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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연인' 의상감독 "고증+리얼리티 살려 수천벌…길채 엔딩 붉은옷, 이유있었죠"[인터뷰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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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상업적으로 예쁘게 소비되는 한복이 아니라, 자연의 색에 동화되는 의상이 저의 기조였어요."

이진희 의상감독은 올해 MBC 최고의 화제작이자 인기작인 드라마 '연인'의 숨은 공로자다. 병자호란을 마주한 두 연인 장현과 길채의 험난하고도 애틋했던 러브스토리로 안방극장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이 드라마는 '보는 맛'도 각별한 웰메이드 사극이었다. 21부에 이르는 긴 호흡 내내 의상을 책임진 이가 바로 이진희 의상감독이다.

남궁민의 장현, 안은진의 길채는 물론이고 여러 주변인물과 병사들·민초들의 의상까지, 수천벌의 옷이 모두 그녀의 손을 거쳐 태어났다. 김성용 감독이 "최고의 전문가를 모셔서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드렸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을 정도다.

"1년 내내 죽으라고 일한 것 같아요. '연인'은 그저 콘텐츠로만 소비하면 안 되는 이야기이기도 했죠. 픽션이지만 우리의 역사, 그 중에서도 아픈 역사에 입힌 이야기니까. 고증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성장해가는 캐릭터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했고 현 한예종 무대미술과 교수이기도 한 이진희 의상감독은 드라마 '하얀거탑'(2007)부터 올 여름 히트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까지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 공연을 세공했다. 그 중에서도 여러 사극에서 그녀의 의상이 빛을 발했는데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2010), '구르미 그린 달빛'(2016)의 의상은 그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아직까지 회자된다. 전세계에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 것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이다.

'연인'은 그런 이진희 의상감독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저 아름다운 의상을 내보이기보다는 그 시절 사람들이 진짜 입었을 법한 의상을 고증하고, 드라마틱한 변화를 거듭하는 길채의 성장을 의상에 녹였다. 일년 내내 찍은 드라마의 사계절을, 그 속에서 성숙해가는 길채의 성장을 컬러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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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화사했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 '애기씨' 길채가 살아가던 평화로운 능군리는 초록 꽃밭에 알록달록한 꽃이 피어있듯, 화사하고도 다채로운 컬러가 눈부시게 표현됐다. 길채 또한 고운 빨강치마에 분홍 저고리를 입고서 곳곳을 누볐다. "마을의 소박한 분위기와 함께 처녀들의 생명력, 생동감을 드러내고자 했어요. 그래야 전쟁이 왔을 때 대비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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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을 자연색과 동화시키는 것이 이진희 의상감독의 기조였다. 장현과 길채가 첫 입맞춤을 한 청보리밭에서, 그녀는 길채에게 노랑 저고리와 초록 치마를 입혔다. 더군다나 장현의 두루마기는 푸른 색. 현장에선 색감이 너무 비슷하다며 볼멘소리가 나왔다. 부랴부랴 빨간 치마를 준비하기도 했지만, 원안대로 입고 찍은 결과물이 베스트였다. "현장과 잘 소통해서 계획된 의상을 입힐 수 있었어요. 녹색 치마에 형광 안료를 조금 넣어서 자연색보다 살 수 있도록 했거든요. 충분히 잘 보일테니 일단 입혀보시라고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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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벌어진 뒤엔 인물들의 의상을 무채색으로 과감하게 바꿨다. "전쟁의 무게감이나 상흔을 무채색으로 누르며 가면 좋겠다 해서, 흰색으로 출발해 점점 검은색이 묻어간다. 겨울의 혹독함-서늘함과도 맞았다"는 것이 이 의상감독의 설명이다.

흰 눈 속의 고된 피난길. 이진희 감독은 눈밭의 길채에게 가차없이 흰색 두루마기를 입혔다. 주인공에게는 가능하면 튀는 컬러를 입혀 돋보이게 하는 여느 사극 드라마 의상과는 전혀 다른 노선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다른 디테일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 누빔은 겉감이 무명이고 안감이 실크예요. 보통은 실크를 바깥에 대잖아요. 하지만 실제 사료에서 가장 많이 입은 건 실크를 안에, 무명을 겉에 대는 거죠. 실크가 보온성이 좋고 무명이 바람을 막아주니까 훨씬 따뜻하게 입을 수 있어요. 또 백색을 많이 썼는데, 시청자들이 생경하고 낯설어 하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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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 등장한 신의 한 수가 '볼끼'라고 불리는 길채의 귀마개다. 당시 쓰이던 복식을 캐릭터와 안은진을 이어주는 장치로 활용했다. 이 의상감독은 "어린아이 같던 길채의 사랑스러운 느낌과 겨울의 느낌을 안은진과 연결시킨 장치"라며 "어느 순간 그것이 벗겨지면서 길채의 내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겨울 느낌을 주려고 푸른색, 푸른 조끼를 덧입혔다"고 설명했다. 방송이 나간 뒤 해외에서 '볼끼'에 대해 묻는 DM이 엄청나게 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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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에 끌려간 길채가 고충을 겪다다 장현과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길채에게 청록색 옷을 입혔다. 자연스러운 녹색이라기보다는 어딘지 인공미가 느껴지는 색이다. 이진희 의상감독은 "자연빛의 느낌을 받지 못해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느끼는 데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청나라 옷들이 너무 화려하니까 그 사이에서 길채가 묻히지 않고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불안정해 보이는 느낌이었으면 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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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에서 길채에게 붉은 두루마기를 입도록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풍요와 성숙의 가을을 상징한느 컬러다. 이진희 의상감독은 "단풍이 농익은 듯한 색채"를 선택한 결과물이라 했다. 명도와 채도 모두 높은 빨강 옷을 입었던 길채의 시작과 비교하면 같은 빨강이라도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캐릭터를 입듯 변화하는 의상을 입어낸 안은진도 안은진이지만, 그 의견을 존중하고 따라준 김성용 감독도 완성도 높은 의상에 큰 몫을 했다고 이 의상감독은 귀띔했다.

'연인'의 의상은 들여다볼수록 절묘하다. 디자인을 고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재까지 고증해 낸 집념과 정성 덕이다.

"보통은 '화섬'이라는 가짜 실크를 안감으로 쓰는데 이번엔 안감도 실크를 썼어요. 그래서 옷이 가볍고 단단하면서도 편하게 흐르죠. 뭐에 홀렸는지, 다들 이러다 파산하는 거아니냐, 괜찮겠냐고 걱정할 정도였죠. 하지만 17세기 고증을 그대로 한 '연인'은 저고리가 기장이 길고 치마도 그대로 뚝 떨어져요. 생활감까지 안 나면 안되니까 재료까지 그 당시 썼을 법한 것들을 썼어요. 이번에야말로 사계절 의상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저 보여주기보다 실제 있을법한 리얼리티에 집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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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민이 연기한 장현의 의상에도 그런 디테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올 하나하나가 보이는 자연 소재가 겹겹이 쌓여 인물과 의상의 레이어를 만들어냈다. 남궁민은 이를 멋들어지게 소화해내며 복잡다단한 장현이란 인물을 창조했다.

"장현은 굉장히 입체적인 캐릭터이면서도 무게중심을 잡고 가죠. 무게감이 있어야 하는 캐릭터라 전통 소재를 많이 썼어요. 그간 비단 공장이 있는 진주를 왔다갔다 하며 모은 골동품 원단을 이번에 다 풀다시피 했어요. 재질이 살아있죠."

전통을 따라 세 겹으로 제대로 만든 단단한 의상은 장현의 당당하고도 꼿꼿한 캐릭터를 함께 드러냈다. 동시에 포위에 포를 입는 식으로 풍성한 레이어드를 더해 우아한 힘을 살렸다. 여기에 고증을 놓치지 않았다. 고증 상으로는 활을 쏠 때 주로 입는 철릭(융복)을 입혔는데, 매듭 단추로 소매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다. 장현의 도포에 이런 사냥복의 디테일을 차용해, "부채질을 하다가도 당장 말을 타고 뛰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을 표현했다. 이런 세세한 하나하나가 모여 장현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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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미' 박보검씨는 목이 길어서 깃을 더 올렸어요. 그런데 허리선이 낮으면 답답하니 허리선을 올리는 등 장점을 부각하게 디자인했어요. 복식을 지키면서도 조금씩 변화를 주는 디테일을 엄청 연구하죠. '구르미'나 '성균관 스캔들'은 정말 예쁘게 보이려 라인을 올리고 내리고 했다면, '연인'은 고증에 있는 걸 가져와 사실적인 무게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이진희 의상감독은 특히 '소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물성'에서 나오는 힘이 엄청나다"는 게 그의 지론. 집착하다시피 원단을 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드라마 3~4편에 해당하는 '연인'의 살인적인 작업량 속에서도 KTX를 타고 원단을 찾아다녔고, 영화 '안시성' 때는 인도까지 가서 원단을 구하기도 했다. 아픈 역사를 다룬 작품을 그저 '소비'해선 안된다는 책임감도 있었단다.

그녀의 집념과 생고생이 아름다운 결과물로 완성된 '연인'은 그래서 더 소중한 작품이다. 반응이 뜨거워, 내년 1월25일에는 '연인'의 의상을 한꺼번에 선보이는 전시회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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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알리고 싶은 그 시기마다의 가치가 있어요. 블랙핑크 의상이든, 퓨전으로 예쁘게 하시는 분들이 많아졌잖아요. 이젠 한복의 전통에 그대로 관심을 둘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문화열등감 없이 ,한국 콘텐츠가 세계를 선도하는 시대에 살기에 선입견없이 전통을 바라보는 것 같아요. '연인'의 의상이 전통으로 제대로 간 것이 반향이 있고 관김을 보여주시고. 심지어 낯설다는 디자인 잘 하셨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만큼 전통이 낯설고, 그만큼 더 집중해 보셨던 것 같아요. '성균관 스캔들'을 보고 예쁜 한복에 관심을 가지셨듯, 이번에도 기여하지 않았을까요. 스스로 토닥토닥 하며 보람을 느낍니다. 한복이 너무 예쁘다고 MZ세대 친구들이 좋아해주니까 '작은 역할을 했구나' 더 보람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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