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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김인오의 현장+] 숫자 '15'의 불편함, '프로암 회장' 오명의 씁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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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KLPG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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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 딱 15개 뿐이다. 직접 세어봤다. 혹시나 지나칠까 메모까지 하면서 꼼꼼히 체크했다. 대상이 96개나 돼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사진 등 기록으로 찾기 어려울 때는 유선 전화를 이용했다. 장시간 노동의 결과물이 바로 15개다. 얼추 예상은 했지만 참으로 놀라운 개수다.

도대체 뭐길래 그리도 에너지를 쏟았냐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2021시즌부터 5개 대회가 진행된 2024시즌까지 치러진 대회 개수가 96개다. 그 중 김정태 KLPGA 회장은 15개 대회 시상식에 참석했다.

취임 첫 해인 2021시즌에는 29개 대회 중 8개 대회 시상식을 찾았다. 이후는 확 줄었다. 2022시즌과 2023시즌은 각각 3개 대회에 불과했다. 올 시즌은 5개 대회 중 싱가포르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 하나금융그룹 싱가포르 여자오픈이 유일하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 하나. 8개 대회나 시상식에 참석했던 2021시즌은 김정태 회장이 하나금융그룹 회장을 겸하고 있을 때다. 바쁜 시간을 쪼개 8개 대회 시상식을 소화했다. 반면 하나금융그룹 회장에서 물러나, 자연인이나 다름 없었던 2022시즌부터는 놀랍게도 참석률이 10% 수준으로 줄었다. 올해는 아직까지 국내 대회 시상식에 자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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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PGA 투어 2024시즌 5번째 대회였던 넥센 세인트나인 마스터즈 시상식 장면. 김정태 회장을 대신해 김순희 수석부회장이 시상식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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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PGA 회장이 시상식 자리를 자주 비운 게 문제냐고? 문제라고 하지 않겠다. 잘못이라 지적하고 싶지도 않다. KLPGA 규정에 '회장이 시상식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라는 문구가 없기 때문에 절차상의 하자도 아니다.

프로암 행사는 대회 주최측이 자신들의 고객을 모시는 비즈니스의 장이라면, 시상식은 KLPGA 투어의 주축인 선수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후원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중요한 행사다. 경중을 따질 순 없지만 시상식에 무게감이 있는 건 대부분 인정하는 사실이다. 프로암 행사는 기록되지 않지만 시상식은 KLPGA가 존재할 때까지는 역사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숫자 '15'에 대해 골프계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KLPGA 투어를 잘 아는 한 인사는 "김정태 회장을 시상식에서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대개 수석부회장이 참석했기 때문에 그게 더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그런데 100개 가까운 대회 중 15개 대회에만 참석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한편으로 놀랄 일도 아니다"며 허탈해했다.

대회를 후원하는 주최측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회장이나 대표 이사 등 최고 경영자가 시상식에 참석한다. 하지만 김정태 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전에 통보는 받고 있지만 가장 빛나야 할 시상식에 KLPGA 수장이 불참하는 것은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KLPGA 회원으로 투어 활동을 갓 시작한 한 선수의 한 부모는 "회장님이 시상식은 물론 대회 기간에도 선수들을 격려하는 '우리 회장님'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래서 이유가 궁금했다. KLPGA의 한 관계자는 "전임 회장 시절에도 시상식 참석률이 낮았다. 자연스럽게 관례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당황스럽고도 모호한 답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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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개막한 크리스에프앤씨 KLPGA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이다연을 뒤따르는 갤러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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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진 KLPGA 사무총장은 "투어 규모가 커지면서 집행부 임원들의 역할을 분담(업무분장)하다보니 부득이하게 시상식 참석률이 낮아진 것이다. 임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태 회장은 주어진 역할 분담에 충실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특정 역할에만 편중된 점은 의문 부호로 남는다. 김정태 회장은 임기 4년 중 3년 이상을 시상식 참석 '역할'에서 소외됐다. 대신, 같은 기간에 진행된 다수의 프로암 행사에서는 손님을 대접하는 협회장 '역할'을 수행했다. 항간에는 '프로암 회장님'이라는 비아냥스런, 그래서 가슴 한켠이 아리는 별칭도 들린다. 물론 회장의 개인 의지는 아니었을 거라 믿는다. 그렇다면 '로테이션'이 상식인 역할 분담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나눈 누군가, 혹은 그들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소속 여자부 경기로 출발한 KLPGA 투어는 매년 역대 최대 규모를 경신하고 있다. KPGA는 이미 넘어선지 오래이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와 견주어도 될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매년 스타 선수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투어의 미래도 밝은 게 사실이다.

25일 크리스에프앤씨 KLPGA 챔피언십이 개막했다. 과거 'KLPGA 선수권대회'로 불렸던 여자프로골프협회의 큰 잔치이자 시즌 첫 메이저대회다. 김정태 회장은 취임 후 3년 동안 이 대회 시상식만큼은 빠짐없이 참석했다. 올해 역시 자리를 빛낼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1년 3월, 김정태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KLPGA의 한 가족이 됐음에 무한한 영광과 무거운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임기 마지막 해, 그리고 숫자 15가 16으로 바뀌는 순간을 시작으로 무거운 책임감이 있는 '역할'로의 변화를 기대해본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속담이 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세운 탑처럼 정성으로 이룬 일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대로 '공든 탑이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는 속담도 있다. 작은 실수나 방심이 일을 망친다는 뜻이다. 최근 여러 구설수로 시끄러운 KLPGA가 '개미 구멍', 혹은 '개미'로 인해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사진=MHN스포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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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진행된 크리스에프앤씨 KLPGA 챔피언십 공식 포토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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