에 대한 물음에 "문을 닫고 들어갔다"고 표현했다. 앞서 김건우는 이미 안길호 감독과 tvN 드라마 '청춘기록'으로 인연을 맺은 바, 일각에선 안 감독의 선택이 있었을 것이란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김건우는 "길호 감독님이 그런 것에 연연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저는 오디션을 볼 때도 오히려 '청춘기록' 때문에 안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며 "감독님한테는 제가 신선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저를 뽑으셨길래 그 이유를 여쭸더니 '그냥 네가 내는 느낌이 손명오와 잘 어울렸어'라고 해주셨다. 좋은 뜻이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건우는 다른 남자 캐릭터인 주여정(이도현), 하도영(정성일), 전재준(박성훈) 등이 출연을 확정 지은 뒤 마지막쯤에 합류했다. 이에 대해 그는 "처음부터 저는 명오 역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다른 역할들은 이미 배우들이 정해져 있던 상황이었고, 저는 문을 닫고 막차를 탔다. 많은 배우분들이 '명오'라는 인물의 오디션을 보셨다고 하더라. 저는 끝물에 봤다"고 설명했다.

'더 글로리' 속 손명오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단어는 '양아치'다. 비열하고, 천박하고, 야비한 인물이다. 가해자 5인방 중 어렸을 때부터 보이지 않는 서열로 비열하고 비굴한 민낯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 손명오의 화룡점정을 찍은 것은 바로 스타일링이다. 손명오는 길게 기른 머리를 하나로 묶고, 옆머리엔 길게 스크래치를 냈다. 이에 대해 김건우는 "제 아이디어는 하나도 없었다. 제가 아이디어를 내기 전부터 많은 시안들이 완벽에 가까울 정도였다"며 "타투부터 묶는 머리, 스크래치 한 줄 모두 디테일하게 짜주셨기 때문에 따라가기만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김건우는 손명오의 이른바 '양아미(양아치+美)'를 살기기 위해 대사와 행동의 맛을 살렸다. 김건우는 "대사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직접적이고 1차원적인 방법이라고 한다면, 제가 생각하는 캐릭터 고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건 행동,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다"며 "소주를 글라스에 따라서 마시는 장면이나, 사탕을 깨물어 먹거나, 주여정 선생님과 마주칠 때 양아치 같은 걸음걸이 등 그런 부분을 많이 연구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또한 김건우는 "(가해자 중) 서열이 낮기 때문에 더 그렇지 않은 척했던 것 같다. 빈 수레가 요란한 느낌으로 더 당당하게 연기했다"며 "가진 자들은 조용할 때가 있다. 하지만 전 가진 게 없어서 더 당당한 척하고, 더 잘 사는 척하고, 센 척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부분들을 연기에 녹여냈다"고 이야기했다.

대중이 화면을 통해 만난 완성된 손명오의 뒷모습엔 '배우 김건우'가 보낸 고뇌의 시간들이 있었다. 김건우는 "사실 매 작품이 다 힘들다. 캐릭터를 만드는 초반 작업 땐 저를 많이 괴롭히는 타입"이라며 "그 질감을 내려고 노력하는 게 힘든 것 같다. 이번에 명오도 그랬다. 어딘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지저분함을 내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놨다.

김건우는 그동안 드라마 '쌈, 마이웨이' '청춘기록' 등에서 인상 깊은 악역 연기를 보여줬다. 이어 '더 글로리'에서 또 한 번 악역으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이에 대해 김건우는 "악역도 한 드라마에서 너무 중요한 캐릭터다. 극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없어선 안 될 역할이라 생각한다"며 "제가 매력을 느끼고, 제가 좋아하는 건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더 글로리'를 만나기 직전까지 김건우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앞서 좋은 작품들을 만났지만, 그 행운이 계속해서 이어지진 않았다. 이에 김건우는 무엇보다 사랑했던 연기를 그만둘 고민까지 했었다고.

김건우는 "'더 글로리'를 만나기 전에 제가 연기를 쉰 지 오래됐었고, 최종 관문에서 여러 차례 떨어지면서 선택을 받지 못하는 순간들이 오래됐다. 그래서 이걸 계속해야 하는 게 맞는지 생각이 들었다"며 "그 찰나에 '더 글로리'를 만나게 됐다. 다시 한번 열정을 피워서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 감사한 마음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수많은 고배의 순간들을 떠올리던 김건우는 "기대감을 좀 내려놓으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부분도 있었다. 항상 떨어져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니까 그게 끊을 수 없는 중독성 같았다"며 "때론 높은 관문에서 저와 너무나 다르게 인지도 높은 배우들과 만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연기를) 끊을 수 없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와 함께 김건우는 "'더 글로리'는 저에게 제목 그 자체처럼 영광으로 기억될 것 같다"면서도 "동시에 저에겐 넘어야 할 산이고, 깨야 될 퀘스트 같다. 몇 년 간 '김탁수'로 불렸으니, 한동안은 '손명오'로 불릴 것 같다. 또 언젠가 제가 만들어낼 좋은 캐릭터로 깰 수 있을까 기분 좋은 의구심과 동기부여가 된다"고 인사했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