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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공의 미학'...돌아온 류현진에게 모이어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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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토론토 블루제이스 류현진이 21일(이하 한국시간) 21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그레이트아메리칸볼파크에서 열린 신시내티 레즈와 원정경기에서 역투를 펼치고 있다. 사진=AFPBB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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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과거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제이미 모이어(61)라는 왼손투수가 있었다. 1962년생인 모이어는 1986년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 뒤 2012년 콜로라도 로키스를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무려 25년간 MLB 마운드를 누볐다. 무려 49살까지 활약했다. 49세 179일이라는 메이저리그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도 그가 보유하고 있다.

통산 269승(209패)을 거둔 모이어는 빠른공을 던지는 투수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빠른공 구속은 한국 프로야구 기준으로도 한참 느린 130km대 초중반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마구같은 변화구를 던진 것도 아니었다.

모이어의 강점은 완벽한 제구력, 그리고 완급조절이었다. 다양한 구속변화로 타자들의 배트를 헛돌게 했다. 타이밍을 뺏기 위해 때론 황당하게 느린 커브도 사용했다. 물론 이같이 던지기 위해선 완벽한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가 필수다. 클리블랜드 시절 동료였던 찰스 내기는 “느린 공, 더 느린 공, 아주 느린 공이 모이어의 주무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류현진의 투구를 보면 모이어의 향기가 난다. 지난해 팔꿈치 인대접합수술(토미존서저리)을 받고 돌아온 류현진을 보면 구속에 초월한 듯 보인다. 스피드건에 찍히는 빠른공 구속은 140km대 초반이지만 숫자로 찍히지 않는 관록과 여유는 160km대 강속구다.

류현진은 지난 21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그레이트아메리칸볼파크에서 열린 신시내티 레즈와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을 4피안타 2실점(비자책점) 1볼넷으로 막고 토론토의 10-3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 14일 시카고 컵스전에서 5이닝 2실점(비자책)으로 팔꿈치 수술 이후 첫 승을 거둔 데 이어 2연승을 달렸다. 자신의 빅리그 통산 77번째 승리였다. 야수들은 연속 실책을 범하기는 했지만 대신 화끈한 불방망이로 류현진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복귀 후 4차례 등판 가운데 가장 편안한 승리였다. 이날 호투로 류현진은 시즌 성적 2승 1패를 기록했다. 3경기 연속 비자책 행진으로 평균자책점은 2.57에서 1.89까지 낮췄다.

류현진의 강점은 그날 경기에 따라 주무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지난 컵스전에선 체인지업이 위력을 발휘했다. 이날 필살기는 느린 커브였다. 100km대의 ‘아리랑 커브’로 신시내티 타자들 허를 찔렀다.

이날 류현진의 빠른공 최고 구속은 89.6마일(약 144km)에 불과했다. 최고 구속이 90마일에도 미치지 못한 것은 복귀 후 4경기 가운데 처음이었다. 평균 구속은 시속 87.4마일(약 141㎞)이었다. 한국 프로야구 기준으로 놓고 보더라도 평균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류현진에게 구속은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다양한 변화구로 이를 극복했다. 이날 류현진은 총 83개의 공을 던졌다. 이 가운데 직구는 38개에 불과했다. 대신 체인지업(18개), 커브(16개), 컷패스트볼(11개) 등 변화구를 최대한 활용했다. 상대팀 선발투수인 헌터 그린과도 비교가 됐다. 그린은 최고 구속 100.3마일(약 161km)에 이르는 강속구를 던지고도 3이닝 10피안타(5홈런) 3볼넷 9실점으로 난타당했다.

특히 류현진이 5회말 2사 1, 2루 위기에서 ‘괴물 신인’ 엘리 데 라 크루스를 3구 삼진으로 잡는 모습은 이날 경기의 백미였다. 볼카운트 2스트라이크에서 3구째 크루스를 꼼짝 못하게 만든 공은 107km짜리 느린 커브였다. 류현진은 이날 탈삼진 7개 가운데 3개를 커브로 잡았다. 비록 140km대 초반의 ‘느린’ 빠른공이지만 ‘더 느린’ 커브와 조화를 이루니 타자들 입장에선 마치 160km대 강속구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현지 언론도 류현진의 호투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캐나다 지역지 토론토 스타의 마이크 윌너 기자는 “류현진은 최근 14이닝 연속 자책점 없이 호투하고 있다”며 “14개월 이상 재활한 선수가 이렇게 좋은 제구력과 구위를 펼치는 것이 놀랍다. 보통 수술 받은 선수들은 제구력이 가장 늦게 돌아온다”고 밝혔다. 신시내티 지역지 인콰이어러의 찰리 골드스미스 기자는 “류현진은 70마일대(약 110㎞대) 커브를 던져 신시내티 타자들을 제압했다”라고 소개했다.

토론토 구단은 경기 직후 구단 SNS를 통해 류현진의 투구 사진과 탈삼진 영상을 편집해 소개하면서 요즘 유행어인 ‘류현진 폼 미쳤다’라는 표현을 한글로 올리기도 했다.

류현진은 경기 후 현지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오늘 던진 커브에 몇 점을 주고 싶나’라는 질문에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고 답했다. 그는 “상대가 매우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느린 커브를 사용했다”며 “우리 팀 야수들이 어느 정도의 점수를 뽑아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공을 던졌다”고 말했다.

존 슈나이더 토론토 감독도 류현진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류현진은 상대 선수들의 공격적인 성향을 잘 이용했다”며 “정말, 정말 잘했다”고 칭찬했다.

이날 지명타자로 나서 연타석 홈런을 친 팀 동료 브랜던 벨트는 “류현진은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선수”라며 “그는 어떻게 공을 던져야 하는지 알고 빠르게 공을 던진다. 그와 함께 경기를 치르는 건 정말 재밌는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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