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스럽게도 새해 한국을 둘러싼 환경은 녹록지 않다. 국내 정치는 물론 경제, 안보, 외교와 통상 등 각 부문에서 우리를 시험할 시련이 숱하게 도사리고 있어서다. 우선 국내 정치로 시야를 좁혀 보면 이재명 정부의 국정 최우선 드라이브와 국민 염원 사이의 괴리, 그리고 더 심각해진 정치 양극화가 문제다. 이재명 정부에 국민이 바란 1순위 과제는 ‘경제위기 극복’이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대선 직후인 작년 6월 4~7일 진행한 웹 조사 결과다. 경제위기 극복을 1순위로 꼽은 답은 47%로 2순위(16%)의 ‘계엄 사태 진상 규명 및 처벌’, 3순위(15%)의 ‘국민 통합’을 크게 웃돌았다. 하지만 11월 28~29일 한국갤럽의 여론 조사는 이런 기대가 완전히 어긋났음을 보여준다. 조사에서 ‘계엄 이후 정치적으로 더 양극화됐다’고 답한 비율은 무려 77%였다. 응답자들은 비상계엄의 후유증으로 ‘정치·사회적 분열 심화’(27%)를 첫손가락에 꼽았다. 정국 혼란의 불은 꺼졌지만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음을 보여준 증거다.
미국발 관세 전쟁의 태풍 속에서도 지난해 경제는 반도체·자동차·조선·방산 등을 중심으로 우리 기업들의 투혼이 한껏 빛났다. 대미 수출이 일부 흔들렸지만 반도체, 자동차의 맹활약으로 전체 수출은 사상 최대치인 7000억달러 고지에 올라섰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요동치는 환율과 불투명한 글로벌 경기가 밖으로부터의 시련이라면 안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기업 옥죄기법과 강성 노동계의 압박, 내수 침체와 정부의 친노동정책이 기업들을 궁지로 내몰고 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달 22일 1480.1원으로 마감해 비상계엄 직후인 2024년 12월 27일의 1487원대에 근접했다. 연평균 환율은 지난달 18일 기준 1420원으로 최근 3년 평균 1360원을 훨씬 웃돌았다. 환율이 1500원을 넘은 것은 외환 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두 차례뿐이었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외부 믿음 자체에 균열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다. 고환율이 고착화하면 금융 시장과 대외 신뢰도에 큰 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실용적 시장주의를 표방한다. 먹고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먹사니즘’을 강조한다. 이 정부 출범 후 대통령·여당과 재계의 회동만도 20차례 이상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판이했다. 1, 2차 상법 개정안부터 노란봉투법까지 기업을 옥조이는 법안들이 여당 주도로 잇따라 국회를 통과했다. 주 4.5일 근로제와 정년 연장 등도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제조업 상용 근로자의 임금 총액이 2024년 기준 일본과 대만보다 26~28% 높은 현실에서 기업 고통이 더 가중될 것은 불문가지다. 반도체는 2047년까지 700조원 이상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업계가 애타게 호소한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은 반도체 특별법안에서도 빠졌다.
잠재성장률 1%대의 한국이 기업을 신바람나게 뛰게 하려면 답을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지난해 7.3%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한 대만을 엿보기만 해도 된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는 정치 갈등이 아무리 커도 어느 대만 정권도 반기업 정책을 사용하지 않고 기업 투자를 적극 지원한 데서 성공 비결을 찾고 있다. 친성장·친시장·친기업 정책이 대만을 경제 우등생으로 밀어 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친기업 메시지가 줄을 이어도 기업들 앞의 현실은 냉엄하다. 의례적 찬사 대신 수고를 덜어주고, 등을 다독여줄 정부와 정치권의 실천 의지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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