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등 식사 시간에 탁구치러 가자 손흥민이 제지하는 과정서 충돌
이강인 멱살 잡은 손흥민 손가락 탈구…이강인 '주먹질'은 손흥민이 피해
전술도 없고 선수 관리도 못한 클린스만 경질 불가피…15일 전력강화위 열려
하나되지 못했던 대표팀 |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클린스만호에는 전술만 없는 게 아니었다. 대표팀의 붉은 유니폼을 향한 선수들의 '로열티'도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 대표팀은 지난 10일 폐막한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요르단에 0-2 충격패를 당하며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대회 내내 졸전을 거듭한 데다 요르단과 경기에서는 유효슈팅을 단 하나도 기록하지 못하는 등 무기력한 모습만 보인 클린스만호를 향한 비난 여론이 크게 일었다.
특히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까지 받은 선수들을 데리고 최악의 경기 내용을 보여준 클린스만 감독에 대해서는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런 와중에 영국 대중지 더선이 14일 한국 대표팀 내 심각한 불협화음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보도를 했다.
하나되지 못했던 대표팀 |
더선 보도와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해보면, 사건은 요르단전 바로 전날인 현지시간 5일 저녁 식사시간에 일어났다.
대표팀에서 경기 전날 모두가 함께하는 만찬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결전을 앞두고 화합하며 '원팀'임을 확인하는 자리다.
그런데 이날 이강인(파리 생제르맹)과 설영우(울산), 정우영(슈투트가르트) 등 대표팀에서 어린 축에 속하는 선수들 몇몇이 저녁 식사를 별도로 일찍 마쳤다.
그러고는 탁구를 치러 갔다.
살짝 늦게 저녁을 먹기 시작한 선수들이 밥을 먹는데 이강인 등이 시끌벅적하게 탁구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이건 아니다' 싶었던 주장 손흥민(토트넘)이 제지하려 했지만, 이들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하나되지 못 했던 대표팀 |
격분한 손흥민이 이강인의 멱살을 잡았다. 이강인은 주먹질로 맞대응했는데 이는 손흥민이 피했다.
이후 고참급 선수들은 클린스만 감독을 찾아가 요르단전에 이강인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은 이강인을 제외하지 않았다. 이강인은 부임 초반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던 클린스만호가 지난해 하반기 5연승 반전을 이루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황태자'였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강인과 손흥민 등 고참 선수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던 터였다. 이런 가운데 '탁구 사건'이 두 선수의 감정을 폭발시킨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마침표의 시간 |
요르단전은 이런 심각한 갈등 속에 킥오프했다. 손흥민과 이강인은 앞선 조별리그 3경기, 토너먼트 2경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요르단전에서도 90분 내내 각자 따로 놀았다.
경기 뒤 믹스트존에서 손흥민은 "내가 앞으로 대표팀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면서 "감독님께서 저를 더 이상 생각 안 하실 수도 있고 앞으로의 미래는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탁구 사건'과 이강인을 계속 신임한 클린스만 감독의 선택을 놓고 보면, 손흥민이 어떤 맥락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다만, 대표팀 내 갈등이 이강인과 손흥민 사이에만 있었던 건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훈련장에서 그룹을 지어 훈련할 때 선수들은 같은 무리끼리 어울렸다.
쓰라린 상처로 남은 아시안컵 |
이강인·설영우·정우영·오현규(셀틱)·김지수(브렌트퍼드) 등 어린 선수들, 손흥민·김진수(전북)·김영권(울산)·이재성(마인츠) 등 고참급 선수들, 그리고 황희찬(울버햄프턴)·황인범(즈베즈다)·김민재(뮌헨) 등 1996년생들이 주축이 된 그룹이 각자 자기들끼리만 공을 주고받았다.
조별리그 1차전을 대비한 훈련 때부터 마지막 요르단전 훈련 때까지, 각 그룹의 면면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토너먼트 경기를 앞둔 훈련에서 한 해외파 공격수가 자신에게 강하게 몸싸움을 걸어오는 국내파 수비수에게 불만을 품고 공을 강하게 차며 화풀이하는 장면이 취재진에 포착됐다.
훈련하는 대표팀 |
지난해 11월 중국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원정 경기를 마친 뒤 손흥민, 김민재, 황희찬, 이강인 등 유럽파 선수들이 한국에 일찍 돌아가기 위해 사비로 전세기를 임대해 귀국하기도 했다.
원정 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개인행동'을 한 셈이다. 대표팀, 대한축구협회가 '허락'한 일이었다지만, 국내파 선수들로써는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
과거 대표팀을 이끌었던 한 지도자는 "국내파 선수들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그런 건 (해외파 선수들이) 알아서 자제해야 했다"면서 "이런 부분은 지도자들이 정리를 좀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걸 다 마음대로 하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클린스만 감독 '난감' |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에도, 올해 아시안컵에서도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팀은 '원팀'으로 뭉치기는커녕, '사분오열'된 채로 아시안컵에 임했다. 64년 만의 우승 목표는 애초 달성이 불가능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술 부재'로 비판받는 와중에 선수단 관리도 제대로 못 한 실책이 명백하게 드러나 버렸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다 보니 선수들 심리 장악에 능하다는 게 클린스만 감독이 그나마 받던 긍정적인 평가였는데, 이 또한 무색해졌다.
어수선한 축구협회 |
사퇴든 경질이든, 한국 축구와 클린스만 감독의 결별은 피할 수 없어진 분위기다.
축구협회는 클린스만호의 카타르 아시안컵 성과를 평가하는 전력강화위원회를 15일 연다.
정몽규 회장 등 축구협회 집행부는 전력강화위원회의 평가를 참고해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만약 새 감독 체제가 들어선다고 해도 대표팀은 선수들 간 갈등의 불씨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로 3월 A매치 기간(18∼26일)을 맞이한다.
대표팀은 3월에 태국을 상대로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3, 4차전을 소화한다. 동남아 맹주 태국은 2차 예선 상대 팀 중 가장 껄끄러운 팀으로 꼽힌다.
a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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