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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실수한 초등선수에 “이 XX야, 그것도 못해?”…한국축구 망치는 지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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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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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한국 축구는 총체적 위기다. 카타르아시안컵 졸전, 대표팀 내 분열과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등은 점점 뒤처지는 한국 축구의 경쟁력과 협회 행정력의 수준을 드러냈다. 한때 라이벌이었던 일본과의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한국 축구의 혁신을 위한 진단과 대안을 5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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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인마, 코미디 하냐? 공도 못 봐?” (5월20일 효창운동장)

“혼자 하니? 네 문제가 그거야 이 XX야!” (5월27일 효창운동장)

최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2024 전국 초등 저학년(5학년 이하) 축구리그 서울권역 경기 도중 나온 일부 지도자들의 듣기 거북한 발언이다. 아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거친 말을 한 지도자는 전반 뒤 휴식시간에도 아이들을 세워놓고 훈계했다. 고함지르기, 욕설하기, 감정 드러내기 등은 유소년 지도자의 금기다. C, D급 지도자 자격증을 딸 때, 교육과정에서 귀가 닳도록 듣는 말이다. 현장에서는 달라진다.

걷어내기만 한 선수는 대표팀 돼도 걷어내기만

대한축구협회가 유소년 경기에서 일절 간섭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겪을 트라우마 때문이다. 한 축구인은 “지도자가 급한 상황에서 볼 걷어내라고 소리치면, 이 아이는 A대표팀에 가서도 걷어내기만 한다. 골 먹더라도 시도 좋았다고 말해주고, 혼내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감을 갖고 성장한다”고 말했다

지시와 이행이 반복되면 후유증은 청소년기에 찾아온다. 한겨레 분데스리가 통신원인 마쿠스 한은 “한국의 4~6학년 아이들을 이끌고 유럽 유소년 캠프에 가면 우리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이긴다. 3년 뒤 다시 나가서 붙으면 이번엔 유럽 유소년팀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기교에서 앞섰을지 몰라도, 기본기 교육과 시스템의 차이가 불러온 역전 현상이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유소년이라도 1년 단위의 연령별 리그가 이뤄지고, 그 안에서도 수준이 나뉘어 강대강 대결이 이뤄진다. 때로는 월반해서 경쟁하기 때문에 매 경기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110%, 120% 발휘해야 살아남는”(마쿠스 한) 고강도 단련이 이뤄진다.

한국 유소년 3년 지나면 유럽에 상대 안 돼

반면 한국은 12살, 15살, 18살 이하 등 3년 터울로 유스팀이 구성돼 중학 1~2학년이 뛰기 어렵고, 상대하는 팀의 전력 기복이 심해 집중력이 떨어진다. 성적 압박을 받는 지도자 아래서 조련된 아이들은 나중에 조로현상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대한축구협회 누리집의 연령별 대표팀 전적 가운데, 한-일전을 보자. 지난해 한국의 U-14 대표팀은 일본과 4차례 만나 2승1무1패의 우위를 보였다. 하지만 한국 U-17 대표팀은 2023년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패배했고(0-3), 동아시아 U-15 챔피언십에서도 일본에 0-4로 졌다. 23살 이하의 올림픽 대표팀이 올해 카타르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일본을 1-0으로 이겼지만, 고비인 8강에서 탈락했고, 일본이 대회 우승을 차지한 것은 벌어진 실력 차를 보여준다.

최성환 대한축구협회 전임강사는 온라인 보수교육 강좌에서 “유럽의 유소년팀을 지켜봤지만, 한국 지도자들이 열성적이고, 기술적으로 잘 가르친다. 뒤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효창운동장에서 1주일 단위로 지켜본 유소년 축구 현장에서도 그런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지도자가 선수들을 격려하며 소통하려고 애썼다.

더 잘할 여지는 분명히 있다. 한 코치는 골키퍼를 개인 지도하면서 “공 끝까지 안 보고 하면 계속한다”며 윽박질렀는데, 아이가 ‘헉헉’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관중석까지 들렸다. 아이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뭐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라며 질책하는 지도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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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의 유소년 교육 지침은 다른 종목에 비해 틀이 잡혀 있지만 갈길은 멀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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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안하면 절대 배울 수 없는 게 빌드업과 득점

백영철 대한축구협회 전임강사는 “유소년이라도 혼날 때가 있다.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등 태도나 열정에 문제가 있다면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기능 부족에 대해서는 지도자가 절대 화내면 안 된다”고 했다. “아이들은 실수를 통해서 배우고, 빌드업과 득점 과정에서는 실수하지 않고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유소년 축구 발전을 위해 애쓴 마이클 뮐러 대한축구협회 전임 전력강화위원장은 지난 5년간 유소년 팀 육성의 초점을 팀이 아니라 ‘개인’에 두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성적 압박 탓인지 지도자들은 유소년 때부터 덩치 좋은 아이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15~18살에 이르면 체격은 평균에 수렴함에도, 당장 성과에 치중하면서 빼빼 마르고 키는 작지만 머리 좋은 아이들이 배제되는 일이 생긴다. 그것이 “축구 선수 자원의 70%가 된다”는 말은 충격적이다. 그러다 보니 다양성도 떨어진다. 마쿠스 한은 “유럽의 스카우트가 한국에 오면, ‘모든 팀의 10번 선수가 다 똑같다’라는 말을 한다”고 전했는데, 특성 없는 한국 축구의 단면을 보여준다.

외국 스카우트 “모든 팀 10번이 다 똑 같다”

대한축구협회는 2022년 기술 발전 세부 전략을 완성하면서 “팀 중심의 결과 지향이 아니라, 개인 중심의 선수 성장으로 유소년 지도 방법을 추구한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한 축구인은 “한국 유소년들은 포지션별 원리를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 그러니 중학교 감독은 ‘초등학교에서 뭐 배웠니’라고, 고교에서는 ‘너 언제부터 볼 찼니’라고, 대학이나 프로 감독은 ‘10년 넘게 운동하면서 이것도 모르니’라고 핀잔한다. 이런 엉터리 구조에서 연령별로 우수 선수들이 나오는 것은 한국 선수들의 천재성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각급 대표팀이 현재의 성적을 내는 것도 기적이다”라고 했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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